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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날씨가 포근하니 컨디션이 좀 좋아진 듯 합니다. 윗지방은 아직도 눈이 산에 소복히 쌓인 곳도 있는데..
부산은 그에 비하면 정말 겨울 같지 않는 날씨라 나름 다행이라는 생각도..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오전..
문을 활짝 여니 마음까지 탁 트이는 느낌이 들어 청소하는데 기분까지 업 되는 듯 했습니다. 구석 구석 청소기로 먼지를 빨아 들이고, 걸레질을 하며 청소를 하다 작은방 구석진 곳에 비닐이 씌여져 있는 기타를 발견했습니다 갑자기 비닐에 씌여진 기타를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 기타는 바로 우리 남편이 취미삼아 배워 보겠다고 사 놓은 클래식기타인데..사 놓고 몇 번 줄을 튕기는 일을 제외하고는 거의 빛을 못 보고 방치되고 있답니다.

청소할때 마다 먼지가 들어 갈새라 닦고 또 닦다가..
도저히 기타구멍 사이로 먼지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없어 언제부턴가 비닐로 씌워었는데..
이젠 비닐에도 먼지가 묻어 새로 갈아야겠더군요.

청소를 다하고 기타를 보이는 곳에 둔 뒤..
저녁에 남편에게 기타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자기야.. 기타 저거 너무 안쳐서 못쓰게 되는거 아니가?.."

그랬더니 남편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 배워야 되는데.. 쉽지 않네.. 혼자서 연습하면 될 줄 알았는데..ㅎ "

사실 클래식기타를 혼자서 배워 볼거라고 책도 사 놓더니..
생각보다 기타를 치는 것이 쉽지 않나 봅니다.

" 시간되면 학원이라도 다녀야겠다.. 먼지 안 묻게 잘 보관해 둬라.."

이렇게 이야길 하는 것이었습니다.
왠지 당분간은 기타에 손을 안댈 것 같은 느낌이 쏴악~

생활의 여유가 많으면 하고 싶은 일을 배워가면서 살겠지만..
요즘 좀 바쁘게 살다보니 여유있게 취미삼아 기타를 배우는 것이
쉽지 않는게 현실이 되어 버렸네요.

쉬는 날이면 저랑 같이 재미나게 놀아 주는 남편..
휴일 시간을 쪼개어서 자신의 취미생활을 하기란 쉽지 않은 걸
아는지라 잔소리를 못하게 되는 실정입니다.

이제는 전시용이 되어 버린 남편의 기타를 찬찬히 바라 보니..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났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이없기도 하고 웃음이 나기도 하는 기타의 재미난 추억.
그럼 재미난 옛추억 보따리를  오늘도 한번 풀어 보겠습니다.

기타에 대한 재미난 옛추억..

우리집은 딸부잣집입니다. (5녀 1남 )
전 딸 중의 막내이구요.
제가 중학교 다닐때 있었던 일이었는데..
언니들은 그 당시 제가 생각하기로 감수성이 엄청 예민한 소녀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음악을 좋아하고, 시를 좋아하고 그리고 멋을 부릴 줄 아는 이쁜 언니들..
그런 언니들 중에 유독 음악을 좋아하는 둘째언니..
밤이면 이불을 덮어 쓰고 라디오에 흘러 나오는 감미로운 음악을 듣기위해
라디오에 귀를 기울여 낭만을 즐겼던 언니..
누구에게 보내는 사연인지는 몰라도 매일 밤 시를 쓰고,
편지를 적어 방송국에 보내기 위해 글을 적는 일로 하루 일을 마무리하던 언니였지요.
 
그런 낭만파 언니가 어느날 갑자기
용돈 몇 달치를 모아 아버지 몰래 기타를 하나 구입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대학생들이면 거의 다 통기타를 치며 낭만을 부르짖던 시대였던지라..
언니의 행동에 모두들 그려려니 생각했지요.
그런데 유독 기타 치는 것을 반대하셨던 아버지 때문에 언니는 기타를 눈치를 보며
몰래 치곤 했답니다.

지금 시대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거의가 부모님들이 이해하고 넘어가는 시대였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지요.
부모님이 하지 말라고 하면 무조건 복종할 수 밖에 없는 시대..
딸래미들이라 반항도 하지 않고 말도 잘 들었지요.
언니가 집에서 기타를 칠 수 있는 날은 아버지가 늦게 들어오시는 날 ..
그날 빼고는
아버지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기타를 다락에 숨겨 놓곤 했답니다.
그래서 언니의 기타 소리는 일주일에 몇 일 정도만 들을 수 있었답니다. 
아버지의 퇴근은 별 일이 없으면 무조건 칼이었기 때문이었지요.
그렇게 다락에 방치 아닌 방치가 되어 버린 언니의 기타는
 바쁜 학교생활과 더불어 기억속에서 점점 잊혀져 갔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이사 하던 날 ..
짐정리를 하다 다락에서 먼지가 묻어 방치된 기타를 본 언니는 엄청 반가워 했지요.
언니는 반가운 나머지 기타 주위와 줄을 깨끗이 닦고 기타를
한번 튕겨 보기 위해 폼을 잡았는데..

글쎄 기타안에서 웬 이상한 소리가 들렸답니다.

