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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8시면 한창 바쁜시간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저녁 6~8시 사이에 제일 주문을 많이 하거든요.아무래도 저녁식사 시간이 겹치다 보니 늘 그시간대가 제일 북새통을 이루는 것 같습니다. 거기다 포장 손님이 지나가는 길에 간혹 예약 전화도 없이 오시면 솔직히 조금 난감할때도 있답니다. 주문이 좀 밀렸으니 포장은 시간이 좀 걸린다는 말은 해도 ' 뭐.. 한 몇 십분이면  충분히 되겠지!' 라는 생각으로 앉아서 기다리지요. 그런데 대부분 예약 포장주문을 하지 않고 오시는 분들을 보면 공통점이 몇 분 지나면 꼭 이런 말을 합니다. " 다 되가지요?!.." 라고 하지만 무슨 일이든 순서가 있는 법..주문이 많아 좀 기다려야 한다고 말을 해도 그 말을 고지고때로 듣지 않고 일하는 사람 신경 쓰이게 계속 다 되어 가는지 묻지요. 음식점을 하고 나서는 우리 나라사람 정말 성격 급하다는 것을 제대로 겪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 외식을 하러 가면 절대 재촉하지 않고 느긋하게 기다리는 버릇까지 생겼지요.

바쁜 저녁시간이 끝나고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밥을 차리고 있는데 우리가게 근처에서 건강보조식품 가게를 하는 사장님이 오셨습니다. 전 또 예약주문도 없이 지나는 길에 주문을 하러 오신거구나하고 생각하고 사장님께 뭘 주문하실건지 물었답니다. 그런데 사장님은 주문을 하러 온 것이 아닌 홍보를 하러 왔다며 살그머니 명함하나를 내 밀었습니다.

" 저녁에 배달이 많으면 저한테도 전화주세요.. "
" 네에?!.." 

사장님이 준 명함엔 '00퀵서비스'란 이름으로 '~일대'까지 배달해 준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 사장님 가게 그만 두셨습니까? "
" 아니요..가게가 6시에 마치니 저녁시간대 활용해 아르바이트로 시작해 볼려구요..
놀면 뭐합니까.. 부지런히 일 해야죠.."
" 아...네.." 

그리곤 사장님은 왜 아르바이트를 할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해 구구절절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건강보조식품을 파는 사장님의 이야기를 다 듣고 보니 정말 사장님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를 할 수 있겠더군요. 이번에 대학입학을 한
아들과 고3인 딸을 둔 한 가정의 아버지.. 가면 갈 수록 물가는 오르고 거기다 등록금까지 천만원대시대에 들어 섰으니 대학생과 고등학생을 둔 사장님의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다가 직업상 건강보조식품은 명절이 아니면 거의 사러 오는 분들이 적어 일주일에 몇 번은 하나도 팔지 못하고 허탕만 치고 집에 가는 일도 많았다고... 그래서 생각해 낸 일이 가게문을 닫는 6시 이후 저녁시간대를 활용해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생활비와 아이들 학비를 감당할 수 밖에 없다고 하더군요.

 " 한번씩 불러 주세요.. 사장님 부탁합니다."

몇 번이고 일이 있으면 불러 달라는 말에 조금 숙연해지더군요. 요즘 4~50대 아버지들 자신의 몸을 돌보는 시간도 없을 정도로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한다고들 하는데 하루 24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직업을 두개이상 가지고 일을 하니 말입니다. 오늘 온 건강보조식품 사장님도 새벽엔 택배로 떡배달을 하시고 낮엔 자신의 가게에서 열심히 장사 ..그리고 가게문을 닫고 나서는 저녁 6시부터 밤12시까지 퀵서비스를 하고 있으니 정말 가족들을 위해서
몸이 열개라도 부족하게 사는 우리네 중년층 아버지의 모습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장님이 나가고 난 뒤 남편과 저녁을 먹으면서 참 많은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 나름대로 일할 수 있을때 열심히 일을 하는건 좋은데 몸도 좀 생각해야할 나이인데 ..."

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했습니다. 사실 남편도 그렇게 느꼈듯이 예전과 달리 많이 초췌해진 사장님의 모습이
지금 4~50대 가장들의 모습같다는 생각도 들었답니다. 우리가게에 퀵서비스로 자주 오는 한 분도 퀵 뿐만 아니라 다른 일 하나 더 하고 있거든요.. 여하튼 이젠 하나의 직업으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밑거름이 되지 않는 현실에 그저 씁쓸할 뿐이었습니다. 
( 자주 시키는 퀵서비스옆에 붙여 둠..)
 
p.s...대학생을 둔 4~50대 분들 뿐만 아니라 어느 연령층이든 경제가 어렵다 보니 정말 힘들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요즘인 것 같습니다. 물론 옛날에도 그랬겠지만 요즘엔 더욱더 몸으로 절실하게 느껴지니까요. 자신의 몸은 언제부터인지 없어진지 오래이고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우리네 가장.. 다시한번 그 고마움을 느끼는 하루가 되었음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오늘은 사랑하는 아버지나 남편의 어깨를 사랑으로 따뜻하게 감싸는 하루가 되었음합니다.

