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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나면 옛날 니 짝사랑했다던 그 오빠한테 얼굴한번 보여 줘라"

" 응?! 그게 뭔 말인데? "
" 중학교때 니 짝사랑 했다던 오빠 화상 입어서 많이 아프다메.."
" 아....."
" 근데 ..자기 내 블로그 봤나? "
" 응.. 우연히...."


정말 뜻밖의 남편의 말에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평소에 남편은 제 블로그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했었거든요.
다른 블친님들은 남편과 공유하며 서로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많은 관심을 가져 주는데 울 남편은 제가 블로그를 3년 넘게 하면서
남들처럼 관심은 커녕 신경도 안 썼답니다.
뭐 제가 블로그를 취미삼아 재밌게 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제가 글을 올리고 한번 보라고 하면 무뚝뚝한 말투로..

" 뭐할라꼬.. 됐다...마..."

이렇게 단호하게 말 하고는 한번도 제 블로그를 보지 않았는데
이게 무슨 일..
2주 전 올렸던 글
[25년 전 짝사랑 했다던 오빠에게서 보고 싶다는 연락을 받으니..]
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면서 짝사랑했다던

오빠에게 얼굴한번
보여 주는게 지금 니가 해 줄 수 있는
최선이라는 말을 꺼냈답니다.

" 뭐할라꼬..됐다..
마음은 친구들하고 한번 얼굴한번 보러 가야지 싶었는데.."
" 그럼 보면 되지.. 화상때문에 몸이 많이 안 좋다메..
만약 무슨 일이 있고 나서
뒤늦게 후회하지 말고 한번 찾아 가라..
옛날에 그렇게 니한테 잘해 줬다면서..그게 사람 도리다."


남편의 뜻밖의 말에 순간 할말을 잃었답니다.
만약 남편과 내가 역지사지의 입장이었다면 남편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지요.
아마도 전 그런 말 자체도 하지 않을 뿐 더러 오히려 그런 글을
적었냐며 잔소리를 해 댔을겁니다.
속 좁게 말이죠..

" 다음 주 쉬는 날 친구들하고 갔다 온나.."
" 친구들이 나처럼 월요일에 쉬나.. 토,일요일에 쉬지..
다음에 보고 시간 맞춰서 .."

" 그라믄..나하고 같이 가까.. 인사도 할겸..."
" 인사는 무슨 ..ㅎㅎ.."
" 왜?! 옛날에 니한테 그렇게 잘 해줬다면서.. 그거 거짓말이가 그럼.."
" 거짓말은.. 맞는데..갑자기 자기가 같이 가자고 해서 좀 놀라워서..
하여튼간에 고맙다.."

" 맞제..고맙제.. 내가 그런사람이다..마음이 넓은...하하하..."


맞았습니다.
평소 무뚝뚝하고 말이 없는 남편이었지만 한번씩 절 놀라게 할 만큼
멋진 분이란 것을 말입니다.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 오는 길..
오늘따라 남편의 모습이 어찌나 크고 넓게 보이던지..

아마도 남편의 속 깊은 마음을 봐서 더 크게 느껴졌는지 모릅니다.
" 자기야.. 고맙다...진짜로....."

 


 


" 우째 지냈노.."

" 잘 지냈지.. 니는? "
" 잘 지냈다..진짜 오랜만이다 그자.."

정말 오랜만에 친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스마트폰의 영향때문에 종종 친구들의 연락을 카톡으로 받아서 참 좋습니다.

" 니 전화번호 알아 낼려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나..
얼마전 정숙이한테서 전화번호 알았다."

가족들과 외식하러 갔다가 우연히 작은언니를 만나고 나서 내
전화번호를 알아내
전화를 했던 정숙이가 친구들에게 내 전화번호를
가르쳐 준 모양이었습니다.

사실 연락을 하면 할 수 있는 상황이었겠지만 다들 결혼하고 남편 직장따라
이곳 저곳 이사를 하는 바람에 연락이 끊긴 친구들이 많았지요.