찍~~~찍~~~찍!

그것은 바로 쥐소리..

꺅!!!!!!

유난히 겁이 많은 언니는 기타안에서 있는 쥐를 발견하고는 기겁을 하고
기타를 내동댕이 쳤답니다.

너무도 오랫동안 기타를 치지 않아 그 곳엔 쥐의 보금자리(!)가 되었다는..
그시대에는 지금과는 달리 유난히 쥐가 많았던 시대라 다락에는 어느집에나
한 두마리 쥐가 있었을 정도...
ㅋㅋ

저녁에 잠을 자다보면 다락이나 천정에 쥐 지나가는 소리가 한번씩 들리곤 했을 정도니까요.
지금은 상상도 안되는 이야기지만 엄연한 실화라는 사실..

이사하던 날 기타 안의 쥐사건 이후..
언니는 절대 기타에 손도 대지 않았다는...
지금 생각하면 정말 웃긴 일이지요.



남편이 취미삼아 배워야지 하면서 구입하여 이제는 전시용으로
그냥 두고 있는 클래식기타를 보니..

문득 제 어릴적 언니가 기타를 배워 보겠다고 사 놓고 사용도 제대로 못하고
버린 기타가 생각나면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 왜 혼자 웃고 그라노..."

" 응.. 자기 기타보니까 울 언니 옛날에 기타속에
  쥐가 들어가 기겁을 했던 일이 생각나서..
  근데.. 자기도 기타 사 놓기만하고 전시용으로 놔 두다가
  끝내는 버리는 것 아닌가 싶어서..."   

" 걱정마라.. 조만간 배워서 멋진 연주 함 해볼라니까...."

남편의 말에 전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어느 세월에 남편의 멋진 기타연주를 들을 수 있을지...ㅎ
그래도 남편의 말을 믿어야겠지요..
절 위해 연주를 해 준다는데..ㅋㅋ

살면서 제 생각을 많이 해주는 남편이 늘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한답니다.
그래서 남편이 하고자 하는 일엔 되도록이면 잔소리를 안하고 밀어 주려고도 하구요..

" 자기야..근데 기타 부식 되기전에 연주 되겠제..ㅎ"
ㅋㅋ..

언제가 될지 몰라도 묵묵히 기다려 볼랍니다.
설마...
나무가 썩을때까지 모셔 두진 않겠죠..
ㅎ..

추억은 때론..
잊혀져가는 옛기억을 선명하게 떠 올리게 하는 마음의 거울 같아요. 


                   

며칠동안 날씨가 많이 추워 집에서 자잘한 정리를 시작으로 청소를 했습니다.
역시 겨울은 청소하기 좋은 계절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 무슨 소리고? ' 라고 의아해 하실 분들 많이 계시겁니다.
ㅎ...
사실 날씨가 좋으면 더 열심히 해야 하는데..
무슨 놈의 약속이 그리 많은지..ㅋ
사실 제가 정한 약속도 좀 있지만..

여하튼 집도 크지 않는데 집안 구석 구석 청소를 해보니
집안 일이란게 해도 끝이 없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오늘은 작은방..
내일은 큰방..
모레는 주방..
글피는 거실..
이렇게 며칠 정해서 청소를 하니 힘은 그리 많이 들지도 않으면서
집안은 훨씬 깨끗해지더군요.
거의 다 집안 청소를 했다 생각했는데..
한군데 건너 띈 곳이 있더군요.
그곳은 바로 ..
신발장.
사실 신발장 청소를 이사 온 후 몇 번 손도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오늘은 신발장 청소 좀 해야겠다.'
사실 제일 하기 쉬울 것 같으면서도 잘 하지 않은 부분이 신발장 청소 같더군요.
신발을 우르르 다 내려 놓고 신발장을 구석 구석 닦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많이 신고 다녀서 더러워진 운동화와 구두 등 분리했지요.

" 햐~ 하이힐 완전 새 신발이네..ㅋ"

정말 오랜만에 만져보는 하이힐이었습니다.
하이힐을 보니 ..
갑자기 하이힐에 대한 웃지못할 황당한 일들이 생각나 웃음이 피식 나오더군요.

" ㅋㅋ...이 놈의 하이힐때문에..참...나.. 벌써 10년이 넘었네.. 안 신은지.."

맞습니다.
전 하이힐을 신지 않은지 10년 가까이나 됩니다.
왜냐하면..
희안하게 하이힐을 처음 신은 그날부터 하이힐은 제 발에 어울리지 않는 신발이었답니다.
왜 이런 말을 하는지 궁금해 하는 분들을 위해 제 추억 보따리를 열어 보겠습니다.

첫번째 하이힐에 대한 추억.

" 니 내일 어디가나? "
" 어...약속이 ..있어서.. 왜? "
" 가시나.. 더듬는거 보니까 남자 만나러 가는가베.."
" ......... "
" 누군데.. 밤에 잠도 안자고 옷장열고 날리고.. 데이트가나.."
" 아니다..그냥 .."
" 가시나.. 말해라.. 누고..어? "
" 사실은 저번에 우리집앞에 데려다 주다 아버지한테 걸린 사람 알제.."
" 응..그 남자보러 가나..근데.. 왜 이리 난리고.. "
" 그게..내일 근사한 곳에 가서 밥 사준다길래.. 그래서 옷 보고 있었다."
" ㅎㅎ.. 그라믄..언니가 골라주는 옷 입고 가라.. "

그렇게 언니가 신경써서 골라 준 옷은 바로 미니치마에 정장 스타일이었습니다.
완죤 언니스타일었죠.

