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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에 라이브 콘서트

경주 안압지에서는 토요일마다 작은 콘서트가 열립니다.이번 5월 2째주 토요일에는 테마콘서트를 하는 날이라 무척 기대가 되었습니다.왜냐하면 제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직접 나와서 라이브콘서트를 하기 때문이지요.여행을 좋아하는 난 늘 차안에서 여행의 즐거움을 더 느끼기위해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듣는 습관이 있답니다.그렇게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여행길에 오르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을 정도로 가슴 속에는 뭔가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지요.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ㅎㅎ,,

여하튼 서론은 접어두고 토요일에 본 콘서트를 정리해 드릴까합니다.

라이브콘서트로 더 유명한 강산에씨가 안압지를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 라구요' ,' 할아버지와 수박' ,

'에랄라' 등 주옥같은 노래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답니다.

 

 

텔레비젼에서 볼때와는 다른 모습이더군요.

더 멋져 보였다는..

ㅎㅎ..

 

낮에는 30도를 육박하는 무더위라 좀 더웠지만..

저녁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 야외 콘서트를 보는데는 정말 좋더군요.

실내 콘서트와는 또다른 느낌이 내 온몸을 감싸는 듯 ...

기분이 더 좋더군요.

 

열창하는 강산에씨.

 

30~ 40대 분들이 많이 오셔셔 그런지 더 호응이 뜨거웠습니다.

 

물론 강산에씨 노래가 젊은이들에게도 잘 알려진 노래라

많이 따라 부르시더군요.

물론 저도 같이 열창을 했답니다.

 

한 곡 끝날때마다 재밌는 입담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까지 선사했답니다.

역시..

무대 매너도 쿨하더군요.

오~~~빠 멋져부러!

 

 

낭만이 숨쉬는 경주 안압지에서 시원한 바람을 맡으며 아름다운 노래를 듣노라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군요.

간만에 느껴 본 문화공간..

잠시나마 삶의 여유를 느껴 본 하루였습니다.












tip..

 안압지.
월성의 북동쪽에 인접하였습니다.
삼국사기 674년 조를 보면 궁성 안에 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기르고 진금이수를 양육하였다고 하였는데,
안압지는 바로 그때 한 못이며 임해전에 딸린것으로 추정됩니다.
1974년 이래의 준설공사와 고고학적 조사에 의하여
주목할 만한 유구와 유물이 발견되었습니다.
동서 200m, 남북 180m 의 구형으로 조성되었는데,
크고 작은 3개의 섬이 배치되었습니다.


경주 안압지에서는 토요일 7시 30분이면

야외 공연장에서 작은 콘서트를 한답니다.

가족 , 연인, 친구들과 함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기에 딱 인것 같아요.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한가롭게 휴일을 즐기는 스님들..

 

 

초등학교때 수학여행 필수 코스였던 경주..

그래서 일까!

세월이 흘러도 어릴적 옛 추억이 묻어 있는 곳이라 그런지 자주 가는 여행지인데도

늘 새롭고 정겹게 느껴진답니다.

오늘은 여름같이 무더운 닐씨 였지만 휴일이라 많은 분들이 경주에 오셨더군요.

 

 

 

가족들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

 

 유채꽃 향기를 맡으며 자전거를 타는 분도

여유로운 휴일 같은 느낌이 물씬 났답니다.

 

 

유채꽃이 만발한 경주.

부산과 경남 쪽에는 서서히 유채꽃이 지는데..

이곳 경주는 아직도 화사한 꽃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더군요.

 

 

유채꽃이 만발한 곳도 있지만 이렇게 푸르름이 가득한 곳도 많아
마음까지 넉넉해지는 듯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시원한 나무그늘 아래에서 데이트를 하며

추억을 만들어 간다면 정말 좋겠죠.

 

 

 휴일..

가족, 연인 , 친구들만이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까요!

아닌것 같더군요.

스님들도 아름답게 핀 유채꽃과 봄내음을 맡으러 유채꽃이 만발한 경주에 오셨더군요.

 

 

따가울 정도의 햇빛 때문인지 시원한 모자를 쓰고서..

