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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추억으로 남는 목욕탕 안내문

" 니 국민학교 몇년도에 졸업했노? "

" 국민학교?!.... 몇년도 였더라??"

" 갑자기 물어 보니 잘 모르겠제.."

" 그러게...근데 갑자기 그건 와 물어 보노.."

" 어...어제 국민학교 동창들 까똑보다 옛날 생각이 나서.."

" 풉...싱겁기는..."

 

 

그러고 보니 참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어느덧 중년의 나이에 들어섰으니 말입니다. 뒤도 돌아 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갑작스런 남편의 질문에 답을 못할 정도로 오랜 세월이 지나 버린 후입니다.

 

" 나..어제 국민학교 동창들 까똑모임에 가입했다. "

" 어.."

" 참 우스운게 국민학교 졸업사진을 보니 나도 날 못찾겠더라.. ㅋㅋ"

" 옛날에 다 그렇지..흑백사진이라 ..."

" 어제 까똑에 보니 웃긴 내용이 있더라.. 나중에 한번 봐라.."


 

말로는 설명이 어렵다는 남편...

저녁에 남편이 보내 준 까똑 캡쳐사진을 보곤 남편 말대로 정말 웃음이 나오더군요.

 

졸업어릴적 추억을 회상하며 올린 목욕탕 안내문 ..

목욕탕 문구빵 터지는 옛날 목욕탕 문구

 

 어린이 여러분
어린이 여러분들의 국민학교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여러분들은 이제부터 어젓한 중학생입니다.
따라서 목욕요금도 일반요금 800원을 내야합니다.
어떤 어린이는 집에서 부모님으로 부터 800원을 받아 가지고 와서는 국민학생이라고 속여 400원은 군것질을 하는데, 이것은 아주 나쁜 일입니다. 우리 대한의 어린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올바르고 참되게 자라야 합니다

1979년 2월  일
사단법인 한국목욕업중앙회 000지부

ㅋㅋㅋㅋㅋ

웃겨

추억추억이 느껴지는 초등학교 졸업앨범

목욕탕 요금이 그 옛날엔 단돈 400원 했던 적이 있었나 할 정도로 신기하기까지 하네요. 거기다 초등학교 졸업을 하고도 계속 목욕요금을 초등학생 요금으로 내고 다녔던 학생들이 많았던 시절...아마 지금의 중학생처럼 훌쩍 커버린 모습이 아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던 것 같네요. 지금은 추억의 목욕탕 이야기지만 그 당시의 재미난 생활상을 조금이나마 엿 볼 수 있는 안내문구라 재밌고 신선한 느낌마져 듭니다.

 

30년 전 대중목욕탕에서의 진풍경들.." 그땐 그랬지.."

공중목욕탕에서 점점 잊혀져가는 소중한 추억들..

 

타이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영도다리 축제

얼마전 부산의 한 축제인 영도다리 축제에 갔었다. 평소 남포동, 광복동을 많이 갔지만 사실 광복동을 지나는 길임에도 영도 쪽은 잘 가지 않았는데 이번 영도다리 축제를 맞아 영도다리도 보고 축제도 구경하기로 했다. 새롭게 생긴 영도다리를 먼 발취에서 보다가 직접 영도다리를 걸어 보니 기분이 참 묘했다. 지금껏 차를 이용해 영도다리를 다닐때와 사뭇 다른 느낌이 들어 더 그랬는지 모르겠다.

 

옛날 물건요즘 아이들은 모르는 옛날 아이스크림 통

6.25때 한창 많이 생겼다는 영도다리 바로 옆 점집이다. 전쟁 후, 전국에서 피난을 부산으로 내려 와 뿔뿔히 흩어진 가족들의 생사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많이 찾아 갔다던 그 많던 점집은 이제 몇 집에 불과하다.

 

세월의 흐름에 떠 밀려 옛날 이곳에서 그렇게 번창했다던 점집도 하나 둘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 되었다.

 

영도다리 옆 점집 골목

 

영도다리이다. 보기엔 별로 볼게 없는 평범한 다리지만 오후 12시가 되면 싸이렌 소리와 함께 한쪽 다리가 들려지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이건 다음 포스팅에 자세히 소개하겠다. 너무 웅장해서 사진 몇 장으로 그 모습을 다 표현하기가 쉽지 않기때문이다.