" 언니야..근데..신발이 어울리는게 없는데.."
" 구두도 빌려 신고 가라.. 옷도 빌려 주는데 .. 데이트 잘하고 와라.. "

어린시절 그렇게 많이 싸웠던 작은언니..
크면서 점점 언니는 저에게 늘 신경을 많이 썼답니다.
언니의 배려로 전 언니의 옷과 구두를 몸에 걸치고 데이트 장소에 나갔습니다.

" 와이리..이쁘게 해 왔노.. 니 아닌 줄 알았다.."
" 진짜가.. ㅎ..."

평소 이쁘다는 말을 잘 안하는 경상도 머슴아라..
이쁘다는 말을 들으니 왠지 더 으쓱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우린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했지요.

" 어...밖에 비오는갑다..사람들이 우산을 들고 들어오네.."
" 그러게.. 어짜노.."

창밖을 바라 보니 이제 비가 시작인 것 같더군요.

" 있제..우리 집에 가자..우산도 없고.. 바로 앞에 버스도 오니까..비 더 오기전에 가자.."
" 그라까..."


많은 시간을 레스토랑에서 보냈기때문에 미련은 없었습니다.

" 저기 버스 온다.. 타고 가라.."
" 알았디..집에 가면 전화하께..안녕.."

전 버스를 타기위해 하이힐을 신고 달렸습니다.
그런데...
이게 뭥미..
버스가 도착할 즈음..
버스앞에 막 달려가니 도로공사한다고 물이 길게 고여 있더군요.

' .. 여길 건너야 버스를 타는데... 모르겠다 뛰자..'

버스가 정류소에 막 도착할 즈음..
순간적으로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는 생각을 깜박하고는 
물웅덩이를 향해
슝~~ 몸을 날렸습니다.
헉!
철~~~퍼덕!

조금 아니 1cm만 더 뛰었더도 빠지지 않을 웅덩이에 몸을 완전 박아 버렸습니다.

' 어짜노.. 일어나서 버슬 탈까!"
' 아냐.. 다음 차 타고 갈까! ..아냐..
  그럼 지금 내 몰골을 주위사람들이 다 봤을텐데..';;;;;;


이런 두가지 생각이 쌩하니 뇌리속을 뚫고 지나가더군요.
전 하는 수 없이 전자를 택하기로 하고 흙탕물에 빠진 몸을
억지로 일으켜 버스에 올랐습니다.

버스에 오르자 마자..
버스안의 사람들은 모두 절 보며 어이없고 불쌍하다는 듯 쳐다 보았습니다.

다행스럽게 버스안은 널직했고 전 자리에 앉을 수 있었지요.
자리에 앉자마자 전 창밖을 쳐다 볼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웅덩이에 빠진 모습을 보고 있었을
그 남자의 얼굴을 생각하니 부끄러움이 막 밀려 오더군요.

' 내 못산다..뭐하러 깔롱 부린다고 하이힐을 신어 가지고..
 으..이제 그 남자 어째 보노..'


그 생각에 부끄러워 버스안에서 사람들이 절 쳐다 보는 것은 눈에 들어 오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황당하고 어이없는 모습이었지요.
ㅎㅎ...
그당시 물에 빠진 내모습을 본 그 남자는 지금 제 남편입니다.
ㅋㅋ



두번째 하이힐에 대한 추억.

결혼식을 한달 남겨두고 작은 언니가 백화점에서 구두를 하나 사 준다고 절 불러 냈습니다.

" 니 결혼식때 신을 구두 언니가 첫월급도 타고 해서 사주는거니까..
 부담 느끼지 말고 골라라.."

" 뭐하러 이렇게 비싼데 오노.. 마.. 서면 지하상가에 헐직한 구두하나 사면 된다.."
" 문디..가시나..언니가 사 준다 안하나..응가이 빼고..고르기나 해라..
 니한테 해주고 싶어서 그란다."

" ㅎ.. 고맙데이..근데..언니야 이런데 처음와서 잘 모르겠다. 부끄럽고..언니가 골라도.."
" 알았다.. "

언니는 구두를 꼼꼼히 보더니 몇 가지 골라 와서 제게 내 밀었습니다.

" 한번 신어 봐라.. "
" 이기 다 뭐꼬.. 와이리 높은걸 골란노.. 언니야 너무 높다."
" 문디 가시나..웨딩드레스 입으면 신어야지..남들 앞에서 키 작아 보이면 없어 보인다."
" 그래..없어 보이면 안되지.. ㅎ 그럼 신어 보까..헉! 언니야..신기는 하겠는데.. 못 걷겠다.
  너무 높은데..어짜노..으~~"
" 으이구.. 촌년 아니랄까봐.. 니 맘에 들면 사라.. 몇 번 신고 다니면 익숙해진다."
" 아무래도 너무 높은데...이쁘기는 한데...어짜지.."
" 아가씨..이거 계산해 주세요."

