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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게안에 연탄타는 냄새 많이 안나? "
" 그렇제..나도 나는데.."
" 금방 불 갈았나? "
" 아니 ..아까(시간이 좀 됐다는 의미).."
" 근데 왜 이렇게 냄새가 계속 나지?!.."
얼마전부터 가게안에 연탄을 갈때 일시적으로 나오는 일산화탄소 냄새가
연탄이 활활 타는대도 계속 나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일부러 환풍기도 더 틀고 신경을 많이 썼답니다.
날 춥다고 환기도 잘 안하고 그러면 아무래도 위험할 것 같은 예감때문이었지요.
" 이상하네.. 왜 그렇지?! "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날을 잡아 한번 점검해 보기로 했답니다.


일단 연탄위의 철망을 제거 한 후 어디가 막혔는지 일일이 점검해 보기로 했지요.
사실 겉으로 보기엔 아무 이상이 없었기때문에 속부터 점검했답니다.
" 희한하네...안도 이상이 없는 것 같은데...."
" 자세히 봐봐...어...저기 봐.. 연기 빠져 나가는 부분이 막힌 것 같은데.."
" 진짜네... "
남편과 꼼꼼히 점검해 본 결과 연기가 빠져 나가는 부분이 막혀 있었습니다.


연탄냄새가 나는 원인을 알고 난 뒤 남편은 바로 막힌 부분을 확인하고자
연통을 분리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뭥미?!......

겉이 멀쩡하던 연통이 작은 힘에도 순식간에 부서지더군요.

완전히 연통이 꽉 막힌 것을 보니 아무래도 일산화탄소때문에 삭은 것 같았습니다.
" 그럼 그렇지..이렇게 꽉 막혀 있으니 연탄냄새가 날 수 밖에..."
저 또한 남편만큼 연통 속을 보고 놀랐답니다.

뜯어 낸 연통입니다.
겉은 새것처럼 보여도 안은 완전 막히고 삭아서 연통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물론 연통을 연결하는 부분도 거의 반이상 꽉 막힌 상태였구요.

그래서 일단 연통을 연결하는 부분을 깨끗이 제거해 새 연통을 연결하기로 했습니다.


뚝딱 너무도 쉽게 연통을 연결하는 남편을 보니 왠지 맥가이버 같은 느낌도 쏴~..
여하튼 새 연통으로 교체해 이제는 연탄가스 냄새때문에 신경을 안쓰게 되었고..
예전처럼 주전자에 물도 데우고 삶은 감자도 올려두고 있습니다.

작은 가게이지만 사람들이 자주 드나 들다보니 날씨가 춥다고 하루종일
히터를 틀고 있자니 전기세가 장난이 아니고..
그렇다고 기름값이 장난이 아닌데 기름을 넣어 따뜻하게 하는 난로를 둘 수도 없고..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가격이 저렴한 연탄난로였습니다.
워낙 경제관념이 확실히 박힌 알뜰한 남편이기에 조금은 시대에 뒤떨어져
보여도
연탄난로가 어느 난방기구보다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격도 저렴하고 하루종일 따뜻하게 보낼 수 있고..
무엇보다도 옛날 추억도 느낄 수 있어 좋습니다.
물론 따뜻하게 겨울을 보낼려면 연통도 한번씩 교환해줘야 한다는
사실을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구요.
여하튼..연탄가스때문에 연탄난로를 치울까 생각도 했지만 원인을 알고
난 뒤
잘 수리해서 사용해 보니 이만큼 저렴하고 좋은 난방기구는 없는 듯 합니다.
경제적이고, 따뜻하고, 운치있고......ㅎ
만약 연탄난로를 사용하고 있는 분이라면..
연탄타는 냄새가 계속 난다고 느껴지면 연통부터 점검해 보시길 바랍니다.

 
 

매축지 마을의 겨울 준비

도심 속 오지마을로 부산에 사는 분들이라도 모르는 분들이 많을
이곳 매축지마을은 정말 다른 달동네의 모습과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물론 달동네처럼 세월의 흔적을 엿 볼 수 있는 곳이라는 공통점은 가지고 있지만
지리적 역사적 의미가  더 깃든 곳이라는 것이 그대로 느껴지는 곳이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곳이라 유난히 나무집들이 많은 매축지마을은
골목안에 다닥다닥 붙은 3평 남짓해 방한칸에 부엌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있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다.
물론 화장실은 공동화장실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사실 시내를 갈때마다 이곳 주위를 자주 지나다녔지만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불과 얼마전에 다큐 3일이란 방송을 통해 알게 되었다.
'부산에 아직도 이런 곳이 있었나?' 할 정도로 솔직히 충격이었다.
다른 지역과 달리 유난히 부산에 달동네가 많지만 평지에 이런 곳이
있다는 사실에 정말 놀랐었다.
무엇보다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곳 매축지마을에서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

높은 빌딩과 고층아파트를 사이에 두고 있는 매축지마을 ..