사찰에서 보는 모습과는 왠지 달라 보입니다.

 

 

스님의 뒷모습이 정말 시원스럽게 보이네요.

모자 때문인가?!

ㅎㅎ

뒷모습이 정말 이쁘네요 ...

 

 

아름다운 꽃과 싱그러운 바람..

그리고 오랫만에 나온 것일까!.

나들이를 나온 스님들의 얼굴 표정이 정말 밝아 보이네요.

이쁩니다.

 

 

노점상에서 뻥튀기도 하나 사고..

ㅎㅎ...

솔직히 이런 모습은 처음이라 조금은 신기하더군요.

 

 

시원한 나무그늘아래에서 뻥튀기를 드시는 스님들..

왠지..

다른 일반인들의 모습과는 달리 ...

그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는 조금은 차이가 있겠지만..

여유로운 휴일의 한때를 보내는 모습이라

스님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제 마음이 넉넉해지는 듯 했습니다.

 

 

청도 풍각..

이 이름만 들어도 옛 추억이 주마등처럼 하나 둘 기억되는 어린시절이 떠 오릅니다.

아버지 고향인 청도는 늘 따뜻함이 느껴지는 곳이었습니다.

해마다 아버지의 산소에 들릴때마다 지나치는 이곳 풍각.

이곳에서 아버지께서 생전에 좋아하시던 막걸리를 사 가지고 산소에 갑니다.

이곳은 막걸리 제조장이 있기때문입니다.

 

이번 청도 소싸움을 구경하러 가면서..

잠깐 풍각에 들렀습니다.

곳곳에 새로 지어진 조그만 마트나 은행들이 있지만..

그래도 주변은 과거의 흔적을 나름대로 간직하며 있었지만,

너무 오래된 건물들은 이제 자물쇠로 꼭꼭 대문이 채워져서 철거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에 조금은 옛 향수를 느낄 수 있었던 모습이 사라짐에 씁쓸했습니다.

그래서..

언제 철거 될지도 모르는 풍각의 오래된 건물들을 사진으로 담아 왔습니다.

철거되면..

새롭게 변한 풍각의 모습에 옛향수가 사라질까봐...

 

 

 

 

가축병원.

 

요즘 말하면 동물병원이겠죠..

가축병원이라고 적혀 있으니 나름 향수가 묻어나는 느낌이 듭니다.

 

 

 

의상실..

 

 

방앗간.

 

벼농사를 하셨던 할아버지 덕분에 늘 집에는 쌀이 넘쳐 났던 어린시절..

나름대로 동네에서 갑부라고 할 만큼 여유가 있었다는..

제 고향은 부산이지만..

어린시절 기억이 나는 것은 흰쌀밥을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던

집은 동네 몇 곳 안됐던 기억이 납니다.

그당시.. 쌀이 없어 밀가루로 끼니를 때우는 친구도 있었지요.

방앗간을 보니 가래떡과 시루떡을 많이 해 먹었던 어린시절이 생각이 납니다.

 

 

 

' 꼬~~꼬댁'

 

 

시골 장날이면 어김없이 닭들을 많이 팔던 시장..

장닭이라고 불리는 체격이 좋고 다리힘도 좋아 어린시절 닭을 보면 도망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철거를 기다리고 있는 옛 건물..

세월이 많이 흐른만큼 많이 낡았네요.

 

 

이 모습도 이제 과거속으로 ...

 

 

 

청도 풍각에 유명한 탁주..

풍각탁주..

탁주를 제조하는 제조장이 풍각에 있습니다.

지금은 옛 모습을 나름대로 잘 간직하고는 있지만..

많이 낡아서 이 모습또한 얼마있지 않으면 보기 힘들것도 같네요.

 

 

 

제조장이 엄청 컸습니다.

어린시절 아버지를 따라 이곳을 지날때도 엄청 커서 으리 으리 했던 기억이 있었는데..

세월이 흘러 아버지 나이가 되어서 다시 찾아와서 봐도 옛 모습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제조장 내부의 모습.

 

 

예전처럼 탁주를 많이 만들지는 않지만..

아직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풍각 두부공장.