언니는 이쁘다는 제 말에 바로 계산을 해 버렸습니다.
전 어쩔 수 없이 언니가 사 준 하이힐을 결혼식에서 신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일은 결혼식에서 일어 났던 것입니다.
언니가 결혼식 하기전에 몇 번 신어 보라는 말을 듣지 않고
결혼식 당일 처음 신발을 꺼내 신었던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그당시 최고로 높았던 하이힐 높이가 10cm라 처음 신어 본 전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지요.
평소에는 3cm정도 신었었거든요.
결혼식 웨딩 음악이 울리고 신부입장이 내 귀에 들리는 순간..
식장안에 삼촌손을 잡고 걸어 가다 높은 하이힐에 적응을 못한 난
다리가 삐끗해 넘어지면서 입고 있던 웨딩드레스를 밟고 넘어지는 바람에
상체가 벗겨질 뻔 했다는..( 웨딩드레스가 어깨에 살짝 걸친 조금 야했거든요.ㅎ)

" 옴마나.."
헉!
순간 당황한 전 옷을 주섬 주섬 올리느라 진땀을 뺐고
예식장안은 웃음 바다가 되어 버렸답니다.

그날 전 진땀을 하염없이 흐르면서 결혼식을 마쳤답니다.

그로인해..
지금껏 높은 하이힐 공포증이 있어
신발장에 그대로 하이힐을 모셔두고 있답니다
.


갑자기 옛날 생각을 하니 우습기도 하고 재밌네요.
그 당시에는 정말 죽고 싶을만큼 부끄러운 일이었는데 말이죠.

청소를 하다 간만에 높은 하이힐을 보니 추억이 주마등처럼 뇌리속에
스쳐지나가
세월이 참 많이 흘렀구나! 하는 생각에 젖어 보네요.
데이트하고 다닐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누구나 다 ..
잊지 못할 추억이 있겠죠.
왠지 제 추억들은 웃기는 일이 많아 한번씩 추억 속으로 빠지는 날엔
하루종일 이상한 사람처럼 웃고 다닌답니다.
ㅋㅋ...

추억은 때론..
사람들에게 잊혀져가는 웃음과 따뜻한 마음을
다시금 깨우게 해주는 최고의 명약인 것 같습니다. ㅋㅋ.

                   
어제 아침 모임에 가는 길에 정말 오랜만에 연탄 배달하시는 분을 보았습니다.
차곡히 쌓은 검정색연탄을 가득 싣고 어디론가 배달을 가는 듯 보이는 모습에
순간적으로 옛생각이 아련히 뇌리를 스쳐 지나가더군요.
솔직히 도심에서는 흔하지 않은 풍경이라 그런지 더 옛생각이 났는지도 모릅니다.

' 정말 어릴적 생각이 많이 나네...'

연탄 배달차를 보니 문득 어릴적 연탄을 피우며 난방을 했던
시절이 갑자기 뇌리를 스치며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내 어린시절의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고 기억이 됩니다.
바람소리도 얼마나 매섭게만 느껴지던지..
그시절에는 건물들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더 추웠을겁니다.
어느집에 가더라도 두툼한 솜이불은 항상 아랫목에 깔려 있었고,
아랫목 주위의 장판은 누렇게 되어 있었지요.

그 누렇게 변한 아랫목은 집안의 명당자리..
지금 생각하니 생생한 과거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이중창의 창문이었는데도 창문에는 바람이 솔솔~.
우풍이 유난히도 심해서 아랫목에 덮어 놓은 이불안에 들어가 옹기종기 앉아서
언니들과 재미난 이야기를 나누던 추억...
말을 하면 입가엔 김이 서리고, 이불안에 모인 다리엔 땀이 삐질..
생각하니 우습네요..
그래도 그시절에는 연탄으로 난방을 하던 집은 나름 잘 사는 집으로 인식이 되었는데..ㅎ
갑자기 연탄을 떠 올리니 추억이 많이 떠 오르네요.
학교 갔다오면 연탄불이 꺼질까봐 늘 연탄불부터 확인하던 큰언니의 모습..
연탄가스에 죽을 뻔 했던 우리 작은언니..
그때 엄마가 작은언니에게 동치미국물을 먹이며 난리 났던 기억이 나네요..
연탄가스가 그렇게 무서운 줄 그때보고 처음 알았답니다.
그 시절에는 연탄가스로 인해 죽는 사람도 있었으니...
정말 대단하고 위험한 추억이었지요.
그래도 작은 언니는 죽다가 살아 나서 그저 추억이었다고 기억속에만 머물러 있겠지만..

우리 세째언니는 지금도 연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눈시울이 붉어지고
말을 잊지 못한답니다.


