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부산불꽃축제 리얼현장 모습을 휴대폰 문자로 보니

작년에 제주도 오기 전, 마지막으로 즐겼던 부산불꽃축제가 바로 오늘 열린단다.. 참 빠르게 지나간 지난 1년이다. 작년 부산광안리해수욕장 백사장에서 화려한 불꽃축제를 보며 낭만을 부르 짖었던 친한 동생들과의 즐거웠던 시간들.... 지금 생각하면 1년 후 현재의 내 모습을  솔직히 상상을 하지 못했다. 그만큼 나름대로 제주도 생활에 적응을 잘하고 있음을 말하는 부분인지도..

 

동생이 보여 준 제11회 부산불꽃축제 티켓을 보니 당장이라도 비행기를 타고 부산으로 날아 가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지금 난 이곳 제주도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더 생각나는 지난 날의 추억이다. 하지만 동생은 누나의 마음을 잘 아는지 부산불꽃축제 현장을 리얼하게 휴대폰으로 보여 주며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줬다.

 

 

불꽃축제가 열리기 2시간 전임에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광안리해수욕장 백사장을 가득 메운 상태다. 부산에서 살때는 수없이 부산불꽃축제에 갔어도 내가 저렇게 많은 인파 속에 끼어 있었나 할 정도로 리얼한 현장 모습이었다.

 

 

제11회 부산불꽃축제 티켓

 

 

부산불꽃축제 구경하기 위해 지하철을 탄 모양이다. 리얼한 지하철내 모습....ㄷㄷㄷㄷㄷ

 

 

낭만을 아는 사람들이겠지...멋진 불꽃축제를 보면 이 모든 피곤함은 다 사라질 듯.....부럽~

 

 

지하철에서 내린 후 부산불꽃축제가 열리는 장소로 이동 중..이미 차는 통제되었는지 도로는 한산.. 인도엔 사람들로 가득하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광안리해수욕장으로 몰리기때문에 저녁6시가 되면 통제를 한다. 차를 가지고 오는 사람은 광안리 주위에서 서성 거리다가 가는 경우가 허다할 정도..작년에 아는 지인도 멀리서 불꽃 터지는 소리만 듣고 갔다는 이야기..

 

 

광안리 백사장을 가득 메운 불꽃축제를 구경하기 위해 온 사람들

 

 

2시간 전인데 이 정도.... 캬......갑자기 이 모습을 보니 가슴이 설레인다.

 

 

불꽃축제가면 필수로 챙겨야하는 보온병

 

 

2시간 어떻게 기다리지 하면서도 마냥 즐거워하는 동생의 모습이 휴대폰 문자 속에 그대로 묻어 있었다. 제주도에서 이렇게 실시간으로 부산불꽃축제를 리얼현장 모습을 문자로 보니 마치 내가 그 속에 있는 듯 마구마구 가슴이 설레였다. 2시간 후..... 멋진 부산불꽃축제 모습도 실시간으로 보여 준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30년 전 대중목욕탕의 진풍경

김이 모락모락 나도록 욕실에 뜨거운 물을 데우고 샤워를 하니 몸이 눈 녹듯 사르르 녹는 기분이다.가끔 몸이 찌푸둥할때면 이렇게 뜨거울 정도의 물에 몸을 담그곤 한다. 낙엽이 짙어지는 가을이면 어김없이 찾아 오는 피부 트러블..거기다 찬 날씨로 인한 몸살기운은 지금의 내 나이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 뭐하노..응가히 씻고 나온나..피부도 안 좋으면서.."

남편의 걱정스런 말투이다.
환절기땐 더욱더 피부때문에 괴로워하는 날 잘 알기때문이다.
거기다 뜨거운 물에 오래 씻고 나오면 온 몸에 붉은 선들이 선명하게
나타나는 것에 안스러워 한다.
그런 피부이기에 우린 온천은 커녕 뜨거운 찜질방에 가질 않는다.
병원을 여러 군데 다녀도 예전보다 많이 나아지긴했지만 여전히
진행형인 알러지체질이다.

" 으이구.. 내 그럴 줄 알았다.. 이것 봐라.. 으...."

목욕을 마치고 나 온 내 모습을 보고는 여전히 잔소리를 하며
내 몸에 알러지로숀을 발라 주는 남편..
사실 내가 바를 수 있지만 제일 표시가 선명하게 나는 등은 혼자
로숀을 바를 수 없는지라 늘 잔소리를 듣지만 남편 손을 빌린다.
간혹 그럴때마다 남편이 없다면 어떡했을까하는 생각을 하곤한다.

" 휴..나도 옛날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우째 이런 체질로 변했는지.."
" 어릴때는 안 그랬나? "
" 그라믄.. 목욕탕에서 이태리타월로 박박 문질러도 하나도 이상없었다."