 

영도다리 한쪽에는 차단기가 내려 오는 곳도 있다. 영도다리가 들려 질때 관광객들의 안전을 위해 설치해 놓은 차단기이다. 바닥에 관람하는 곳도 적혀 있다. 물론 다리가 들려질때는 자동차가 다니는 차도에도 들어가 관람할 수 있기때문에 이곳에서만 관람하라는 것은 아니다.

 

영도다리에서 바라 본 자갈치시장과 부두

 

영도다리를 지나다 보면 이렇게 역사의 흔적도 엿 볼 수 있다. 옛날에 영도다리가 들려지던 모습이다.

 

 가을 느낌이 물씬 느껴지는 영도다리 풍경

 

영도다리 맞은 편에 있는 부산대교의 모습

 

영도다리 아래로 지나오면 한 켠에 옛날 삶의 모습을 엿 볼 수 있는 장소가 나온다. 요즘 아이들에겐 새로운 경험을 나이 드신 어른들은 추억의 장소로 인기가 많았다.

 

 옛날 만화방

 

박상사란 제목을 보니 전쟁 후 얼마 되지 않아 나온 것 같기도 하고...40대인 나도 모르는 만화이다. 사실 난 어릴적 만화를 잘 보지 않았기때문에 만화제목을 봐도 별 감흥이 없다.

 

뜨아... 만화 삼매경에 빠져 있는 사람들 ..옛날 만화이지만 아이들에겐 재밌고 신기하게 다가 오나 보다. 물론 어른에겐 추억의 만화책이 될 것이고..

 

'볼운삐리를 보면 즉시 신고합시다.' 란 포스터를 보니 아무래도 50~60년대 포스터 같다.

 

옛날 사진관

 

교복과 가족 사진을 찍었던 장소로 사용했던 쇼파가 눈에 띈다.

 

어느 집이나 흑백으로 된 결혼사진과 백일.돌사진은 이렇게 액자에 넣어서 벽에 걸어 뒀던 기억이.. 정말 오래된 추억 속의 사진이다.

 

 

구두닦이용 의자와 솔 그리고 구두약

 

쥐를 잡자 포스터를 보니 어릴적 기억이 새록새록 ... 유난히 쥐가 많았던 그 시절이었지.. 지금은 독한 약때문인지 아님 깨끗한 환경때문인지 보기 힘든 해충이 되었다.

 

지금의 작은 마트같은 개념인 연쇄점은 그 옛날 각 동네마다 하나 둘씩은 있었다. 한마디로 구멍가게라고 해야 더 어울릴 곳... 70년대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조미료의 시장을 그대로 엿 볼 수 있는 건 바로 연쇄점마다 조미료 광고가 많았다는 점이다. 지금은 상상도 하지 못하는 일이지만...

 

태평양패션에서 나 온 라보라 속옷은 옛날 정말 잘 나가던 속옷이었다. 거기다 구두약은 집에 다 필수적으로 있었던 기억이..아마도 교복을 입고 다니는 시절이라 신발을 늘 닦아야하기에 더 그랬나 보다.

 

우앙.... 반가운 스타킹... 80년 대 학창시절 정말 없어서는 안될 여자들의 스타킹..그 당시에 제일 잘 나갔던 스타킹 색깔이 비둘기색이다. 지금 생각하면 좀 웃기지만...

 

데이트 비누 우리집에서 자주 사용한 비누... 아.... 정말 눈이 따가웠지...ㅋㅋㅋ

 

 

붕어빵 기계인데 옛날엔 붕어빵 크기가 참 컸던 기억이 난다.

 

담배가게를 보니 추억이 새록새록 떠 오른다.청소에 갔을때 시골 할아버지는 새마을 담배를 피우는 것을 많이 봤고 아버진 청자 담배를 피웠었다. 요즘엔 금연하는 분들이 많았지만 옛날엔 남자가 결혼하면 다 담배를 피는 줄 알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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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동안 날씨가 많이 추워 집에서 자잘한 정리를 시작으로 청소를 했습니다.
역시 겨울은 청소하기 좋은 계절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 무슨 소리고? ' 라고 의아해 하실 분들 많이 계시겁니다.
ㅎ...
사실 날씨가 좋으면 더 열심히 해야 하는데..
무슨 놈의 약속이 그리 많은지..ㅋ
사실 제가 정한 약속도 좀 있지만..