세째언니의 연탄에 관한 아픈 추억..
그시절 유난히 추웠던 한겨울..
엄마는 돌이 안된 세째언니를 춥다고 아랫목에 뉘었다고 합니다.
그날따라 바람이 많이 불어서 그런지 더 춥게 느껴지던 겨울의 어느날..
아랫목은 원래 뜨거우니까  이불을 깔고 언니를 눕혔는데도
언니는 방바닥이 너무 뜨거워 등에 화상을 입고 말았지요.
화상을 입을 당시..
부엌에서 밥을 하던 엄마는 아이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에 놀라 방을 뛰쳐 들어가서 보니..
얼굴엔 땀을 흠뻑 흘리며  온 몸이 붉게 달아 올라 엄마가 놀라서 이불을 겉어
아이를 안으니
아기가 입은 옷이 누렇게 될 정도로 타 버렸다는..
그걸 본 엄마는 옷을 벗겨 확인하였다고 합니다.
아기의 등은 이미 붉게 익을 정도로 화상을 입어 난리가 났었다고 했지요.
그 추웠던 한겨울 아버지와 엄마는 병원을 여러군데 뛰어 다녔다고 했습니다.
병원에 빨리 데려 갔지만 워낙 갓난아기라 낫기가 힘들었었다고 했지요.
몇달을 화상이 입은 곳을 치료하면서 고생했다던 부모님..
그래도 언니는 돌때의 기억은 하지 못해도 언니 자신의 몸을 보면서
힘겹게 세월을 보냈을겁니다.

언니의 화상이야기는 내가 사춘기쯤 되어서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요즘처럼 목욕시설이 따로 있지 않은 그 시절에는 일주일에 한번씩 목욕탕을 가곤 했는데..
다른형제들은 다 같이 가는데 유독 세째언니만 목욕탕에 안갔답니다.
하루는..

" 엄마..왜 세째언니는 목욕탕 안 데려가는데.." 라고 물었지요.

난 그때 엄마에게서 언니가 목욕탕에 안가는 이유를 듣고서야 이해를 하게 되었지요. 



언니는 어린시절 등에 입은 화상의 흉터때문에 부끄러워
공중목욕탕에 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수술은 몇 번 했지만..
그시절 의료기술은 지금처럼 완벽하게 흉터가 없어지지는 않았으니까요..

그 흉터 때문인지..
유독 다른형제들과는 달리 말이 없고 성격이 내성적으로 변해 갔지요..
하지만 천성이 착해서 그런지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답니다.
물론 결혼하기전 수술을 두어번하고 말끔하게 지워지지 않았지만..
예전보다는 표시가 별로 없도록하고 말이죠.

추운 겨울 연탄을 생각하니 언니의 아픈 추억이 생각이 나곤 합니다.
언니도 그렇겠지요..
지금은 아파트, 빌라 , 단독주택도 거의가 기름이나 가스로 난방연료로 사용하고,
연탄으로 난방을 하는 분들이 많이 줄었듯이 그에 관한 에피소드도 이제는 줄어 들겠지요.
현재의 삭막한 도심에서의 추억은 미래에는 어떻게 기억될 지는 몰라도
왠지 지금 현재의 모습은 추억이 될 것 같지가 않네요.

어제 아침 도심에서 연탄 배달차를 보면서 잠시나마 어린시절 너무도 추웠던
겨울이란 계절에 펼쳐진 어린시절 추억속에 빠져 봤습니다.

* 며칠 그렇게 날씨가 춥더니 날이 많이 풀렸네요. 모두 건강한 휴일 보내시길 바랍니다.*

                   

동네 아줌마들의 수다방인 우리집 지금은..

다른 곳에는 겨울이면 눈이 자주 온다는데..
부산은 추운 겨울이지만 눈보기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와일로~~~~' ^^;

비가 추적 추적 내리는 오후..
뜨거운 차 한잔을 마시며 책을 읽는 여유도 나름 좋긴 하지만..
오늘은 왠지 차 한잔을 마시며 누구랑 수다를 떨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네요.
가스렌지에 커피 끓일 물을 올려 놓고 물 끓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오늘따라 옛날이 무척 그리워집니다.

어릴적 유난히 우리집에 손님들이 많이 왔던 기억이 뇌리속에 떠 오르네요.
뭐..
손님이라 해봐야 동네 아줌마들이었지만..
겨울방학때 집에 있으면 늘 어김없이 10시쯤되면 아주머니들이
문을 빼꼼히 열고 엄마를 찾는답니다.

" 민서엄마 있어?!.."
" 응.. 정애엄마..들어와요.."
" 있었네..."


있는걸 알며서 오신 분들이면서 꼭 이런 맨트로 대문을 열고 들어 오시지요.

" 안녕하세요.."
" 그래.."
" 공부 잘하고 있나?"
" ........."

난 아줌마들에게 예의상 대충 인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가 버리지요.
왜냐하면 ..
아침마다 아줌마들이 우리집에 와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모습이
별로 달갑지 않았거든요.


' 으..짱나...맨날 놀러오노..'

난 아침마다 오시는 아주머니들에게 늘 반감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그당시 사춘기라 더 예민하게 대응했는지도 모릅니다.
아줌마들의 수다가 몇시간째 계속되다가 점심시간이 되면
다른 집으로 이동해
그나마 다행이었지요.
점심까지 우리집에서 해결하고 갔다면 정말 짜증지대로였을텐데..