여전히 이곳은 시간이 멈춰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럼 오늘은 과거로의 여행..
매축지마을 사람들의 겨울나기에 대해 이야기 해 볼까한다.

오지마을처럼 느껴졌던 매축지마을..
지금껏 사람들이 그냥 지나쳤던 골목 골목 사이는 지금의 발전된 주위 풍경과
너무도 대조적인 모습이다.
매축지마을 바로 앞에는 버스정류장도 눈에 띄지 않을 정도니까..
자동차가 없다면 이곳 매축지마을을 찾기가 영 쉽지 않아 보였다.


마치 골목길에 들어서니 과거로의 타임머신을 타고 내린 기분마져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눈에 띈 것은 곳곳에 연탄을 담은 통이 있다는 것이다.


처음엔 집 앞에 물통이 여러개 있길래 물을 담아 놓은지 알았다.
시설이 열악해 수도가 안 들어 오는가하는 생각까지 하게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수도는 건물마다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수도 설치가 집안이 아닌 밖에 설치가 되어 있어 영하로 떨어지는
겨울에는 꽁꽁 얼어 사용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배수로 시설도 좋아 보이지 않았다.
물이 제대로 빠지지 않아 곳곳에 고인 물들이 눈에 띄었다.

거기다 다닥다닥 붙은 집들때문에 햇볕은 거의 들지 않은 상태였다.
낮인데도 골목길안은 어두침침해 보일 정도..


골목길을 거닐다 보니 왠지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까지 들게 했다.
무엇보다도 내 어린시절보다 더 오래된 과거의 모습같았다.


집집마다 큰 물통안엔 따뜻한 겨울을 보내기위한 연탄이 가득한 것을 보니..
내 어린시절 겨울준비는 연탄을 가득 창고에 비축해 뒀던 것이 생각났다.
나름 산다는 집은 창고에 가득했고 그 시절에도 어렵게 살았던 사람들은
연탄을 창고에 비축하지 못해 추운 겨울을 보내야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곳에 사는 분들은 미리 겨울준비를 해 놓은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물통마다 가득 담긴 연탄을 보니 내 마음까지 따뜻해짐을 느껴졌다.


집이 좁은 관계로 집안이 아닌 밖에 연탄을 둬야 할 상황이라 비올 것을 대비해
비닐을 덮어 놓은 것도 눈에 띄었다.


연탄보일러가 밖에 있다보니 이렇듯 보일러가 동파될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감싸 놓은 곳들도 많았다.


주위에 있는 고층아파는 난방을 잘 하지 않아도 우풍이 없어 그리 춥지 않겠지만..
이곳 매축지마을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때문에 햇볕이 제대로 들지 않는
관계로 더 춥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내가 매축지마을을 찾은 날은 날씨가 너무 쾌청했는데 햇볕이 잘 들지
않는 골목길에선 체감온도가 4~5도는 더 낮게 느껴졌다.
이곳 매축지마을을 둘러 보니 오래된 건물이라 창문사이로 엄청
찬바람이 많이 들어 갈 것 같아 내 마음까지 시리게 만들었다.



오래된 세월만큼 삶의 녹록함이 그대로 묻어 있는 매축지마을의 겨울..

집집마다 가득 담긴 연탄을 보며 조금이나마 따뜻한 겨울을 났음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


 

 
어제 아침 모임에 가는 길에 정말 오랜만에 연탄 배달하시는 분을 보았습니다.
차곡히 쌓은 검정색연탄을 가득 싣고 어디론가 배달을 가는 듯 보이는 모습에
순간적으로 옛생각이 아련히 뇌리를 스쳐 지나가더군요.
솔직히 도심에서는 흔하지 않은 풍경이라 그런지 더 옛생각이 났는지도 모릅니다.

' 정말 어릴적 생각이 많이 나네...'

연탄 배달차를 보니 문득 어릴적 연탄을 피우며 난방을 했던
시절이 갑자기 뇌리를 스치며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내 어린시절의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고 기억이 됩니다.
바람소리도 얼마나 매섭게만 느껴지던지..
그시절에는 건물들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더 추웠을겁니다.
어느집에 가더라도 두툼한 솜이불은 항상 아랫목에 깔려 있었고,
아랫목 주위의 장판은 누렇게 되어 있었지요.