맞다..
난 어릴적엔 살이 벌겋게 될때까지 때를 밀고 로숀을 바르지 않아도 피부는 멀쩡했었다.
남편과 이야길 나누다 갑자기 어린시절 목욕탕 추억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30년 전 ..
그 시대엔 목욕탕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거기다 집에도 목욕시설이 그다지 좋게 설계되지 않았었다.
수도에 호수를 꼽아 둔 채 큰 타원형 빨간 대야에 물을 받아 바가지로
물을 퍼서 사용했었다.
물론 따뜻한 물은 연탄불 옆에 설치된 물통안의 물이 고작이었다.
한여름이면 찬물에 목욕도 가능했지만 날씨가 선선한 봄,가을..
그리고 추운 겨울엔 집에서 목욕하는건 쉽지 않아 집근처 대중목욕탕엘
일주일에 한번 목욕을 하러 갔었다.
사실 일주일에 한번 가는 것도 그 당시엔 정말 많이 가는 축에 속했다.

" 빨리 준비해라.."
" 이번주는 안가도 되는데.."
" 뭐라하노.. 빨리 챙겨라.."

일요일 새벽 5시만 되면 엄마는 목욕탕에 가자며 딸들을 깨웠다.
한겨울에 새벽 5시면 완전 일어나기 괴로운 시간이다.
방바닥이 누렇게 될 만큼 뜨끈뜨끈해도 왜 그리 우풍이 심했던지..
무거운 솜이불을 눈만 내 놓고 잤었던 그때 그시절이었다.
그 추운 겨울 왜 그렇게 엄마는 새벽에 목욕탕에 가자고 깨웠을까..
그건 바로 사람들이 많지 않는 시간에 깨끗한 물로 목욕을 하고 싶어서이다.
사실 새벽에 가지 않으면 완전 더러운 물에 목욕을 하고 올때도 많았었다.
우리처럼 일주일에 한번 목욕을 하는게 대부분이라 일요일엔 조금 늦게라도 가면
앉을 자리도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빽빽했었다.
물론 새벽에 깨끗했던 타일은 하얗게 될 만큼 지저분해져 늦게라도 가면
앉을 자리를 비누로 깨끗이 씻어 앉을 정도였다.
거기다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사람들이 민 때로 인해 하수구구멍이
막히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었다.

" 아줌마.. 여기 막혔어요.."
" 아줌마.. 여기도.."

군데군데 목욕탕에서 들리는 소리..
완전 웃지 못할 일들이 목욕탕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저곳에서 아이를 다그치며 혼내는 모습도 진풍경이다.
" 빨리 안 오나? " - 씻자고 하면 도망가는 아이들..
" 이 봐라..지금까지 때 안밀고 뭐했노.." - 물론 엄마가 때를 밀 동안
나름대로 때를 밀고 있었지만 엄마 눈에는 때는 밀지 않고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물론 때가 많이 나오는 것에 재미를 붙인 것인지 계속 그자리를 집중적으로 밀면
아이는 아프다고 울고 엄마는 가만히 있으라고 때리고 완전 난리도 아니다.
사실 난 그나마 다른 아이들처럼 많이 혼나진 않았다.
식구가 많다보니 일일이 때를 다 밀어 주지 못했던 엄마는 스스로 알아서
목욕하라고 내 버려 둔 케이스였다.
여하튼 이곳저곳에서 아이들 우는 소리와 혼내는 소리에 목욕탕안은 아수라장이었다.
거기다 같은 반 남자아이와 목욕탕(여탕)에서 마주치는 일은 자연스런 모습들이었다.
그 당시엔 대부분 남자아이를 아버지가 아닌 엄마가 데리고 갔었다.
아무래도 가부장적인 시대라 그랬는지도 모른다.

요즘 아이들은 이런 목욕탕 모습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집집마다 목욕시설이 잘 완비되어 있는데다가 한겨울에도 따뜻한 물이
나오고 거기다 집안에 우풍까지 없어 30년 전 대중목욕탕보다 더 좋은
시설에서 목욕을 할 수 있기때문이다.
물론 대중목욕탕이나 찜질방에 가도 까칠한 타월로 때를 박박 미는 사람도 없다.
매일 샤워를 하다 보니 때가 거의 없어서 일것이다.
그러기에 목욕탕에 가도 샤워를 하고 오는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과는 달리 30년 전 대중목욕탕에서의 추억이 있는 분들은
목욕탕에 가면 자연스럽게 이태리타월로 때를 민다.
샤워를 매일 해도 왠지 목욕탕에 가면 때를 꼭 밀어야 한다는 생각때문일것이다.

30년 전 목욕탕의 진풍경이었던 모습들은 이제 볼 수 없지만..
그 추억들을 생각하며 이제는 웃을 수 있는 것에 삶의 한 페이지를 보는 것 같아 좋다.
시간은 점점 흘러 가지만 어릴적 추억은 시간이 가면 갈 수록 뇌리속에 짙게 새겨지는 것 같다. 아마도 되돌아 갈 수 없는 그 시절이 그리워서 더 그런 것 같다.