" 목소리 옛날하고 똑같네.."
" 글라.. 니도 마찬가지다.. "
" 많이 변했겠네.."
" 변했지..살도 많이 찌고..ㅎㅎ"
" 난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 같다.."
" 진짜가..부럽다.. 빼짝 마른게 요즘엔 대세아니가.."
" 하하하하하....."

누구나 다 그렇듯이 사회생활하면서 만난 친구들과는 달리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학창시절때 친구들과 통화는 사심이 없고
늘 애뜻함이 묻어 있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 언제 한번 봐야지.."
" 그래.. 쉬는 날 언젠데? "
" 월요일.."
" 월요일?!.. 난 일요일에 쉬는데...."
" 다음에 보고 내가 일요일에 시간 낼께.."
" 그라믄 좋고..."
" 근데..니 근철이오빠 소식 들었나?"
" 아니.. 왜? "
" 내 그럴 줄 알았다.. 다음에 시간내서 근철이오빠도 함 보자..'
" 근철이오빠?!.."
" 응.. 니 억수로 보고 싶다고 해서.. 얼마전에 만났거든..
맞다..내 말안했제.. 근철이오빠 우리동네 그처 산다.."
" 그렇구나.."

오랜만에 연락을 해서 그런지 친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늘어 놓았습니다.

뭐.. 저 또한 오랜만에 옛날 이야기를 들으면 잠시나마 학창시절 그때의
기분이 많이 들어 좋더군요.

그런데 친구와 대화를 하다 조금 당황스런 말을 들었습니다.
학창시절 같은 동네에 사는 오빠 즉 날 짝사랑했던 근철이오빠가 20대
초반에 집에
큰불이 나서 전신화상을 입었다고 하더군요. 
친구 말로는 전신화상으로 몇 번 수술을 했다고는 하지만 흉터가 많아
거의 집에서 생활을 하다시피 한다고 한마디로 대인기피증으로 인한
휴유증으로 사람들을 잘 안 만난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날 많이 보고 싶어한다고 했습니다.
학창시절 같은 동네 오빠였지만 늘 친오빠 같이 챙겨주는 정말
친절한 오빠였지요.

중학교를 졸업하고 알았지만 그 오빠가 날 엄청 좋아했었다고
친구에게서 뒤늦게 알았답니다.

그 당시엔 솔직히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요.
하지만 딸기농장을 크게 하며 나름대로 잘 살았던 오빠는
딸기철만 되면 박스로 주고 했었지요.
물론 다른 친구들에겐 주지 않았고 저만 챙겨 주었지요.
여하튼 늘 뭐든 잘 챙겨주는 오빠로 기억이 됩니다.

그런데 어린나이에 짝사랑한 절 지금껏 잊지 못하고 있다는
말에 솔직히 급 당황했답니다.

여하튼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죽기전에 꼭 한번 얼굴이라도 보고
싶어 한다는 친구의 말에 놀랐고
지금까지 잊지 않고 좋은 추억으로
기억하고 보고 싶어하는 오빠의 말에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습니다.


" 자기야.. 중학교때 늘 챙겨 주는 동네 오빠가 있었거든..
친구가 그러는데 꼭 한번 보고 싶어한데..
뭐..친구들이랑 같이 보는거고.."
" 보라매.." (만나 보라는 경상도 사투리.)
" 진짜?!.."
" 중학교때 니 잘 챙겨 줬던 오빠라메..
지금껏 못 잊고 보고 싶어하는데 얼굴 한번 보여줘라..

몸도 많이 안 좋다면서.. "
" 그라까......ㅎ"

남편은 언제나 나한테는 긍정적인 마인드입니다.
그래서 더 고맙게 느끼며 살고 있지요.
근데 솔직히 아무리 학창시절 잘 해주고 알았던 오빠였지만
세월이 많이 흘러서 만나는거라 조심스럽기도 하네요.