그 누렇게 변한 아랫목은 집안의 명당자리..
지금 생각하니 생생한 과거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이중창의 창문이었는데도 창문에는 바람이 솔솔~.
우풍이 유난히도 심해서 아랫목에 덮어 놓은 이불안에 들어가 옹기종기 앉아서
언니들과 재미난 이야기를 나누던 추억...
말을 하면 입가엔 김이 서리고, 이불안에 모인 다리엔 땀이 삐질..
생각하니 우습네요..
그래도 그시절에는 연탄으로 난방을 하던 집은 나름 잘 사는 집으로 인식이 되었는데..ㅎ
갑자기 연탄을 떠 올리니 추억이 많이 떠 오르네요.
학교 갔다오면 연탄불이 꺼질까봐 늘 연탄불부터 확인하던 큰언니의 모습..
연탄가스에 죽을 뻔 했던 우리 작은언니..
그때 엄마가 작은언니에게 동치미국물을 먹이며 난리 났던 기억이 나네요..
연탄가스가 그렇게 무서운 줄 그때보고 처음 알았답니다.
그 시절에는 연탄가스로 인해 죽는 사람도 있었으니...
정말 대단하고 위험한 추억이었지요.
그래도 작은 언니는 죽다가 살아 나서 그저 추억이었다고 기억속에만 머물러 있겠지만..

우리 세째언니는 지금도 연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눈시울이 붉어지고
말을 잊지 못한답니다.


세째언니의 연탄에 관한 아픈 추억..
그시절 유난히 추웠던 한겨울..
엄마는 돌이 안된 세째언니를 춥다고 아랫목에 뉘었다고 합니다.
그날따라 바람이 많이 불어서 그런지 더 춥게 느껴지던 겨울의 어느날..
아랫목은 원래 뜨거우니까  이불을 깔고 언니를 눕혔는데도
언니는 방바닥이 너무 뜨거워 등에 화상을 입고 말았지요.
화상을 입을 당시..
부엌에서 밥을 하던 엄마는 아이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에 놀라 방을 뛰쳐 들어가서 보니..
얼굴엔 땀을 흠뻑 흘리며  온 몸이 붉게 달아 올라 엄마가 놀라서 이불을 겉어
아이를 안으니
아기가 입은 옷이 누렇게 될 정도로 타 버렸다는..
그걸 본 엄마는 옷을 벗겨 확인하였다고 합니다.
아기의 등은 이미 붉게 익을 정도로 화상을 입어 난리가 났었다고 했지요.
그 추웠던 한겨울 아버지와 엄마는 병원을 여러군데 뛰어 다녔다고 했습니다.
병원에 빨리 데려 갔지만 워낙 갓난아기라 낫기가 힘들었었다고 했지요.
몇달을 화상이 입은 곳을 치료하면서 고생했다던 부모님..
그래도 언니는 돌때의 기억은 하지 못해도 언니 자신의 몸을 보면서
힘겹게 세월을 보냈을겁니다.

언니의 화상이야기는 내가 사춘기쯤 되어서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요즘처럼 목욕시설이 따로 있지 않은 그 시절에는 일주일에 한번씩 목욕탕을 가곤 했는데..
다른형제들은 다 같이 가는데 유독 세째언니만 목욕탕에 안갔답니다.
하루는..

" 엄마..왜 세째언니는 목욕탕 안 데려가는데.." 라고 물었지요.

난 그때 엄마에게서 언니가 목욕탕에 안가는 이유를 듣고서야 이해를 하게 되었지요. 



언니는 어린시절 등에 입은 화상의 흉터때문에 부끄러워
공중목욕탕에 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수술은 몇 번 했지만..
그시절 의료기술은 지금처럼 완벽하게 흉터가 없어지지는 않았으니까요..

그 흉터 때문인지..
유독 다른형제들과는 달리 말이 없고 성격이 내성적으로 변해 갔지요..
하지만 천성이 착해서 그런지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답니다.
물론 결혼하기전 수술을 두어번하고 말끔하게 지워지지 않았지만..
예전보다는 표시가 별로 없도록하고 말이죠.

추운 겨울 연탄을 생각하니 언니의 아픈 추억이 생각이 나곤 합니다.
언니도 그렇겠지요..
지금은 아파트, 빌라 , 단독주택도 거의가 기름이나 가스로 난방연료로 사용하고,
연탄으로 난방을 하는 분들이 많이 줄었듯이 그에 관한 에피소드도 이제는 줄어 들겠지요.
현재의 삭막한 도심에서의 추억은 미래에는 어떻게 기억될 지는 몰라도
왠지 지금 현재의 모습은 추억이 될 것 같지가 않네요.

어제 아침 도심에서 연탄 배달차를 보면서 잠시나마 어린시절 너무도 추웠던
겨울이란 계절에 펼쳐진 어린시절 추억속에 빠져 봤습니다.

* 며칠 그렇게 날씨가 춥더니 날이 많이 풀렸네요. 모두 건강한 휴일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