                   

늦은 시간 일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서는 어두운 골목한켠에 여학생들대여섯명이서 모여 앉아 담배를 피고 있는 모습이 보었습니다. 순간 그 모습을 보니 움찔...성인이 되었지만..왠지 그 모습들을 보니 빨리 자리를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뇌리를 파고 들었습니다.전 학창시절에 담배를 피던 불량학생들에게 안 좋은 기억이 있기 때문에지금도 여학생들이 어두침침한 곳에서 옹기종기 모여 담배를 피면 솔직히 겁납니다.예나지금이나 그 모습은 학생답지 않고 공부와는 담을 쌓아 보이고 학교에서는 재껴 놓아 늘 불량스럽게 행동하고 다니면서 사람들을
괴롭히는 나쁜 학생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안 좋은 기억은 오래 남는법이잖아요.
아니 평생 그 기억을 안고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집에 들어 와서야 안심을 하게 된 내 모습에 참 어이가 없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학창시절에 겪었던 잊고 싶은 추억이 떠 올랐는지도 모릅니다.

회상...

" 야.. 너 돈 가진거 있나.. 있으면 좀 빌려줄래!.."

껌을 짝짝 소리를 내어 씹으며 껄렁한 교복차림으로
우리보다 학년이 높아 보이는 언니들이 제게 접근했습니다.
뒤따라 오던 친구 두 명은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직감이라도 했는지..
조심스레 제 옆에 섰습니다.

" 돈 없는데예.."
" 뭐라하노..언니가 돈 좀 빌려달라고 하면 알아서 차비라도 내야지.."
" .........."
" 만약에 뒤져서 돈 나오면 알제.. 죽는다.." 

한쪽에서 담배를 피던 언니가 슬슬 나오며 협박을 했습니다.

" 우리 진짜 돈 없어예.."

제 옆에 있던 친구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을 했습니다.
친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담배를 피던 언니는 친구의 머리를
사정없이 쥐어 박았습니다.

" 와이랍니까..네에..돈 없다니까예.."

친구들 중에서 그나마 제일 겁이 없었던 전 친구가 맞는 모습을 보자
화가 나서 한마디 했습니다.
사실 그말 해놓고 집단으로 때릴까봐 솔직히 겁은 났지만 ..
친구가 맞는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 그래.. 그럼 돈 없으면 벗어야지...."

우린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 네에?!..와이라는데예.."
" 너거..돈 없다메..그럼 옷이라도 벗으라고..어서.."

돈를 달라고 협박하던 언니와는 달리 가만히 아무말도 안하고 옆에
서있던 언니는 담배 피던 손을 들여다 보이며 겁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무시무시한 면도날..
그 당시 불량스런 언니들이 면도날로 입안에서 오독오독
씹는다는 말이 무성하던때라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정말 무서웠습니다.
무슨 일인가 일어 날 것 같은 예감이 뇌리속을 파고 들었지요. 

' 큰일났네.. 옷 안 벗어주면 가만 안 놔 둘낀데..."

눈치를 보다 전 파카를 벗어 주었습니다.
친구들은 내가 옷을 벗어 주자 같이 벗을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 언니가 하는말,..

" 너거들은 됐다..그리고..회수권 있으면 그것도 도.."

면도날을 본 나는 조금전 겁없이 말대답을 하던 모습은 없어지고
순순히 달라는대로 가지고 있던 차비까지 내어 주었습니다.
그 당시 차비라고 하면 회수권이었죠..
그렇게 가지고 있던 돈도 다 뺐겼고..
언니들은 주변 상황을 두리번 살피더니 고맙다고 빈정대더니 사라졌습니다.

우린 말로만 듣던 정말 무서운 언니들을 경험해 한참동안
그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 윤득아.. 우리 차비 다 뺐겼는데..어짜노..집에는 어떻게가노.."

가까운 거리면 택시라도 타고 가서 엄마에게 돈을 달라고 하겠지만..
친구들끼리 공부한답시고 너무 먼거리의 도서관에 공부하러
온 것때문에 택시도 못타고 갈 상황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내 친구 둘은 집안 형편이 안좋아 늘 내가 먹을것을 사주는
편이어서 친구들에게 뾰족한 수를 기대하기란 어렸웠습니다.
그때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버스정류소 바로앞에 서점이 하나 있었던겁니다.
그 당시 서점은 책을 사는 곳이기도 하지만 싼 가격에 팔 수도 있었답니다.
난 갑자기 가방에서 참고서를 하나 꺼냈습니다.

" 니..갑자기 뭐하노.."
" 어.. 이 참고서 며칠전에 샀거든 오늘 팔고 내일 다시 찾으러 오면된다.."