25년이란 긴 세월이 흐렀지만..
학창시절 짝사랑 했었던 한 소녀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모습에 왠지모를 순수함이 묻어 있어 보입니다.

다음달 친구들과 같이 25년 전 날 짝사랑했었던 오빠를 만나기로 했습니다.
흉터가 많아 옛날 모습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다는 친구가 만나도 절대
놀라지 마라며 당부했지만
전 걱정하지마라고 오히려 친구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왜냐하면 시간이 많이 흐른 만큼 세상을 보는 눈이 겉만 아닌 마음으로
읽을 줄 아는 나이가 되었기때문입니다.
근데 솔직히...
좀 설레이기도 하네요.....ㅎㅎ

 

 
" 어머니는?! "
" 날도 춥고 몸도 안 좋아서.. 우리끼리 왔어요.."
" 많이 안 좋으시나? "
" 아뇨.. 걱정할 정도는 아니구요.."
" 그럼 같이 오지..택시타면 바로 오는데.. "

겨울방학이라고 시골에서 시누와 애들이 시어머니댁에 머물고 있습니다.
어제는 남편에게 전화를 해 '오빠가게에 놀러 가고 싶다'고 그랬나 보더라구요.
예전엔 이런 시누의 행동(무슨 일이 있으면 오빠에게 말하는 버릇..)
서운하기도 했는데..
이젠 그려려니하고 넘어갑니다.
나이가 어려 철이 없어서 그렇겠지라고 생각하고 말입니다.
솔직히 제게 전화를 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느끼지만..
아직도 시누는 저한테 어려운 부분이 많은가봅니다.
여하튼..
시누는 오빠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애들과 가게에 놀러 간다고
이야길 했나 보더라구요.

" 저녁에 가게에 혜령이 온다고 하네..애들하고.."
" 응.... 어머니도 같이 오겠제.."
" 모르겠는데.."
" 알았다.. 그럼 자기 먼저 가게에 들어가라.."
" 뭐할라고? "
" 시장이라도 보고 갈려고..먼저 가레이.."

남편을 먼저 보내고 가게 부근에서 시장을 보고 갔습니다.
그런데..
시누는 어머니와 같이 오지 않았더군요.
시누 이야기를 들어 보니 몸이 아파서 못 온다는 말에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온 시누인데 어머니 이야기만 하는 것도 좀 그래서
시누와 애들 이야기로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맛있는 것을 먹으며 나름대로 재밌게 놀던 녀석들..



저녁을 먹은 후 조금은
지루해졌는지 할머니집에 가자고 난리더군요.

" 도훈아.. 할머니집에 맛있는거 있나?!..
시골에선 삼촌 보고 싶다고 난리였다면서 벌써 갈려고 그라노.."
" 엄마가 매일 맛있는걸 해주니까 그런걸겁니다.."
" 그래...얼마전에 전화통화 하니까 많이 아프신거 같던데..
지금은 많이 좋아 지셨나 보네.."
" 뭐..맨날 그렇지예...그런데도 애들 맛있는거 해 줘요..
제가 한다고 해도 손하나 까딱하지 마라고 하면서..ㅎ"
" 응...."

시누와 이야기를 나누다 왠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더이상 할말이 없더군요.

결혼하고 애도 둘이나 낳은 시누의 이런 행동을 볼때마다..
'철이 들려면 아직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답니다.
아무리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들이라 맛있는 것을 해 주고
싶겠지만,
몸도 많이 불편하고 아프신데 딸래미가 되어 가지고
도와 주지는 못할 망정 친정
엄마가 시댁에서 고생한다고
친정에 오면 무조건 푹 쉬어라는 그 말만 듣고 고지고때로 공주대접을
받고 있는 시누를 보니 할말이 없을 수 밖에..


하지만..
시댁에서 대부분 며느리들이 적게든 많게든..
맘고생, 몸고생을 하고 살다보면 친정엄마의 소중함을 더 잘 알게 되는게
보통인데..