" 엄마.. 뭔 이야기를 하는데 매일 아침마다 우리집에 오노.."
" 왜.. 시끄럽더나...문 닫고 조용히 이야기했는데.."
" 하여튼간에 매일 오니까 짜증난다.. "
" .......... "


엄마는 반항하듯 이야기하는 제 모습에 이해를 해 달라는 눈빛을 보냈지만..
난 그당시 이해는 커녕 짜증만 엄마에게 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참 희안하죠.

결혼을 하고 신혼초 나도 엄마처럼 똑 같이 행동했다는 사실..
동네에 같은 또래 친구들과 오전시간만 되면
만나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답니다.


" 있잖아.. 우리 남편 어제 늦게 들어와서 한바탕했다.."
" 우리 시어머니는 왜 그렇게 욕심이 많은지...참나.."
" 옆집 할머니 있잖아 은근히 우리들 이렇게 모이는게
  별로 안좋게 말하더라.."

" 내비둬.. 남 욕 하는거 하루 이틀 일이가..신경꺼라.."
" 그래.. 우리만 즐거우면 됐지.."
" 하하하..."


모였다하면 집안이야기, 동네이야기, 아이이야기등 주제가
다양해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결혼 초..

같은 또래 동네친구들과 만나 수다를 떠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냥 즐거웠었답니다.


그러다..
이사를 이곳 저곳 몇 군데를 하면서 서로 뿔뿔이 흩어져서 살다보니
옛날과는 달리 먹고 산다고 바빠 사람들과 만나
커피한잔하는 여유로움이 드물어 지더군요.



그렇게 세월이 흘러 ..

요즘에는 누군가가 문을 두드려도 잘 열어주지 않거나,
얼굴만 확인하고 인기척도 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답니다.
점점 삭막해진 현실속에 내 자신도 동화되는 것 같아 씁쓸하더군요.

오늘 겨울비가 추적 추적 오는 가운데 조용히 진한 커피를 마시다 보니 ..
갑자기 옛추억이 떠 올라 나도 모르게 사람소리가 그리워지네요.

ㅎㅎ...

어릴적 우리집에 아침마다 동네아줌마들이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모습을 이해 못 했는데..
살다보니 나도 자연스럽게 엄마의 모습을 점점 닮아 가는 듯해
글을 적으면서도 갑자기 미소가 지어집니다.

누구다 다 그렇듯이..
살아가는 모습은 다 비슷한가 봅니다.

ㅋㅋ



                   

어제 오전에 통장 페이지가 다 되어 새로 만들기 위해 은행에 갔었습니다.
나름대로 이른 시간인데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있더군요.

 " 와이리 많노.."

연말이라 사람들이 많은 것 같기고 했습니다.

 " 날 잘못 잡고 왔네..신정 끝나고 올 걸.."

난 사람이 많은 것에 후회는 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번호표를 뽑고 의자에 앉아 한참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아이가 떼를 쓰며 소리 높이 우는 것이었습니다.

" 조용..입 뚝~!.."

우는 아이에게 엄마가 조용히 나무랐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더 떼를 쓰 듯 소리를 내며 울어대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도 모두 아이와 엄마에게 모여 들었습니다.

" 너 자꾸 떼쓰고 울면 엄마 혼자 집에 가버린다.. 그만 안 그칠래"
앙~~~~~~

아이엄마는 나름대로 사람들이 있어 눈치를 보며 조용히 계속 타이르는데
아이는 정말 완강하게 울더군요.

' 정말 말 안 듣네..'

악을 쓰며 우는 소리에 순간 스트레스가 쌓이는 듯 했습니다.
아이엄마의 번호표를 보니 몇 명만 지나면 차례가 올 듯한데..
아이엄마는 기다리는 것을 포기하고 우는 아이를 데리고 은행을 나갔습니다.
무슨 이유로 우는지는 모르겠지만 말도 안듣고 떼를 쓰는 것을 보니
정말 엄마 말을 듣지 않는 아이더군요.
정신없이 주위 사람들의 혼을 다 빼듯이 우는 아이가 나가 버리니 은행은
고요할 정도로 조용해졌습니다.

 딩~동!

제 번호를 알리는 소리에 난 빨리 몸을 일으켜 은행 볼일을 보았습니다.
은행에서 볼일을 다보고 오후에 약속이 있어 집에 가서 옷을 갈아
입기위해 빠른 걸음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바쁜 마음인데다가 은행에
서 정신없이 울어대는 아이때문에 왠지
피곤함이 밀려왔습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오는길..
은행에서 칭얼대며 큰소리로 우는 아이의 얼굴과 아이를 달래는
엄마의 얼굴이 뇌리에 떠올랐습니다.

' 정말이지..아이 하나도 저렇게 말 안 듣고 울어대면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자식이 6명이나 되는 울엄마는 어떻게 키웠을까!'
란 생각이 들면서..
어린시절 형제가 많아 벌어진 추억들이 뇌리를 스쳐지나갔습니다.