여하튼 집도 크지 않는데 집안 구석 구석 청소를 해보니
집안 일이란게 해도 끝이 없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오늘은 작은방..
내일은 큰방..
모레는 주방..
글피는 거실..
이렇게 며칠 정해서 청소를 하니 힘은 그리 많이 들지도 않으면서
집안은 훨씬 깨끗해지더군요.
거의 다 집안 청소를 했다 생각했는데..
한군데 건너 띈 곳이 있더군요.
그곳은 바로 ..
신발장.
사실 신발장 청소를 이사 온 후 몇 번 손도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오늘은 신발장 청소 좀 해야겠다.'
사실 제일 하기 쉬울 것 같으면서도 잘 하지 않은 부분이 신발장 청소 같더군요.
신발을 우르르 다 내려 놓고 신발장을 구석 구석 닦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많이 신고 다녀서 더러워진 운동화와 구두 등 분리했지요.

" 햐~ 하이힐 완전 새 신발이네..ㅋ"

정말 오랜만에 만져보는 하이힐이었습니다.
하이힐을 보니 ..
갑자기 하이힐에 대한 웃지못할 황당한 일들이 생각나 웃음이 피식 나오더군요.

" ㅋㅋ...이 놈의 하이힐때문에..참...나.. 벌써 10년이 넘었네.. 안 신은지.."

맞습니다.
전 하이힐을 신지 않은지 10년 가까이나 됩니다.
왜냐하면..
희안하게 하이힐을 처음 신은 그날부터 하이힐은 제 발에 어울리지 않는 신발이었답니다.
왜 이런 말을 하는지 궁금해 하는 분들을 위해 제 추억 보따리를 열어 보겠습니다.

첫번째 하이힐에 대한 추억.

" 니 내일 어디가나? "
" 어...약속이 ..있어서.. 왜? "
" 가시나.. 더듬는거 보니까 남자 만나러 가는가베.."
" ......... "
" 누군데.. 밤에 잠도 안자고 옷장열고 날리고.. 데이트가나.."
" 아니다..그냥 .."
" 가시나.. 말해라.. 누고..어? "
" 사실은 저번에 우리집앞에 데려다 주다 아버지한테 걸린 사람 알제.."
" 응..그 남자보러 가나..근데.. 왜 이리 난리고.. "
" 그게..내일 근사한 곳에 가서 밥 사준다길래.. 그래서 옷 보고 있었다."
" ㅎㅎ.. 그라믄..언니가 골라주는 옷 입고 가라.. "

그렇게 언니가 신경써서 골라 준 옷은 바로 미니치마에 정장 스타일이었습니다.
완죤 언니스타일었죠.

" 언니야..근데..신발이 어울리는게 없는데.."
" 구두도 빌려 신고 가라.. 옷도 빌려 주는데 .. 데이트 잘하고 와라.. "

어린시절 그렇게 많이 싸웠던 작은언니..
크면서 점점 언니는 저에게 늘 신경을 많이 썼답니다.
언니의 배려로 전 언니의 옷과 구두를 몸에 걸치고 데이트 장소에 나갔습니다.

" 와이리..이쁘게 해 왔노.. 니 아닌 줄 알았다.."
" 진짜가.. ㅎ..."

평소 이쁘다는 말을 잘 안하는 경상도 머슴아라..
이쁘다는 말을 들으니 왠지 더 으쓱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우린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했지요.

" 어...밖에 비오는갑다..사람들이 우산을 들고 들어오네.."
" 그러게.. 어짜노.."

창밖을 바라 보니 이제 비가 시작인 것 같더군요.

" 있제..우리 집에 가자..우산도 없고.. 바로 앞에 버스도 오니까..비 더 오기전에 가자.."
" 그라까..."


많은 시간을 레스토랑에서 보냈기때문에 미련은 없었습니다.

" 저기 버스 온다.. 타고 가라.."
" 알았디..집에 가면 전화하께..안녕.."

전 버스를 타기위해 하이힐을 신고 달렸습니다.
그런데...
이게 뭥미..
버스가 도착할 즈음..
버스앞에 막 달려가니 도로공사한다고 물이 길게 고여 있더군요.

' .. 여길 건너야 버스를 타는데... 모르겠다 뛰자..'

버스가 정류소에 막 도착할 즈음..
순간적으로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는 생각을 깜박하고는 
물웅덩이를 향해
슝~~ 몸을 날렸습니다.
헉!
철~~~퍼덕!

조금 아니 1cm만 더 뛰었더도 빠지지 않을 웅덩이에 몸을 완전 박아 버렸습니다.

' 어짜노.. 일어나서 버슬 탈까!"
' 아냐.. 다음 차 타고 갈까! ..아냐..
  그럼 지금 내 몰골을 주위사람들이 다 봤을텐데..';;;;;;


이런 두가지 생각이 쌩하니 뇌리속을 뚫고 지나가더군요.
전 하는 수 없이 전자를 택하기로 하고 흙탕물에 빠진 몸을
억지로 일으켜 버스에 올랐습니다.