애 둘이나 낳고 나름대로 결혼생활이 긴 것 같은데..
아직도 철이 없게 아픈 엄마가 계신 친정에 가면 편히 쉬고 가는 시누를 
볼때마다 마음이 좀 그렇더군요.

거기다 더 서운한 것은..
집앞에서 택시만 타면 가게에 편하게 올 수 있는데도 시누와 애들만
달랑 오는 모습에
마음이 더 그랬습니다.
그리고 또..
시어머니는 시누와 애들 먹을거리를 만들고 있을거란 소리를 들으니
더 마음이 착잡하더군요.

사실 간만에 왔는데 기분 상할까봐 시누에겐 이런저런 말은 못하고
그냥 어머니 좋아하시는 회라도 많이 보내 드려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래서 집에 갈때 남편에게 어머니 드시게 회 좀 많이 드리자고 했지요.
그랬더니 옆에서 시누가 듣고는 제게 하는 말..

" 언니.. 전 회보다 멍게랑 오징어랑 주세요..
지금 집에 가면 저녁은 드셨을것 같은데..
회 안 드실것 같은데.. "
" 아...네... 그래도 아들이 챙겨주는 회인데.. 드실겁니다.. 같이 나눠 드세요.."

' 문디..콧꾸멍.. 어찌.. 지('자기'의 사투리) 묵는거 밖에 모르노..으이구..'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고 그 말이 입가에 맴돌더군요.
여하튼..
시누와 애들은 해산물과 회를 들고 어머니댁으로 돌아 갔습니다.

여름방학과 겨울방학때만 되면 애들 데리고 부산에 오는 시누..
며칠 머물다 가는 것도 아니고 한달이라는 기간동안 어머니댁에 머물지만
아직도 예전(결혼 전)의 공주마마인냥 어머니가 해 주시는 음식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시누만 뭐라고 할 입장도 못되지요.
시어머니께선 늘 딸을 안타깝게 보시니까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몸이 아파도 딸만 오면 뭐든 다 해 준답니다.
딸이 먹고 싶은 것..
손주들이 먹고 싶은 것등을 말이죠.
그리곤..
시누가 집으로 가고 나면 몸살이 나서 완전 들어 누우실 정도입니다.

그런 모습을 몇 년간 보다 보니 시누가 애들 방학이라고 오면
시어머니를 보는 며느리입장에서 괜히 신경이 쓰인다는..

여하튼..
해가 바뀌면 좀 나아지겠지! 하고 생각을 하지만..
바뀌는건 없는 것 같네요.
그런데..
이런 상황..
시누만의 문제는 아니겠죠..
왠지 그런 생각이 들기도합니다.

* 부모님과 회를 맛있게 먹었다고 시누가 문자를 보냈네요.*



저(올케언니)에게 잘하는 것을 보면 참 이쁘고 좋은데 제가 원하는건..
어머니에게도 참 잘했으면 하는데.. 그게 잘 안되나 봅니다.
 
 


" 자기야.. 전화 계속오는데.. 누군데 이 시간에..."


한참 단잠에 빠져 들고 있는데 진동으로 해 놓은 전화가 계속 울렸습니다.
요즘 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관계로 새벽녘에 잠을 청하는 바람에
조금 선잠을 자는 편인데 왠 전화가 한번도 아니고 계속 울리는 것입니다.
남편은 워낙 잘 자는 스타일이라 진동을 해 놓듯, 소리를 해 놓 듯..
상관이 없이 잘 자지만 전 예민한 성격이라 조그만 진동에도 잠을 깰
정도...

그렇게 남편의 핸드폰은 10분 간격으로 울려댔지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남편을 흔들어 깨웠답니다.
혹시나 시댁에 무슨 일이 있어서 그런가 싶어서 말이죠.

" 누군데? "
" 동생이네.."
" 이 시간에 자는거 모르나...무슨 일 있나? 전화해 봐라.."
" 나중에..신경쓰지 말고 자라.."