형제가 많으면 성격도 다 틀리고 평소에 하는 행동도 다 다르듯이..
우리형제들도 다양한 스타일의 성격을 가졌답니다.
제일 큰언니는 큰언니라 늘 엄마같은 넓은 마음이고 조용한 스타일..
둘째언니도 나름대로 착하고 순한 성격..
그러나 그 밑 부터는 조금씩 별라다고 해야할까..ㅎ
성격이 모두 큰언니랑 많이 달랐던 기억이 납니다.
특히 세째언니는 너무 별라서  엄마 아빠가 고생이 많았었다는..
한번씩 모임이 있으면 언니들과 세월의 흔적을 이야기하면서
어린시절 세째언니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곤 하지요.
식구가 많아 엄마 아빠가 일부러 울 형제들을 집에 두고 시장에 장을 보러
갈려고 하면
굳이 따라 가겠다고 칭얼대었던 세째언니..
그럼 엄마는 언니, 동생들과 잘 놀고 있으면 시장에 갔다오면서 맛있는거
사준다고 조용히 온화하게 타일러도..
완강하게 칭얼대는 세째언니를 어쩔 수 없이 데리고 장을 보러 갔었답니다.
물론 시장에 데려가면 조용히 있으면 다행이지만 늘 사고뭉치..
엄마가 손을 놓고 물건을 고르기라도 하면 천방지축으로 시장을 뛰어나니며
정신없게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한번은 시장에 데리고 나갔다가 세째언니를 잃어 버려 난리가
났었던 적도 있었다는...ㅋ
그 정도로 별난 개구장이였고 말도 잘 듣지 않았던 언니였답니다. 
(지금은 제일 순한 언니로 변모했지만..)
뭐.. 6형제 중에서 한 명만 별난 사람이 있었겠습니까..
ㅎㅎ..
네째언니는 완전 싸움을 잘하는 여자불량배처럼 동네에서 알아 주는 언니...
(지금은 아님..ㅎ)
어린시절 싸움을 하면 절대 지고 들어 오는 법이 없을 정도로 골목대장..
사실 그 덕분에 난 오빠 없이도 무서울게 없을 정도로 어린시절이 편했습니다.
리고 전 어릴적 집안에서 제일 사랑을 받는 공주마마처럼 자랐구요..ㅎ
딸 중에서 막내인데다가 내 밑에 남동생을 본 부모님은 터를 잘 팔았다고
늘 귀하고 이쁘게 키우셨습니다.
그렇게 온실속의 화초처럼 크다보니 그당시( 어린시절 )에는
사회성이 조금 떨어 졌을 정도..
학교에 가면 공부밖에 몰랐고..
남자 여자 같이 모여서 노는 놀이는 잘 하지 않고
그저 고무줄놀이나 공기놀이, 놀이터에서 놀이기구를 타며 노는게 전부였지요.그래서 일까! 
요즘 아이들이 지금 말하는 집단 왕따도 당했지요.ㅋ
그래도 전 하나도 무섭지 않았답니다.
왜냐..
싸움 잘하는 네째언니를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와서 날 괴롭힌
아이들은 혼내줬으니까..

ㅎ....

이렇듯 식구가 많으면 각자 성격이 달라서 엄마는 늘 신경을 많이 써야했고..
자식들이 말을 안 들으면 머리에 흰머리가 쑥쑥 자랐을 정도로
스트레스였을것입니다.

어제 한 아이가 칭얼대고 정신없이 하는 것을 보니 새삼스레
많은 자식들을 돌보고 키우셨던 우리 엄마를 생각하니 
대단하다는 말 밖에 안 나오더군요.
한 명도 아니고 6명이나 키웠으니 말입니다.

몸이 호리호리하고 겉보기에는 약했지만..

' 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하다.' 란 말처럼 
그 당시 어려운 환경에서도 우리들을 바르게 키운 생각을 하니
정말 대단하신 분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겠더군요.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는 말처럼
늘 똑같이 우리들을 사랑하신 엄마..
갑자기 엄마가 우리에게 해 주신 사랑을 생각하니..
너무나도 그리워집니다.
자식이 많아 고생을 다른 엄마들 보다 더 많이 하셨을 울 엄마..
이제사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리게 됩니다.
엄마와 함께했던 지난날을 회상하니
왠지 오늘따라 참 못난 딸이었다는 생각이 더 드는 것 같습니다.

문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야 왜 이제사 철이 드는지..

그저 내 자신이 부끄럽기까지 하네요.
조금만 일찍 부모님의 깊은 사랑을 알았더라면..
하는 생각이 드는 2009년 12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11월.....

낙엽이 울긋 불긋 옷을 입고 ..
선선한 바람이 스치는 늦가을..
제가 1년 중에 제일 기다리는 달이지요..

무슨 중요한 날이라도 있나요?.." 라고 묻는다면

" 네~!....." 라고 큰소리로 말하고 싶습니다.

바로 제 생일이 있는 달이기 때문이지요..ㅋ
누구나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생일은 다 기다려지잖아요. 
나만 그런가?!..ㅎㅎ

특히 여자들은 감수성이 예민해 생일날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와 선물을 받으면
그날 하루 만큼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이 날아 갈 듯한 기분을 만끽 하지만,
생일을 제대로 지내지 못하거나, 서운했다면 돌아오는 생일을 기다리는 1년은 정말 길게 느껴지지요.
생일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에 대한 축하와 살아가면서 행복을 만끽하게 만들어
준 탄생을 의미하는 날이라 더 그렇다고 할 수 있을겁니다.