금방 만든 뜨끈한 두부를 한입 먹으면..

으....

정말 맛있지요.

 

 

풍각 곳곳에는 오래된 건물이 나름대로 있었는데..

이 모습도 이제 많이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풍각의 도로에 있는 건물들이 거의가 오래된 건물입니다.

현재는 나름 보수도 하고 유지하고 있지만..

시골에 사시는 분들이 점점 줄어 들다보니..

점차 사라지는 옛 건물들이 많이 생기더군요.

 

 

쌀박산..

 

정말 정겹게 들리네요.

옛날에는 쌀박산이 최고의 간식거리였는데..

이제 이 모습도 추억으로 사라지나 봅니다.






여러분도 추억이 묻어 있는 잊혀져가는 곳을 사진으로 담아 보세요..
훗날..
잊지 못할 추억이 되지 않을까요!..



 

 











 

박진감 넘치는 청도 소싸움..

 

 

 

 

청도 소싸움 축제장.

 

일요일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청도에서 유명한 소싸움을 구경하기 위해서 오셨더군요.

청도는 아버지고향이라 늘 정겹게 느껴지는 곳입니다.

한우로 유명한 청도..

어릴적부터 할머니댁에 가면 많은 소를 구경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일까..

해마다 청도 소싸움을 하면 구경을 하러 가는 편입니다.

청도 소싸움이 대한민국 대표축제로 2년 연속 대상수상을 하였다고 하네요.

정말 아버지의 고향이 청도라..

더욱더 그 의미에 자부심을 느끼게 됩니다.

 

 

 

전국에서 오신 관광객들로 가득찬 소싸움하는 곳..

정말 열기가 대단하더군요.

 

 

소싸움하는 주경기장은 돔식으로 되어 있어 정말 웅장하고 세련되었습니다.

 

 

청도 소싸움은 농경문화가 시작되는 시대부터 목동들이 즐기던 놀이로

점차 부락의 세를 과시하기 위한 시합으로 이어져 왔으면,

청도군에서는 이를 축제로 승화시켜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관광상품으로 발전되었답니다.

올해 부터는 전국 4강이상 100두 빅매치로 벌어지므로

다른해와는 달리 더욱더 불꽃티는 경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더군요.

물론.. 직접 경기를 보니 역시 대단하다는 탄성이 나올 정도였답니다.

그럼 휴일( 3.29) 경기중에서 하이라이트 경기를 구경해 보십시요.

소싸움이란 어떤 것인지를 자세히 알 수 있을 겁니다.

 

 

 

아참..알고 보면 소싸움을 즐겁게 볼 수 있는 방법을 알려 드릴께요.

 

(*다양하고 재밌는 소싸움 기술.)

 

밀치기.. 힘을 다해 밀어 부치는 기본 기술로 싸움소의 기초체력과 특유의 뚝심을 필요로 합니다.

머리치기.. 정면 머리공격으로 소싸움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공격술입니다.

목치기.. 상대 소의 목을 공격하는 기술로 고도의 테크닉이 요구된답니다.

옆치기..상대 소의 옆구리쪽 배를 공격하며, 경기를 마무리하는 결정적인 공격술입니다.

뿔걸이.. 상대 소의 뿔을 걸어 누르거나 들어 올리는 적극적인 공격방법입니다.

뿔치기.. 뿔을 좌우로 흔들어 상대의 뿔을 치며 공격하여 상대를 제압한답니다.

들치기..머리를 상대 목에 걸어서 공격하며, 싸움소의 노련미와 강한 체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연 타.. 뿔치기 뒤에 머리치기로 이어지는 연속공격으로 승률이 높은 기술입니다.

 

 

 

 

사진으로도 박진감을 느낄 수 있을겁니다.

 

 

먼저 등으로 보이면 소싸움은 진답니다.

 

 

이긴 소 주인이 엄청 좋아합니다.

그리고 이 분의 남편분도 승리한 것에 기쁨을 주체할 수 없어

경기장안으로 들어와 화려한 춤을 추는 모습에 정말 재밌었습니다.




 



승리의 기쁨을 몸으로 재미나게 표현한 아저씨..