남편은 동생때문에 곤한 잠을 깬 내게 미안했는지..
신경쓰지 말고 잠을 자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한 숨 자고 일어나서 남편은 전화를 계속 해 댄
동생에게 전화로 무슨 일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동생 하는 말..
얼마전에 뭐 좀 오빠집으로 부쳐 줄려고 문자를 넣었는데
답이 없어서
전화 했다고 했습니다.

" 뭐 부쳐 준다고? "
" 응.. 김하고 젓갈.."
" 갑자기 왜? "
" 먹으라고 그러겠지.. "
" 아니 그게 아니고.. 갑자기 뭘 부쳐 준다고 하길래.."


맞습니다.
동생은 어촌에서 큰 양식장을 하는데도
지금껏 살면서 뭘 부쳐 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다가 안부전화도 늘 오빠에게만 할 뿐 제겐
전화를 잘 하지 않는답니다.

물론 그런 점에 대해서 섭섭해하는 것을 남편도 잘 알기에
동생이 전화를 하면
꼭 이렇게 한마디 더 하지요.
" 언니한테도 나중에 시간나면 전화 한통해라.. " 고..
그럴때마다 시누(동생)는 알았다는 말은 잘하지만 선뜻
전화는 하지 않습니다.

뭐..간혹 제가 먼저 조카들 잘 크냐고 안부를 묻곤 합니다.
처음엔 나이도 어리고, 세상 돌아가는 것도 잘 모르고 어색해서
그렇겠지라고 생각했는데 희안하게
결혼 생활이 깊어 질 수록
더 친해야 함에도 더 멀게 느껴지게 행동하더군요.
그럴때마다 솔직히 말은 직접적으로 안 했지만 서운했답니다.
물론 남편은 그런 제 마음을 읽고 있었지요.

" 어짜꼬? "
" 뭘?!.."
" 촌에서 뭐 부친다는데.."
" 알아서 하라고 해라.."
" ........ "


솔직히 전화 한통이라도 내게 먼저 했으면 좋게 말했을텐데..
시누하는 행동은 여전히 좀 그렇더군요.
나름대로 신경을 써주고 잘 해 준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멀게만 생각하고 있다고 여기니 마음이 더 섭섭했습니다.
뭐..남편에게 일일이 설명은 안 했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남편은 조금이라도 동생과 가깝게 지낼 수 있게 볼려고
일부러
저보고 동생을 이해해 달라지만 좀 그렇더군요.

여하튼..
결혼하고 지금껏 멀게만 느껴지게 만들고 있는 시누의 행동을
언제까지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는지 좀 그렇습니다.
혹시 이번에 시골에서 뭐 좀 부친다는 시누의 말이
내게 화해의 신호를 보내는 것인지 생각 좀 해 봐야겠습니다.
물론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말이죠.
사실 오빠에게 문자를 넣지 말고 제게 문자를 먼저 넣었다면
지금껏 서운했던 모든 일들이 다 없어졌을텐데하는 아쉬움을
접어 보면서 말입니다.
 

 

" 그런건 민성이아빠보고 사 달라해야지..음..사이즈가 어떻게 되는데..알았다."
" 왜? 무슨 일인데.."
" 응...혜진이가 양산하고 민성이 신발 사 달라고 그라네.. "
" 응.. 근데..무슨 날이가?."
" 아니..자기 동네엔 이쁜 양산하고 신발이 없다고.."
" 뭐?!....30분만 차 타고 나가면 마트 큰 거 있잖아..자기 사 준다고 했나? "
" 응...니가 내일 보고 신발 하나 사서 부쳐줘라.."
" 참나.. 자기 알아서 해라..뭔데..한 두번도 아니고.."


결혼 후 전화만 하면 거의 90%가 필요한 것을 오빠에게 사 달라는 시누..