그렇게 이야기하고는 서점으로 향했습니다.

"아저씨.. 이 참고서 팔려고하는데..얼마 주는데예?.."

아저씨는 참고서를 이리저리 살피더니..

" 500원.."
" 네에?.. 아저씨 이거 며칠전에 3500원 주고 산 건데예..
너무 작게 주는거 아입니꺼.."
" 그럼 말고..."

아저씨는 냉정하게 딴 일을 보는척 했습니다.
사실 가격은 터무니 없이 적었지만 그거라도 치러서 받아
집으로 갈 버스를 타야 할 상황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 그라믄..주이소..대신 내일 이거 다시 사러 올께예..알았지예.."

아저씨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난 500원을 받고 아저씨에게 내일 꼭 찾으러 온다는 말을 계속하며
문을 나섰습니다.
참고서를 판 500원으로 우린 회수권을 구입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
올 수 있었습니다.
그당시 회수권이 80원..

집으로 들어가니 파카도 안 입고 샛파랗게 떨며 돌아온 나를 보며
무척 놀라하셨던 부모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깡패언니들을 만나 가지고 있던 돈과 회수권
그리고 옷까지 뺐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사히 돌아온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하셨지요.
그리고 차비가 없어서 참고서를 팔아서 왔다는 이야기도 해 엄마에게
용돈을 받아 그 다음날 난 친구들과 책을 판 서점에 갔습니다.
아저씨에게 팔았던 책을 다시 사기위해 말이죠.
그런데..
아저씨 정색을 하며 내가 언제 다시 준다고 했냐고 더 큰소리를 치셨습니다.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답니다.

" 아저씨..제가 어제 다시 찾으로 온다고 했다 아입니까.."

한마디로 안된다는 표정을 짓고 더이상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참 순진한건지..
바보인건지..
결국 우린 안된다는 아저씨의 말에 허탈한 마음을 안은 채 
책을 찾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나쁜 아저씨....

그 일 이후 난 멀리 있는 도서관에는 절대 가지 않았고
집 주위에 아버지께서 독서실을 마련해주어 공부를 했답니다.
물론 그런 일이 있은 후..
공부가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아버지께서는 독서실 앞에 마중을 나오셨지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불량학생들에게 당한 것이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도
옛날 학창시절에 있었던 비슷한 상황이 되면 생각이 또렷이 떠 오른답니다.
정말 그 당시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내 생애 가장 큰 충격이었으니까요..

오늘 집근처 으슥한 골목길에서 학생들이 담배를 피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얼마나 가슴이 콩닥~콩닥 거렸는지..
사람들은 좋은 기억보다 안좋은 기억은 오래도록 남거나 평생간다더니.
실제 겪어보니 맞는것도 같습니다.
25년이 흘렀는데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니 말입니다.
누구든지 그 상황을 자신이 겪어 보지 않으면 이해를 못할 것입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고 괴롭히는 사람들은 그것에 대한 기억이
금방 잊혀지겠지만..
그 괴롭힘을 당한 당사자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는 것을요..
지금 이시각에도 사람들을 괴롭히고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있겠죠.
나쁜 기억은 오래 아니 평생 마음의 상처로 남으니 제발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행동은 하지 말았음합니다.


 


                   

세상엣 가장 맛있었던 엄마의 요리 비법

어릴적 난 엄마가 해 주신 밥이 제일 맛있었다.
식구가 많다보니 많은 종류의 반찬은 없었지만 금방 지은 쌀밥에
김치 한가지라도 세상 최고의 밥상이었다.
특히 배추겉절이를 하는 날이면 밥을 두 공기는 거뜬히 비울 정도였다.

" 엄마..엄마가 해 준 반찬 중에 겉절이가 제일 맛있다."

그런 말을 할때면 엄마는 흐뭇한 미소를 짓곤했다.
어릴적부터 고기 반찬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난 김치나 겉절이
어묵반찬만 있으면 밥 한공기는 거뜬히 비우곤 했었다.

그런데..
참 희안한게 그렇게 최고의 요리사로 보였던 엄마의 음식 솜씨가
어느 순간 맛없는 요리로만 느껴지게 되었다.
요즘에는 학교에서 급식을 하기때문에 집에서 도시락을 싸가는
학생들이 없지만 내
어릴적엔 중학생만 되면 도시락을 집에서 챙겨가야 했다.

" 와..장조림 진짜 맛있네.."
" 수리미 쥑이네.." - '수리미'란 경상도 말로 오징어조림을 말한다.
" 오뎅볶음 진짜 맛있네.."
" 며르치 진짜 잘 볶았네.." - '며르치'는 멸치의 경상도 말..