버스에 오르자 마자..
버스안의 사람들은 모두 절 보며 어이없고 불쌍하다는 듯 쳐다 보았습니다.

다행스럽게 버스안은 널직했고 전 자리에 앉을 수 있었지요.
자리에 앉자마자 전 창밖을 쳐다 볼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웅덩이에 빠진 모습을 보고 있었을
그 남자의 얼굴을 생각하니 부끄러움이 막 밀려 오더군요.

' 내 못산다..뭐하러 깔롱 부린다고 하이힐을 신어 가지고..
 으..이제 그 남자 어째 보노..'


그 생각에 부끄러워 버스안에서 사람들이 절 쳐다 보는 것은 눈에 들어 오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황당하고 어이없는 모습이었지요.
ㅎㅎ...
그당시 물에 빠진 내모습을 본 그 남자는 지금 제 남편입니다.
ㅋㅋ



두번째 하이힐에 대한 추억.

결혼식을 한달 남겨두고 작은 언니가 백화점에서 구두를 하나 사 준다고 절 불러 냈습니다.

" 니 결혼식때 신을 구두 언니가 첫월급도 타고 해서 사주는거니까..
 부담 느끼지 말고 골라라.."

" 뭐하러 이렇게 비싼데 오노.. 마.. 서면 지하상가에 헐직한 구두하나 사면 된다.."
" 문디..가시나..언니가 사 준다 안하나..응가이 빼고..고르기나 해라..
 니한테 해주고 싶어서 그란다."

" ㅎ.. 고맙데이..근데..언니야 이런데 처음와서 잘 모르겠다. 부끄럽고..언니가 골라도.."
" 알았다.. "

언니는 구두를 꼼꼼히 보더니 몇 가지 골라 와서 제게 내 밀었습니다.

" 한번 신어 봐라.. "
" 이기 다 뭐꼬.. 와이리 높은걸 골란노.. 언니야 너무 높다."
" 문디 가시나..웨딩드레스 입으면 신어야지..남들 앞에서 키 작아 보이면 없어 보인다."
" 그래..없어 보이면 안되지.. ㅎ 그럼 신어 보까..헉! 언니야..신기는 하겠는데.. 못 걷겠다.
  너무 높은데..어짜노..으~~"
" 으이구.. 촌년 아니랄까봐.. 니 맘에 들면 사라.. 몇 번 신고 다니면 익숙해진다."
" 아무래도 너무 높은데...이쁘기는 한데...어짜지.."
" 아가씨..이거 계산해 주세요."

언니는 이쁘다는 제 말에 바로 계산을 해 버렸습니다.
전 어쩔 수 없이 언니가 사 준 하이힐을 결혼식에서 신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일은 결혼식에서 일어 났던 것입니다.
언니가 결혼식 하기전에 몇 번 신어 보라는 말을 듣지 않고
결혼식 당일 처음 신발을 꺼내 신었던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그당시 최고로 높았던 하이힐 높이가 10cm라 처음 신어 본 전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지요.
평소에는 3cm정도 신었었거든요.
결혼식 웨딩 음악이 울리고 신부입장이 내 귀에 들리는 순간..
식장안에 삼촌손을 잡고 걸어 가다 높은 하이힐에 적응을 못한 난
다리가 삐끗해 넘어지면서 입고 있던 웨딩드레스를 밟고 넘어지는 바람에
상체가 벗겨질 뻔 했다는..( 웨딩드레스가 어깨에 살짝 걸친 조금 야했거든요.ㅎ)

" 옴마나.."
헉!
순간 당황한 전 옷을 주섬 주섬 올리느라 진땀을 뺐고
예식장안은 웃음 바다가 되어 버렸답니다.

그날 전 진땀을 하염없이 흐르면서 결혼식을 마쳤답니다.

그로인해..
지금껏 높은 하이힐 공포증이 있어
신발장에 그대로 하이힐을 모셔두고 있답니다
.


갑자기 옛날 생각을 하니 우습기도 하고 재밌네요.
그 당시에는 정말 죽고 싶을만큼 부끄러운 일이었는데 말이죠.