처음엔 남편따라 시골로 가서 산다고 좋아라 하더니..
막상 시골로 이사를 가보니 적응이 안된다며 늘 하소연하던 시누.
멀리서나마 전화로 많이 다독여주며 감싸줬는데..
시누는 가면 갈 수록 적응을 하지 못하면서 남편과 삐끗한 모습이었고,
멀리서 시누에 관한 소식을 듣는 것도 신경이 많이 쓰였답니다.

그렇게 늘 신경이 많이 쓰이면서 시한폭탄같은 시누가
전화만 했다하면 오빠에게..


' 이거 사죠! '
' 저거 사죠! ' 하며 떼쓰는 모습이 옆에서 볼때마다 더 짜증이 많이 났지요.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라는 생각에 몇 년을 기다리고 기다려도 도시에서
30년동안을 살다 시골로 가서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나 보더라구요.
부부간의 사소한 일이 있어도 뽀르르 전화를 하고..
부부간의 다툼이 있는 날이면 갓난애기를 데리고 4시간이 넘는 거리인
친정에 가서 있는 모습이 옆에서 보기에도 정말 철이 없게 느껴졌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는 시어머니는 어땠을까요.
속으로 많이 아파했을겁니다.

그렇다고 제가 그 모습을 보고..
' 으이구.. 자기 동생은 와글로...애기가 둘이면 좀 철이 들때도 됐는데..' 라고
랑님에게 말하고 싶지만 저보다 그 모습을 보고 더 짜증난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니
그저 아무말도 하지 않고 옆에서 모른척 바라 볼 뿐이었습니다.

원래 그렇잖아요.
시댁에서 일어나는 일을 일일이 간섭하고 이야기하면
남자들 대부분이 별로 듣기 안 좋아한다는거..

그렇게 늘 시한폭탄같은 시누의 결혼생활에 옆에서 보는 사람들이 모두 불안해 했답니다.

그렇게 4~ 5년동안 늘 걱정을 안겨 준 시누가
시골에서 조금씩 안정된 생활을 하면서 예전의 철없는 모습은
점점 줄어 들었습니다.

작년에는 시누가..

" 언니 우리집에 놀러와요.. 오빠랑 며칠 쉬었다 가요..집 새로 지었어요" 라며
평소와 다른 환한 느낌이었답니다.

" 자기야..동생 보러 한번 내려 갈래?."
" 뭐하러.. 잘 살면 됐지..."
" 으이구..그래도 이제 적응하고 사는가 본데.. 오라고 할때 한번 가보자.."
" 시간되면..."


물론 울랑님 제가 먼저 가자고 이야기하니 슬쩍 빼는 척 했지만..
마음은 동생에게 달려가고 싶었을겁니다.
우린 그렇게 동생이 사는 시골로 갔지요.


*시누가 살고 있는 강진마량 풍경.*


*시누가 하는 전복양식.*

시골에서 이제는 잘 적응하고 사는 시누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습니다. 우린 세월이 약이라는 말을 새삼 실감하고 돌아 왔지요.
마음은 늘 불안하고 초조했지만 표시를 내지 않았던 것을 시누에게 표현하지 않아서 일까요. 요즘에는 예전의 자신이 했던 행동이 미안했는지 성숙한 이미지로 다가오는 것 같아 흐뭇합니다.

예전에는 전화만하면 갖고 싶은 것 사달라고 떼를 쓰던
시누가 요즘에는 안부전화로 바꼈답니다.

" 오빠 추운데 감기는 안 걸렸어? "
" 언니.. 늘 건강 조심하세요.." 로 말입니다.


*2009년12월 31일 시누에게서 온 문자.*

예전에 철없고 시한폭탄같았던 시누가
이렇게 다른사람을 생각하고 이해하는 마음을 지닌것을 보니..
오래전 시누에 대한 서운했던 감정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때론 이 모든 나쁜 감정들을 표출하지 않은채 기다려주고 포옹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지금의 좋은 결과가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ㅎ

역시..
살아가면서 때론..
세월이 약이 되기도 하네요.

 


*다음 메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