점심시간만 되면 친구들은 같이 모여 밥을 먹으며 반찬에 대해
극찬을 하며 나눠 먹었다.
물론 제일 맛있는 반찬은 숟가락을 들자마자 몇 분만에 동이 났다.
하지만 희안한게 내 도시락에 있는 반찬은 별로 손대지 않았다.
맞았다.
내가 생각해도 친구들의 반찬에 비하면 정말 맛없게 느껴졌었다.

' 이상하네.. 집에서 묵을때는 억수로 맛있었는데 ..와글로..'

내 도시락에 반찬이 그대로 남겨질때면 늘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내 반찬을 아무도 손대지 않으면 친구들 보기 부끄러워
내 반찬은 나 혼자 먹으며 반찬통을 억지로 비우곤 했었다.
그렇게 어릴적 그렇게 맛있었던 엄마의 요리들이 점점 맛없게만
느껴지기 시작한 어느날 엄
마에게 이런 말을 했다.

" 엄마.. 친구들이 내 반찬은 손도 안댄다.. 맛 없다고..
근데 나도 친구들 반찬 묵어 보니까 진짜로 맛있더라..
내일부터는 김치 넣지마라. 김하고 다깡무침만 넣어도.."


그날 이후..
학창시절 내내 반찬으로 김치는 가져 가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결혼을 하고 나서 어릴적 엄마가 해 준
세상에서 최고로 맛있었던 김치가 최고가 아님을 느끼게 되었다.
신혼 초 세상에 만상에 시어머니가 한번씩 갖다 주는 김치가 어찌나 맛있는지..
말로 표현하기 조차 힘들었다.

" 그렇게 맛있나.. 나중에 속 따갑다 응가이 무라.."
" 진짜 어머니 음식 솜씨 좋네.. 김치 억수로 맛있다. 자기도 마이무라"


신혼 초..
참 철이 없었던걸까..
난 친정엄마에게 시어머니가 담아 온 김치를 갖다 드리면서 이런 말을 했다.

" 엄마.. 시어머니가 담근 김친데 억수로 맜있다.
한번 무 봐..엄마가 담근 김치하고 맛이 완전 틀린다..
엄마는 밍밍한데 시어머니가 담근 김치는 입에 착 감기는 맛이 일품이다"

" 그래.. 사부인께서 음식 솜씨가 좋으신갑네.."


엄마는 나의 철없는 말에 웃어 넘기셨지만 엄마가 돌아 가신 후에야
왜 그렇게 철이 없게 행동했나하는 마음을 후회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친정엄마는 음식을 조리하면서 조미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으셨다.
그 입맛에 어릴적부터 길들여진 난 세상밖에 나가기전에는 엄마의
요리가 세상에서 최고인 줄 알았다.
하지만 친구들과 도시락을 나눠 먹으면서 엄마가 만든 반찬과
점점 비교되기 시작했다.
그런 이유로 결혼 후에는 엄마의 반찬이 정말 맛없다는 것을 느끼기까지했다.
물론 최고의 맛을 내어 준 시어머니의 요리 속에 맛을 감칠맛나게
해주는 조미료가 가미되었던 것을 뒤늦게서야 알았었다.


근데..
언제부터인가 조미료가 몸에 안 좋다는 말이 방송에 많이 나오자
남편은 아예
조미료가 들어간 음식을 먹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우리집에는 일절 화학조미료가 없어졌다.

 

물론 요즘엔 내가 맛있다고 만든 요리지만 울 남편 맛없다는 말을
하면서도 잘 먹는다 왜냐 건강에 좋은 음식이기때문이다.
가끔 외식을 할때면 우린 이 요리가 조미료가 들어간 음식인지..
아닌지 한번에 안다.
몸을 생각해서 조미료를 넣지 않고 음식을 먹은 탓일까..
간혹 시어머니께서 김치를 보내면 김치를 먹다가도
혼잣말로 남편 이런 말을 하곤한다.


" 응가이.. 조미료 넣었는가베..좀 적당히 넣지.." 라고....
물론 시어머니께도 건강을 생각해 조미료를 적당히 넣으라고 말한다.
유난히 몸을 생각하는 남편은 어느샌가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음식 맛이 별로라는 소릴 듣지만 자연스럽게
어릴적 엄마가 해 주었던 음
식솜씨로 돌아 가고 있으니
내 모습에 그저 웃음만 나온다.

 

세상에 눈을 돌리기전 어릴적 세상에서 가장 맛있던 엄마의 요리..
그 요리의 비법은 바로 건강을 생각하면서 만든 엄마의 마음이 들어 있었던 것 같다.
요즘엔 시어머니께서도 조미료를 거의 사용하지 않으신다.
그래서일까 시어머니의 요리가 예전보다 훨씬 맛있는 것 같다..
ㅎ...



                   

따르릉~~.

오후 늦게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 여보세요~. "
" 간만에 형제들끼리 목욕탕 모임 어떻노..시간되나?"
" 오늘?!.. 몇 시에 볼낀데?.보고.."