정말 대단한 승리의 세레모니였답니다.

 

 

 

 

승리한 기쁨을 화려한 몸 동작으로 표현하고 있는 여자분..

정말 대단하시더군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우의 힘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고

우리소의 우수성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중간 중간 벌어진 외국소와의 경기에서 한우가 가뿐히 이기는 모습에

통쾌하기까지 하더라구요.

청도 소싸움..

역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축제임에는 틀림이 없었습니다.

tip..

3월 31일까지하구요.

소싸움 구경하는 곳 입장료는 성인 5,000원입니다.

소띠이신 분은 무료로 입장 가능합니다.( 신분증 지참.)

 

 

 

봉정사.

 

신라 문무왕 의상이 부석사에서 종이로 봉을 만들어 날렸는데, 이 종이봉이 앉은 곳에

절을 짓고 봉정사라 하였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인 극락전을 비롯하여 조선시대에 건립된 대웅전,

화엄경당,고금당 등이 있어 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고려시대에 건립된 삼층석탑과 만세루,요사채 등의

건물이 있으면 영산암, 지조암 등의 부속 암자가 딸려 있습니다.

안동은  한국정신사에서 중요한 역활을 담당한 불교문화의 중심지입니다.

안동지역 불교의 특성은 자연을 그대로

불교의 이상사회로 승화시키고자 노력한 데에 있습니다.

이러한 특성은 자연물을 사찰구조로 이용한 것에서 잘 드러납니다.

 

 

 

 

 

봉정사에 있는 극락전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목조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정면 3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 주심포 건물로 고려시대의 건물이지만,

통일신라시대의 건축양식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1972년 실시한 보수공사 때 밝혀진 내용에 의하면,

건립 후 첫 수리는 고려 공민조왕이며,  그 뒤 조선 인조에 걸친 수리가 있었습니다.

원래는 대장전이라 불렀으나, 뒤에 극락전이라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기둥의 배흘림, 공포의 단조로운 짜임새, 내부가구의 고격함이 이 건물의 특징입니다.

돌기단 위에 자연석 초석을 배열했으며, 전면과 후면 중앙칸에 관문을 달았고

양쪽에는 살창을 달았는데, 전면의 판문과 살창은 수리할때 복원된 것입니다.

 불당의 중앙 뒤쪽에 2개의 기둥을 세워 불단벽을 만들고 그 안에 불단을 설치하였습니다.

 

 

 

 

봉정사 대웅전 후불벽화 현존 최고

 

안동 봉정사 대웅전 후불벽화는

현존하는 우리 나라 최고. 최대의 벽화입니다.

고려시대 양식과 기법을 잘 간직한

리 나라 최고이 국보급벽화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고즈넉한 풍경을 연출하는 만세루의 단아한 풍경은

마음까지 넉넉해지는 듯 했습니다.

 

봉정사 만세루

 

이 건물은 대웅전 앞에 있는 2층의 누각형태를 한 건물로 사찰의 입구에 해당됩니다.

1680년 에 건립되었다고 전하는 이 건물은 원래 덕휘루로 불리웠으나

언제부터 만세루로 바뀐 것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건립 후 여러 차례 보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3칸이며,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지형의 경사를 자연스럽게 이용하여 앞면은 2층이나 뒷면은 단층으로 처리되었습니다.

만세루는 17세기 후반의 건실하면서도 당당한 건축수법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어

조선 중기 건축사 연구에 가치가 있는 문화재입니다.

 

 

 

 

입구에 들어서는 문은 지형에 맞게 잘 만들어 진 듯 보였습니다.

문 아래에 휘어진 것이 특색적입니다.

 

 

봉정사 삼층석탑 주위의 풍경.

 

 

봉정사 고금당.

 

 

 

 

 

안정사 석조여래좌상.

 

신체에 비해 작은 불두에는 나선형 머리카락과 큼직한 살상투가 표현되었습니다.

당당하고 둥근 어깨에서 느껴지는 양감에 비해 가슴은 대체로 편평하며,

결가부좌를 튼 하반신을 높게 표현하여 안정감이 느껴집니다.