청소를 하다 간만에 높은 하이힐을 보니 추억이 주마등처럼 뇌리속에
스쳐지나가
세월이 참 많이 흘렀구나! 하는 생각에 젖어 보네요.
데이트하고 다닐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누구나 다 ..
잊지 못할 추억이 있겠죠.
왠지 제 추억들은 웃기는 일이 많아 한번씩 추억 속으로 빠지는 날엔
하루종일 이상한 사람처럼 웃고 다닌답니다.
ㅋㅋ...

추억은 때론..
사람들에게 잊혀져가는 웃음과 따뜻한 마음을
다시금 깨우게 해주는 최고의 명약인 것 같습니다. ㅋㅋ.

 

 

청도 풍각..

이 이름만 들어도 옛 추억이 주마등처럼 하나 둘 기억되는 어린시절이 떠 오릅니다.

아버지 고향인 청도는 늘 따뜻함이 느껴지는 곳이었습니다.

해마다 아버지의 산소에 들릴때마다 지나치는 이곳 풍각.

이곳에서 아버지께서 생전에 좋아하시던 막걸리를 사 가지고 산소에 갑니다.

이곳은 막걸리 제조장이 있기때문입니다.

 

이번 청도 소싸움을 구경하러 가면서..

잠깐 풍각에 들렀습니다.

곳곳에 새로 지어진 조그만 마트나 은행들이 있지만..

그래도 주변은 과거의 흔적을 나름대로 간직하며 있었지만,

너무 오래된 건물들은 이제 자물쇠로 꼭꼭 대문이 채워져서 철거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에 조금은 옛 향수를 느낄 수 있었던 모습이 사라짐에 씁쓸했습니다.

그래서..

언제 철거 될지도 모르는 풍각의 오래된 건물들을 사진으로 담아 왔습니다.

철거되면..

새롭게 변한 풍각의 모습에 옛향수가 사라질까봐...

 

 

 

 

가축병원.

 

요즘 말하면 동물병원이겠죠..

가축병원이라고 적혀 있으니 나름 향수가 묻어나는 느낌이 듭니다.

 

 

 

의상실..

 

 

방앗간.

 

벼농사를 하셨던 할아버지 덕분에 늘 집에는 쌀이 넘쳐 났던 어린시절..

나름대로 동네에서 갑부라고 할 만큼 여유가 있었다는..

제 고향은 부산이지만..

어린시절 기억이 나는 것은 흰쌀밥을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던

집은 동네 몇 곳 안됐던 기억이 납니다.

그당시.. 쌀이 없어 밀가루로 끼니를 때우는 친구도 있었지요.

방앗간을 보니 가래떡과 시루떡을 많이 해 먹었던 어린시절이 생각이 납니다.

 

 

 

' 꼬~~꼬댁'

 

 

시골 장날이면 어김없이 닭들을 많이 팔던 시장..

장닭이라고 불리는 체격이 좋고 다리힘도 좋아 어린시절 닭을 보면 도망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철거를 기다리고 있는 옛 건물..

세월이 많이 흐른만큼 많이 낡았네요.

 

 

이 모습도 이제 과거속으로 ...

 

 

 

청도 풍각에 유명한 탁주..

풍각탁주..

탁주를 제조하는 제조장이 풍각에 있습니다.

지금은 옛 모습을 나름대로 잘 간직하고는 있지만..

많이 낡아서 이 모습또한 얼마있지 않으면 보기 힘들것도 같네요.

 

 

 

제조장이 엄청 컸습니다.

어린시절 아버지를 따라 이곳을 지날때도 엄청 커서 으리 으리 했던 기억이 있었는데..

세월이 흘러 아버지 나이가 되어서 다시 찾아와서 봐도 옛 모습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제조장 내부의 모습.

 

 

예전처럼 탁주를 많이 만들지는 않지만..

아직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풍각 두부공장.

금방 만든 뜨끈한 두부를 한입 먹으면..

으....

정말 맛있지요.

 

 

풍각 곳곳에는 오래된 건물이 나름대로 있었는데..

이 모습도 이제 많이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풍각의 도로에 있는 건물들이 거의가 오래된 건물입니다.

현재는 나름 보수도 하고 유지하고 있지만..

시골에 사시는 분들이 점점 줄어 들다보니..

점차 사라지는 옛 건물들이 많이 생기더군요.

 

 

쌀박산..

 

정말 정겹게 들리네요.

옛날에는 쌀박산이 최고의 간식거리였는데..

이제 이 모습도 추억으로 사라지나 봅니다.






여러분도 추억이 묻어 있는 잊혀져가는 곳을 사진으로 담아 보세요..
훗날..
잊지 못할 추억이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