결혼을 한 뒤..
서로 바쁘게 살아도 한달에 한 번씩은 이런식으로 갑작스런 모임을 가지곤 합니다.
여자형제들이 많다 보니 어쩌다가 만나더라도 자주 만난 것처럼
재미난 이야깃거리로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재밌답니다.
자주 이런 모임을 가지지 못해서 그런지 가끔 한번씩 만날때마다 더 즐거운 것 같습니다.

언니들과 약속장소에 만나서 우리가 자주 가는 목욕탕에 들어갔습니다.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제법 많이 있었습니다.
사실 전 언니들이 이렇게 모임이라고 불러내야 목욕탕을 가지 혼자서는 잘 가지 않는편입니다.
혼자서 가기에 왠지 좀 그렇기도 하고, 요즘 집에서도 충분히 목욕시설이 잘 되어 있기때문에
굳이 목욕탕에 갈 필요성까지 느끼지 못해서더 그런가 봅니다.

그래서일까..
언니들과의 목욕탕모임은 때를 밀러 간다는 것 보다도 언니들과 같이 목욕탕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길하면서 즐겁게 놀고 온다는 느낌이 더 좋습니다.
늘 그렇듯이 별로 특별나게 재미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웃음꽃이 만발하지요.

오늘은 작은언니때문에 더 우스운 일이 있었습니다.
어릴적부터 유별나게 다른 사람보다 깔끔을 떠는 언니인데..
목욕탕에서 이야기를 하는 내내 얼마나 열심히 몸을 깨끗이 씻는지..
낮에 운동갔다와서 땀을 다른날 보다 많이 흘렸다면서
까실까실한 새이태리타올까지 준비해 와서는 마구 씻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씻는 언니를 걱정스럽게 보던 큰언니가 보다 못해 한마디 하더군요.

" 니.. 안 아프나.."
" 뭐가.."
" 새이태리타올로 와그리 씨게 미노..."
" 아닌데...ㅎ..습관이 되어서 그런갑다..게안타...."

작은언닌 어릴적에도 이태리타올로 완전 벌겋게 될때까지 박박 씻는 편이지만..
왠지 오늘은 더 심하게 보였습니다.
어릴적 그렇게 늘 씻는 모습을 자주 봤지만..
시대가 시대인 만큼 왜그리 아파 보이던지..ㅎ
어릴적부터 깔끔하게 씻는 습관은  어쩔 수 없는 모양입니다.
목욕탕에선 늘 이태리타올로 때를 밀어야 씻은 것 같다는 언니..
작은언니를 보면서 다른언니들과 전 꼭 옛날 사람같다고 놀리곤한답니다.

그렇게 언니들과 간만에 목욕탕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회포를 풀고 즐거운 모임을 가진 후 따뜻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다른 모임보다 한달에 한번씩 목욕탕모임에 갖다오면 몸도 깨끗해지고..
무엇보다도 기분까지 산뜻해서 다른종류의 모임에는 가끔 빠져도 목욕탕 모임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거의 빠지지 않고 나갈 정도로 좋아한답니다.

집에서 목욕탕에 가져간 목욕용품을 정리하다 목욕탕선반에 쓰지 않고 그대로
보관하고 있는 이태리타올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갑자기 새이태리타올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선반위에 고스란히 보관된 새이태리타올도 사실은 작은언니가 시장에서
한묶음 사서 목욕탕 모임에 갔을때 언니들과 제게 하나씩 나눠준 것이랍니다.

'언니도 참...'

언니가 사 준 이태리타올을 보는 순간 갑자기 옛날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지금은 삶이 많이 윤택해져서 거의 집집마다 목욕탕이 있어 샤워를 자주 하다보니
목욕탕에 가더라도 옛날과는 달리 보통 몸을 깨끗이 씻으러만 가는 것보다
대충 샤워하고 찜질방에서 피로에 지친 몸을 풀러 가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사실 눈에 띄게 때를 미는 사람도 없구요..
우리작은언니 빼공..ㅎㅎ



이 시점에서 그럼 재미난 추억 보따리를 풀어 볼까요.
지금은 잊혀져가는 옛날 목욕탕의 추억은 뭐가 있을까!

옛날에는 목욕탕에가면 거의가 첫째 이태리타올로 몸이 붉어질 정도로
때를 밀고 또 밀고 집으로 돌아 오지요..
솔직히 그시절에는 목욕시설이 미비했잖아요.
지금처럼 욕실도 없고 따뜻한 물도 데워서 씻는 상황이라
일주일에 한번씩 가는 목욕탕에선 완전 때미는 전쟁터같은 분위기였었지요.
그리고..두번째는 아는사람을 만나면 서로 인사를 한다는 것
ㅋㅋ..

" 00 야 오랜만이네.."
" 요즘 뭐하노.."
" 니 마이 컷네.."
" 어무이는 잘 계시나...".

