30년 전 대중목욕탕의 진풍경
김이 모락모락 나도록 욕실에 뜨거운 물을 데우고 샤워를 하니 몸이 눈 녹듯 사르르 녹는 기분이다.가끔 몸이 찌푸둥할때면 이렇게 뜨거울 정도의 물에 몸을 담그곤 한다. 낙엽이 짙어지는 가을이면 어김없이 찾아 오는 피부 트러블..거기다 찬 날씨로 인한 몸살기운은 지금의 내 나이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 뭐하노..응가히 씻고 나온나..피부도 안 좋으면서.."
남편의 걱정스런 말투이다.
환절기땐 더욱더 피부때문에 괴로워하는 날 잘 알기때문이다.
거기다 뜨거운 물에 오래 씻고 나오면 온 몸에 붉은 선들이 선명하게
나타나는 것에 안스러워 한다.
그런 피부이기에 우린 온천은 커녕 뜨거운 찜질방에 가질 않는다.
병원을 여러 군데 다녀도 예전보다 많이 나아지긴했지만 여전히
진행형인 알러지체질이다.
" 으이구.. 내 그럴 줄 알았다.. 이것 봐라.. 으...."
목욕을 마치고 나 온 내 모습을 보고는 여전히 잔소리를 하며
내 몸에 알러지로숀을 발라 주는 남편..
사실 내가 바를 수 있지만 제일 표시가 선명하게 나는 등은 혼자
로숀을 바를 수 없는지라 늘 잔소리를 듣지만 남편 손을 빌린다.
간혹 그럴때마다 남편이 없다면 어떡했을까하는 생각을 하곤한다.
" 휴..나도 옛날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우째 이런 체질로 변했는지.."
" 어릴때는 안 그랬나? "
" 그라믄.. 목욕탕에서 이태리타월로 박박 문질러도 하나도 이상없었다."
맞다..
난 어릴적엔 살이 벌겋게 될때까지 때를 밀고 로숀을 바르지 않아도 피부는 멀쩡했었다.
남편과 이야길 나누다 갑자기 어린시절 목욕탕 추억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30년 전 ..
그 시대엔 목욕탕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거기다 집에도 목욕시설이 그다지 좋게 설계되지 않았었다.
수도에 호수를 꼽아 둔 채 큰 타원형 빨간 대야에 물을 받아 바가지로
물을 퍼서 사용했었다.
물론 따뜻한 물은 연탄불 옆에 설치된 물통안의 물이 고작이었다.
한여름이면 찬물에 목욕도 가능했지만 날씨가 선선한 봄,가을..
그리고 추운 겨울엔 집에서 목욕하는건 쉽지 않아 집근처 대중목욕탕엘
일주일에 한번 목욕을 하러 갔었다.
사실 일주일에 한번 가는 것도 그 당시엔 정말 많이 가는 축에 속했다.
" 빨리 준비해라.."
" 이번주는 안가도 되는데.."
" 뭐라하노.. 빨리 챙겨라.."
일요일 새벽 5시만 되면 엄마는 목욕탕에 가자며 딸들을 깨웠다.
한겨울에 새벽 5시면 완전 일어나기 괴로운 시간이다.
방바닥이 누렇게 될 만큼 뜨끈뜨끈해도 왜 그리 우풍이 심했던지..
무거운 솜이불을 눈만 내 놓고 잤었던 그때 그시절이었다.
그 추운 겨울 왜 그렇게 엄마는 새벽에 목욕탕에 가자고 깨웠을까..
그건 바로 사람들이 많지 않는 시간에 깨끗한 물로 목욕을 하고 싶어서이다.
사실 새벽에 가지 않으면 완전 더러운 물에 목욕을 하고 올때도 많았었다.
우리처럼 일주일에 한번 목욕을 하는게 대부분이라 일요일엔 조금 늦게라도 가면
앉을 자리도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빽빽했었다.
물론 새벽에 깨끗했던 타일은 하얗게 될 만큼 지저분해져 늦게라도 가면
앉을 자리를 비누로 깨끗이 씻어 앉을 정도였다.
거기다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사람들이 민 때로 인해 하수구구멍이
막히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었다.
" 아줌마.. 여기 막혔어요.."
" 아줌마.. 여기도.."
군데군데 목욕탕에서 들리는 소리..
완전 웃지 못할 일들이 목욕탕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저곳에서 아이를 다그치며 혼내는 모습도 진풍경이다.
" 빨리 안 오나? " - 씻자고 하면 도망가는 아이들..
" 이 봐라..지금까지 때 안밀고 뭐했노.." - 물론 엄마가 때를 밀 동안
나름대로 때를 밀고 있었지만 엄마 눈에는 때는 밀지 않고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물론 때가 많이 나오는 것에 재미를 붙인 것인지 계속 그자리를 집중적으로 밀면
아이는 아프다고 울고 엄마는 가만히 있으라고 때리고 완전 난리도 아니다.
사실 난 그나마 다른 아이들처럼 많이 혼나진 않았다.
식구가 많다보니 일일이 때를 다 밀어 주지 못했던 엄마는 스스로 알아서
목욕하라고 내 버려 둔 케이스였다.
여하튼 이곳저곳에서 아이들 우는 소리와 혼내는 소리에 목욕탕안은 아수라장이었다.
거기다 같은 반 남자아이와 목욕탕(여탕)에서 마주치는 일은 자연스런 모습들이었다.
그 당시엔 대부분 남자아이를 아버지가 아닌 엄마가 데리고 갔었다.
아무래도 가부장적인 시대라 그랬는지도 모른다.
요즘 아이들은 이런 목욕탕 모습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집집마다 목욕시설이 잘 완비되어 있는데다가 한겨울에도 따뜻한 물이
나오고 거기다 집안에 우풍까지 없어 30년 전 대중목욕탕보다 더 좋은
시설에서 목욕을 할 수 있기때문이다.
물론 대중목욕탕이나 찜질방에 가도 까칠한 타월로 때를 박박 미는 사람도 없다.
매일 샤워를 하다 보니 때가 거의 없어서 일것이다.
그러기에 목욕탕에 가도 샤워를 하고 오는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과는 달리 30년 전 대중목욕탕에서의 추억이 있는 분들은
목욕탕에 가면 자연스럽게 이태리타월로 때를 민다.
샤워를 매일 해도 왠지 목욕탕에 가면 때를 꼭 밀어야 한다는 생각때문일것이다.
30년 전 목욕탕의 진풍경이었던 모습들은 이제 볼 수 없지만..
그 추억들을 생각하며 이제는 웃을 수 있는 것에 삶의 한 페이지를 보는 것 같아 좋다.
시간은 점점 흘러 가지만 어릴적 추억은 시간이 가면 갈 수록 뇌리속에 짙게 새겨지는 것 같다. 아마도 되돌아 갈 수 없는 그 시절이 그리워서 더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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