그런데 늘 제 생일이 가까워지면 희안하게 우리 세째언니가 생각이 납니다.
왜냐하면..
결혼하고나서 한번도 생일상을 제대로 차려 먹지 못했기때문이지요.

세째언니는 맏며느리로 시집을 가 시댁어른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시댁의 모든 제사는 언니가 신경써서 지내야 하는 막중한 사명감을 떠 안고 늘 살고 있기도 하구요.
( 맏며느리의 숙명!)
그런데 왜 그것하고 생일하고 무슨 관련이 있나 궁금 하겠지요.
관련이 있습니다.

시댁에서는 언니생일이 되면 축하는 고사하고 생일밥도 못차려 먹는다는..
이유인 즉슨..

언니생일 바로 뒷날 시댁에서 제사가 있고..
언니 생일 2틀후에 형부생일이 있어 ..
그것때문에 생일을 못 지낸답니다.


한마디로 언니의 시댁어른들은
남자생일 바로 앞에 여자생일이 있으면
절대 여자가 먼저 생일상을 차려 먹으면 안된다고 하여..

결혼하고 바로 그 해부터 지금껏 언니는 시댁에서 생일 당일에 생일밥을 해 먹지 못하고 있다는..

처음에 친정 부모님들이 그런 사실을 언니를 통해 듣고 조금 황당해 하고 이해를 못했었지요.
하지만 시댁에서 그런 문화적 풍습을 이야기하 굳이 언니의 편을 들어 불화를 이르키고 싶지 않아..
친정부모님은 생일 당일날은 제사 때문에 바쁘니..
언니생일전에 친정에 와서 생일밥이라도 먹고 가라고 했었던 일이 기억에 납니다.

결혼하면 시댁의 풍습에 따라야 하는게 우리나라 전통이치로 일상화 되어 있잖아요.
따지고 보면 그것 때문에 언니는 생일에 제대로 대접을 못 받았답니다.

생일이란게 생일 당일에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고,
생일밥을 먹고 미역국을 끓여 먹어야 생일이지..
생일 며칠전이나 며칠후에 지내는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언니는 지금껏 시부모님을 20년 넘게 모시고 살면서 생일 당일 생일밥을 먹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 언니의 사정을 잘 알기에 우리 형제들은 한달에 한번 만나는 계(모임)을 통하여
언니의 생일달이 되면 밥도 사주고 선물도 줬답니다.
결혼 초에는 생일 달만 되면 우울하게 1달을 보냈다고 했던 언니였었는데..
지금은 세월이 많이 흘러 이제는 포기하고 산다고 하더라구요.
말은 안했지만 생일 당일에 생일밥도 손수 못해 먹는 언니가 안쓰럽기까지 했습니다.

11월 ..
제 생일이 있는 달이면
그래서 언니 생각이 더 난답니다.

그런데 저도 사실 신혼때 언니와 비슷한 일이 있었지요.
제 생일 5일전에 울 랑님 생일이 있거든요..
생일을 가까이 남겨두고 시어머니의 한마디 때문에 우린 생일을 앞두고
심하게 말다툼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당시 시어머니께서 하셨던 말씀..
" 니 생일하고 울 아들생일하고 며칠 차이 안나니까 따로 지내지 말고 한번에 모아서 지내지!"
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인 한마디.. 
" 울 아들이 생일이 빠르니까 아들생일에 같이 지내라 번거롭게 따로 지내지 말고.."

난 그날 솔직히 너무 황당해서 아무말도 할 수 없었지요.
나도 우리친정에선 귀하게 자란 딸이고, 어릴적부터 생일만 되면 행복에 겨운 날을 보냈었는데..
결혼하고 시댁에 와서 즐거운 생일을 앞두고 이런말을 들으니 정말 황당하더군요.
그날 저녁 랑님에게 솔직히 어머니께서 그런말 하니까 서운하더라고 말을 했었지요.

" 무슨 제사도 아니고.. 생일을 모아서 같이 지내는 사람이 어딨노.."  라고 하면서..
이렇게 서로 대화를 주고 받다 언성이 높아 졌습니다.
끝내는 제 심정을 이해한 울랑님 조용히..

" 그냥 하는 소리겠지.. 신경 쓰지마라..우리 평소에 하던대로 따로 지내면 되지.." 
라고 말하며 그일을 마무리 지었지요.
사실 그당시 시어머니께서 신랑생일때나 내생일때나 미역국을 끓여 주시는 것도 아니고
생일을 챙겨 주는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하시는 말씀이 내심 서운해 더 기분이 언잖았는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그 일을 마음에 접어두고..
생일이 되면 신랑생일, 내생일 나름대로 크게는 차리지 않지만 생일밥과 미역국은 따로 끓여서
나름 자신의 생일을 축하하며 지낸답니다.



갑자기 생일이 가까워지니 생일을 결혼 후 제대로 지내지 못한 언니가 생각이 많이 나네요.
정말로 결혼하면 남자생일보다
하루전이나 이틀전 여자생일이 있으면 여자는 생일을 지낼 수 없는지..

지금도 이해를 못하고 지내고 있답니다.
꼭 그렇게 해야만 하는지...

생일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날인데 말이죠!
안 그런가요~.
그저 11월만 되니 또 생각이 나네요.
 

태그 : 결혼, 생일, 시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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