목욕탕안이라 부끄러울만도 한데 어찌 그리도 인사성이 밝았는지..
요즘엔 아는사람을 목욕탕에서 만나도 별로 아는체 안하는 세상인데 말이죠.
사실 목욕탕이 아니더라도 자기집 주위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일겁니다.
만약 주위에 아는 분을 만나도 모르척 지나가는게 보통이지요.
옛날처럼 이웃사촌같은 분위기는 점차 사라지는 듯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이기적인 느낌이 목욕탕에서 느끼는 것들과도 많이 공감되는 부분입니다.

세째는
" 등 같이 미실래요~! "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지요.
물론 요즘엔 등미는 기계도 목욕탕안에 설치되어 있고..
때를 밀어주는 아주머니도 목욕탕에 계시니 굳이 서로 등 밀자는 그런 사람들은 없습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 등 좀 같이 밉시다 '라고 하면 ' 금방 밀었거든요.. '하며 자리를 피하기 일수..
그만큼 남이 나의 등을 민다는 자체와 내가 힘을 써서 남의 등을 밀어준다는 자체를 싫어한답니다.

네째는 뭘까..
먹을 것 ( 물, 요쿠르트, 음료수) 등을 바리바리 집에서 가지고 갑니다.
뭐 지금도 그렇게 준비해 오는 사람도 간혹 있지만,
옛날에는 음료수는 목욕탕 갈때 필수 품목 중에 속한 것이었습니다.

다섯째..
비누나 치약은 집에서 준비해 간답니다.
요즘에는 목욕탕에가면 치약은 목욕탕안 한켠에 줄로 메달아 놓아
누구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구비해 놓았습니다.
물론 비누도 샤워기가 설치된 곳곳에 여유있게 준비해 놓았고..
그렇다고 그 비누를 쓰고 집으로 가져가는 사람은 없답니다.
그만큼 삶이 예전보다 윤택해졌고 공공시설물이란 개념이 확실히 인식되어 있다고 할 수 있지요.

여섯째..
옛날에는 엄마들이 초등학생 남자아이를 많이 데려갔었답니다.
물론 그시절 아버지들은 혼자서 목욕가기를 좋아하셨기때문이었는지..
아이를 데리고 가서 씻겨 오는 것을 나름 귀찮아 하셨습니다.
그래서 엄마들이 초등학생 남자아이를 데리고 온 적이 많았답니다.
지금은 감히 상상도 못하는 일이지만..
저도 초등학교 2학년때 같은 반 남자친구를 목욕탕에서 만났는데 서로 어색해 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그 남자친구는 억지로 엄마랑 왔을 것이공..ㅎㅎ
목욕탕에서 만난 이후 그 친구는 절 볼때마다 피해 다녔지요.
어렸지만 부끄러웠을 것입니다.
쨔~~식..ㅎㅎ

일곱째..
목욕값을 아낄려고 아이 나이를 속이는 엄마들이 많았습니다.
사실 저희엄마도 그랬거든요.

ㅎㅎ..
생각나는대로 정리해 보니 많네요.
지나간 옛추억이지만 기억이 새록새록 떠 오르는 것을 보면
별로 넉넉하지 않았던 과거였지만 그 시절도 나름대로 즐거운 일이 많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금 이글을 적는 시간도 과거라는 시간속에 박히겠지만..
이 모든 것도 세월이 흐르면 훗날 재미난 추억이 된다고 생각하니
하루 하루 나름대로 즐겁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도 추억속으로 남겨질 모든 일들에 대해 한번쯤 생각하는 하루가 되었음합니다.

                   

불효자가 되어 버린 장래식 그 이유는..

지금으로 부터 25년전..
부산에서 겨울에 눈 보기란 정말 힘든데..
희안하게 25년전 폭설이 왔던 날을 너무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날이 바로 아버지께서 돌아 가신 날이라 더 그런지 모릅니다.
그당시 몇 십년만에 부산에 내린 폭설이라고 매스컴을 뜨겁게 달군 날이었죠.

지금은 장례식장이 따로 있어 그곳에서 장례를 다 알아서 치뤄 주지만
옛날엔 집에서 대부분 장례를 치뤘었답니다.
시골이었다면 넓은 마당에서 조문 오신분들에게 음식을 대접했겠지만..
부산이라 마당이라고는 집 사이의 공간이 고작이어 어쩔 수 없이 좁은 공간에서
조문객들에게 음식을 대접했던 기억이 납니다.
나름대로 다른 집들 보다 큰 집이었지만 아버지께서 평소 아는 분들이 많아서
그런지 장례를 치르는
 동안 내내 조문객들이 붐벼 상주인
우린 하루종일 서 있을 정도였을 정도..

