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라는 단어가 대단하고 위대한 이유는...

2009. 12. 31. 05:30추억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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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전에 통장 페이지가 다 되어 새로 만들기 위해 은행에 갔었습니다.
나름대로 이른 시간인데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있더군요.

 " 와이리 많노.."

연말이라 사람들이 많은 것 같기고 했습니다.

 " 날 잘못 잡고 왔네..신정 끝나고 올 걸.."

난 사람이 많은 것에 후회는 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번호표를 뽑고 의자에 앉아 한참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아이가 떼를 쓰며 소리 높이 우는 것이었습니다.

" 조용..입 뚝~!.."

우는 아이에게 엄마가 조용히 나무랐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더 떼를 쓰 듯 소리를 내며 울어대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도 모두 아이와 엄마에게 모여 들었습니다.

" 너 자꾸 떼쓰고 울면 엄마 혼자 집에 가버린다.. 그만 안 그칠래"
앙~~~~~~

아이엄마는 나름대로 사람들이 있어 눈치를 보며 조용히 계속 타이르는데
아이는 정말 완강하게 울더군요.

' 정말 말 안 듣네..'

악을 쓰며 우는 소리에 순간 스트레스가 쌓이는 듯 했습니다.
아이엄마의 번호표를 보니 몇 명만 지나면 차례가 올 듯한데..
아이엄마는 기다리는 것을 포기하고 우는 아이를 데리고 은행을 나갔습니다.
무슨 이유로 우는지는 모르겠지만 말도 안듣고 떼를 쓰는 것을 보니
정말 엄마 말을 듣지 않는 아이더군요.
정신없이 주위 사람들의 혼을 다 빼듯이 우는 아이가 나가 버리니 은행은
고요할 정도로 조용해졌습니다.

 딩~동!

제 번호를 알리는 소리에 난 빨리 몸을 일으켜 은행 볼일을 보았습니다.
은행에서 볼일을 다보고 오후에 약속이 있어 집에 가서 옷을 갈아
입기위해 빠른 걸음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바쁜 마음인데다가 은행에
서 정신없이 울어대는 아이때문에 왠지
피곤함이 밀려왔습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오는길..
은행에서 칭얼대며 큰소리로 우는 아이의 얼굴과 아이를 달래는
엄마의 얼굴이 뇌리에 떠올랐습니다.

' 정말이지..아이 하나도 저렇게 말 안 듣고 울어대면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자식이 6명이나 되는 울엄마는 어떻게 키웠을까!'
란 생각이 들면서..
어린시절 형제가 많아 벌어진 추억들이 뇌리를 스쳐지나갔습니다.

형제가 많으면 성격도 다 틀리고 평소에 하는 행동도 다 다르듯이..
우리형제들도 다양한 스타일의 성격을 가졌답니다.
제일 큰언니는 큰언니라 늘 엄마같은 넓은 마음이고 조용한 스타일..
둘째언니도 나름대로 착하고 순한 성격..
그러나 그 밑 부터는 조금씩 별라다고 해야할까..ㅎ
성격이 모두 큰언니랑 많이 달랐던 기억이 납니다.
특히 세째언니는 너무 별라서  엄마 아빠가 고생이 많았었다는..
한번씩 모임이 있으면 언니들과 세월의 흔적을 이야기하면서
어린시절 세째언니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곤 하지요.
식구가 많아 엄마 아빠가 일부러 울 형제들을 집에 두고 시장에 장을 보러
갈려고 하면
굳이 따라 가겠다고 칭얼대었던 세째언니..
그럼 엄마는 언니, 동생들과 잘 놀고 있으면 시장에 갔다오면서 맛있는거
사준다고 조용히 온화하게 타일러도..
완강하게 칭얼대는 세째언니를 어쩔 수 없이 데리고 장을 보러 갔었답니다.
물론 시장에 데려가면 조용히 있으면 다행이지만 늘 사고뭉치..
엄마가 손을 놓고 물건을 고르기라도 하면 천방지축으로 시장을 뛰어나니며
정신없게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한번은 시장에 데리고 나갔다가 세째언니를 잃어 버려 난리가
났었던 적도 있었다는...ㅋ
그 정도로 별난 개구장이였고 말도 잘 듣지 않았던 언니였답니다. 
(지금은 제일 순한 언니로 변모했지만..)
뭐.. 6형제 중에서 한 명만 별난 사람이 있었겠습니까..
ㅎㅎ..
네째언니는 완전 싸움을 잘하는 여자불량배처럼 동네에서 알아 주는 언니...
(지금은 아님..ㅎ)
어린시절 싸움을 하면 절대 지고 들어 오는 법이 없을 정도로 골목대장..
사실 그 덕분에 난 오빠 없이도 무서울게 없을 정도로 어린시절이 편했습니다.
리고 전 어릴적 집안에서 제일 사랑을 받는 공주마마처럼 자랐구요..ㅎ
딸 중에서 막내인데다가 내 밑에 남동생을 본 부모님은 터를 잘 팔았다고
늘 귀하고 이쁘게 키우셨습니다.
그렇게 온실속의 화초처럼 크다보니 그당시( 어린시절 )에는
사회성이 조금 떨어 졌을 정도..
학교에 가면 공부밖에 몰랐고..
남자 여자 같이 모여서 노는 놀이는 잘 하지 않고
그저 고무줄놀이나 공기놀이, 놀이터에서 놀이기구를 타며 노는게 전부였지요.그래서 일까! 
요즘 아이들이 지금 말하는 집단 왕따도 당했지요.ㅋ
그래도 전 하나도 무섭지 않았답니다.
왜냐..
싸움 잘하는 네째언니를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와서 날 괴롭힌
아이들은 혼내줬으니까..

ㅎ....

이렇듯 식구가 많으면 각자 성격이 달라서 엄마는 늘 신경을 많이 써야했고..
자식들이 말을 안 들으면 머리에 흰머리가 쑥쑥 자랐을 정도로
스트레스였을것입니다.

어제 한 아이가 칭얼대고 정신없이 하는 것을 보니 새삼스레
많은 자식들을 돌보고 키우셨던 우리 엄마를 생각하니 
대단하다는 말 밖에 안 나오더군요.
한 명도 아니고 6명이나 키웠으니 말입니다.

몸이 호리호리하고 겉보기에는 약했지만..

' 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하다.' 란 말처럼 
그 당시 어려운 환경에서도 우리들을 바르게 키운 생각을 하니
정말 대단하신 분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겠더군요.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는 말처럼
늘 똑같이 우리들을 사랑하신 엄마..
갑자기 엄마가 우리에게 해 주신 사랑을 생각하니..
너무나도 그리워집니다.
자식이 많아 고생을 다른 엄마들 보다 더 많이 하셨을 울 엄마..
이제사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리게 됩니다.
엄마와 함께했던 지난날을 회상하니
왠지 오늘따라 참 못난 딸이었다는 생각이 더 드는 것 같습니다.

문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야 왜 이제사 철이 드는지..

그저 내 자신이 부끄럽기까지 하네요.
조금만 일찍 부모님의 깊은 사랑을 알았더라면..
하는 생각이 드는 2009년 12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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