손은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 불상의 양식은 통일신라 하대의 그것과 유사하므로

제작시기를 9세기 경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봉정사 대웅전 풍경.

 

봉정사 대웅전내에는 현존하는 최고.최대의 후불벽화가 있답니다.

 

 

 

봉정사의 고즈넉한 풍경.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도 들렀다는 봉정사.

역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듯한 멋진 사찰임에는 틀림이 없는 듯 합니다.

고즈넉하고 조용한 봉정사의 풍경..

어떠세요..

정말 멋진 곳이지 않나요..

 

 

 

일명 ' 제비원미륵'으로 불리며 안동시 북쪽 이천동 태화산 기슭에 위치하며,

화강암 석벽에 10m 높이의 몸통을 새기고 2.5m 높이의 머리부분을 조각하여

올려 놓은 고려시대 마애불이다.

산신의 정기와 부처의 원력이 만나 소원을 이루는 곳으로

이름 높읍며 인자하게 뻗은 긴 눈과 두터운 입술,

잔잔한 미소가 토속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석불상이 위치한 제비원은 민간신앙의 성지이며 성주의 본향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안동에서는 이천동 석불로 유명하다.

이천동 석불상은 보물 제 115호이다.

안동 구석 구석을 구경하고 부산으로 내려가기위해 고속도로를 향하다

유명한 사찰의 한 스님께서 이곳에 꼭 가보라고 해서 들렀다.

다른 사찰과는 달리 독특한 분위기의 불상은 멀리서 보더라도

눈에 띌 정도로 웅장한 분위기였다.

 

 

 

가슴에 새겨진 손 모양이 특이하고,

무엇보다도 인자한 얼굴이 마음까지 편하게 하는 듯 하다.

 

 

 

 제비원미륵이 연이낭자로 불리는 이유는..

 

옛날 이 자리에는 관리들이 출장 길에 묵어 가는 '院 (원)'이 있었다.

일찍이 부모를 잃은 '연이'쳐녀가 '원'에서 심부름을 하며 길손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부잣집 김씨 총각이 죽어서 저승에 가니 염라대왕이 

 " 너는 세상에서 못된 일을 많이 하여 저승 창고가 비었다 착한 일을 많이

한 '연이'의 재물을 빌려 인정을 베풀라."하여,

저승에서 인심을 쓰고 이승으로 돌아왔다.

김총각이 저승 일을 말하고 재물을 나우어주자.

' 연이'는 그 재물로 큰 법당을 지었다.

재목이 법당의 마지막 기와를 덮고 제비가 되어 날아 갔으므로 연비寺라하고,

'원'이름도 '제비원'이라 하였다.

아침저녁 법당에 기도하던 '연이' 처녀가 38세의 나이로 죽자,

바위가 갈라지면서 큰 돌부터가 생겨났다.

사람들은 '연이'의 혼이 변해서 지금의 미륵불이 되었다고 한다.

 

 

옛날 관리들이 묵었던 '원"의 자리.

 

 

'원'이 있었던 자리에서 보이는 제비원미륵불의 모습.

 

 

턱 밑에는 목걸이가 도드라지게 표현되어 있고, 목에는 삼도(三道)가 새겨져 있다.

양쪽 어깨에까지 직선으로 내려오는 법의 주름과 가슴을 가로지르는

내의의 띠를 간략하게 선각으로 표현했으며,

양쪽 손은 얕게 부조하여 부드러운 곡선으로 처리했다.

오른손은 배에 대고 왼손은 가슴 앞에서 장지와 엄지를 맞대고 있는데,

아미타구품인 중품하생인(中品下生印)인 듯하다.

발 밑에는 커다란 단판(單瓣) 연꽃무늬가 음각되어 대좌를 이루고 있다.

다른 불상에서는 보기 힘든 목걸이가 특이하다.

 

 

 

전설이 깃든 안동의 이천불 불상의 모습에서

인자한 모습과 토속적인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다.

석벽 높이가 10m가 되다보니 멀리서도 웅장한 불상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곳에 깃든 불상의 의미를 알고 본다면 더 새롭게 보여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