그렇다 보니..
며칠 장례를 치르는데 언니들과 전 평소에도 몸이 약해 실신할 정도였답니다.
그래도 아버지 장례식인데 피곤하다고 교대로 조문객들을 받는다는 것도
그당시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던 상황이라 끊임없이 밀려드는 조문객들을 받느라
몸이 전부 천근만근..그런데다가 너무 많은 조문객때문에 곡을 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며칠 기가 다 소진될 즈음..
멀리 서울에서 아버지와 절친했던 친구분이라며 조문을 왔답니다.

" 얼마나 상심이 크시겠습니까.."
" 네.. 와 주셔셔 감사합니다. "

예의상 서로 인사를 나눈 뒤..
아버지 친구분이 조문을 하기위해 향을 피운 후 절을 하기위해 엎드렸습니다.
그런데..
웃지 못할 황당한 일이 거기서 일어 났지요.
슬픔에 젖은 얼굴로 아저씨가 절을 하려고 엎드리는 순간..
방안의 엄숙한 분위기를 깨워 버리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붕~~
' 이게 무슨 소리고! '

갑자기 정적을 깬 방귀소리에 곡을 하며 서 있던 언니들과 전 서로 얼굴을 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답니다.
그때..
평소에 웃음이 많은 작은언니가 갑자기..

푸~~훗
하고 웃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큰소리는 아니고 웃음을 억지로 참으려다 나온 웃음..

" 00야 .."

큰언니가 근엄한 목소리로 작은언니에게 눈치를 주며 웃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습니다.
작은언니는 큰언니의 말에 갑자기 고개를 숙이더니 자신의 손과 허벅지를 꼬집으며
웃음을 애써 참고 있더군요.

바로 옆에서 작은언니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웃음보가 터져 웃음을 참으려는 언니의 모습이 솔직히 더 웃겼답니다.
그런데..
웃음을 억지로 참고 있는데 황당한 일은 한번으로 그치지 않았다는..
절을 하면서 방귀를 대포같이 뀐 아저씨는 아무일 없다는 듯
슬픔에 젖은 얼굴로 일어나는 모습이 왜 그리 그당시에는 우스웠는지..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감수성이 예민했던 시기라 더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두번째 절을 하면서 또 다시..
대포같은 소리가 방안에 울렸습니다.
처음보다 더 소리로..

푸~훗!
ㅋㅋㅋ..

자신의 손을 꼬집으며 웃음을 참고 있었던 작은언니
끝내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계속 키득 키득 웃는 것이었습니다.

" 언니야.. 고마해라..사람들 본다 아니가.."
"ㅋㅋㅋ....."

사실 저도 웃음을 참느라고 이를 꽉 물고 있었는데 정신을 못 차리고 자꾸 웃는 언니의
모습을 보니 웃음바이러스가 저에게까지 전염되어 버린 것이었습니다.
물론 소리없이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며 웃었지만..

그런데..
이 모습을 멀리서 지켜 본 조문객들은 이런 상황을 잘 알지 못하고
안 좋은 눈빛을 계속 보냈습니다.

' 이 놈의 짜슥들.. 아버지가 돌아 가셨는데 뭐가 좋아서 .. 쯧쯧쯧....'
ㅠ..
사실은 그게 아닌데..

멀리서 본 어르신들은 알리가 없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큰 언니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작은 언니를 쿡쿡 찌르며 한마디 하더군요.

" 00야.. 나가라.. 니 때문에 사람들이 우리보고 불효자라 하겠다. "

그 말에 작은언니 조용히 밖으로 눈치를 보며 나갔습니다.
사실 누구보다도 아버지의 죽음에 슬퍼한 작은언니인데..
아버지 친구분의 방귀때문에 웃음을 참지 못해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았답니다.

25년이 지난 지금..
아버지 제삿날이 되면 황당했던 아저씨의 방귀사건으로 벌어진 일로 인해
웃음을 참느라고
자신의 손과 허벅지를 꼬집으며 웃음을 참던 언니의 모습이 선합니다.
방귀를 한 번만 뀌었다면 웃음을참았을텐데..
절을 할때마다 대포같은 방귀소리로 엄숙한 장례식 분위기를 흐린 아저씨 덕분에..
작은언니는 조문 온 어르신들에게 불효자라고 낙인이 찍혀 버렸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이없고 웃지 못할 황당한 일로 모두의 기억속에 남아 있답니다.

사실 그날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피식 웃음이 나옵니다.
철없던 그때..
절대 웃으면 안되는 장소인데 말입니다.



그때 ..
웃음보를 참지 못하고 불효자로 낙인된 작은언니는
아버지 산소에 갈때마다
아버지 생각에 제일 많이 운답니다.

문디..
그때 웃지 말고 좀 참지...
...

벌써 2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그 방귀사건때문에 우린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보낸 그날을 절대 잊지 못한답니다.
눈이 정말 많이 왔었던 그때 그시절을 말입니다.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