 
 

11시가 넘은 시간에 남편과 잘 알고 지내는 지인이 오셨습니다.

퇴근하고 오는 길이라 그런지 무척 피곤한 얼굴이더군요.

" 잠깐 배달 갔는데 곧 올겁니다..잠시만 앉아서 기다리세요."

남편이 저녁 늦게 아는 형님이 오실거란 말을 했기때문에
손님의 방문에 그리 놀라진 않았지요.

차를 대접하며 잠시 기다리라고 말을 하고 있는데 때맞춰 남편이 들어 왔습니다.

" 아이고..형님.. 잘 지내셨습니까? 바로 앞에 배달갔다 온다고.."
" 장사는 잘 돼? "
" 이제 자리 잡은 것 같아요..단골도 좀 있구요.."
" 그래.. 다행이네.. "
" 뭐 좀 드릴까요.. 술 한잔 하셔야죠.."
" 안 먹어도 돼.. 조금전에 막걸리 한잔 먹고 와서 배 불러.."

작년에 가족들과 함께 본 후 오랜만이라 남편은 무척 반가움을 표시했습니다.
근데 오랜만에 동생 얼굴을 보러 온 지인은 왠지 얼굴빛이 어두워 보이더군요.
나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남편도 그렇게 느꼈나 봅니다.

" 형님.. 요즘 어디 아프고 그러진 않죠?
살이 좀 빠진 것 같고 얼굴빛도 좀 안 좋네요.."

" 몸 안 좋은건 없는데 사는게 좀 피곤하네..
돈 들어 갈때는 많고 돈은 없고..허허.."

" 아이고..형님이 돈 없다는 말을 다 하시고..왜 이러십니까.."
" 동생은 잘 못 느끼겠네..
 딸래미 둘 키우는데 가면 갈 수록 어찌나 돈이 많이 들어가는지

 아르바이트 하나 더 해야 할 지경이야.."
" 형수님도 돈 벌잖아요.. "
" 둘이 벌어도 애들 학비에 학원비에 생활비..어휴.. 힘들다 ..힘들어..
딸래미라서 그런지
돈이 더 많이 들어가는 것 같애..가면 갈 수록 힘들다 .."

지인은 남편을 보자마자 요즘 많이 힘들다며 하소연을 했습니다.
10년 가까이 나름대로 친했던 사이라 남편은 지인의 말에 이해하는 눈치였습니다. 

아이들이 어릴때는 키우는 재미에 흠뻑 빠져 좋았는데..
아이들이 커 가면서 경제적으로 돈이 많이 들어가다보니 허리가
휘청거린다며 지인은 무척 힘들어 했습니다.

현재 지인은 직장생활에 새벽에 아파트내 세차 아르바이트까지 한다고 하더군요.
잠은 하루 3~4시간 자면 많이 자는거라고 하면서 말이죠.

" 같이 벌어도 나가는 돈이 많으니까 투잡해도 힘들어.."
" 네...그래도 몸 생각하면서 일하세요.. 작년보다 살 많이 빠져 보이는데..
피곤하게도 보이구요...몸이 재산입니다. 형님.."
" 나도 동생처럼 조그만 가게나 하면서 맘 편하게 살고 싶네.."
" 형님도 참...."

남편은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지인은 한 30분 동안 앉아서 하소연을 한 후 집에 가려고 일어서더군요.

" 동생.. 회 작은거 한 도시락 해 줘..집에 가져가게.."

지인은 남편에게 회를 포장해 달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작은 도시락이 아닌 큰 도시락 가득 회를 포장해 주며
2만원을 건내는 지인에게 그냥 넣어 두라고 하더군요.
다음에 밖에서 만나면 한잔 사라는 말을 하며 말입니다.
12시가 넘은 시간에 가족을 위해 회를 포장해 달라는 지인의 모습에서
옛날 자식들을 위해 고생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순간 느껴졌습니다.

* 요즘 남자들 정말 힘들게 사회생활을 하는 것 같습니다.
  옛날
에도 그랬지만..
  남에
게 싫은 소리를 들으며 힘들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지만.
  사랑
하는 가족을 위해서 참고 또 참는 우리네 가장입니다.
  다시
한 번 그 고마움을 맘으로 느끼는 하루가 되었음합니다.*

 


 
 

어릴적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다가가기 힘든 어려운 분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 정도로 마음 편하게 대화 할 정도는 아니라서 그런지 늘 근엄함
그자체였습니다.
처.자식들을 위해서 늘 바쁘게 열심히 일을 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없어서 대화가 없다보니 더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일을 마치고 나면 친구들과 함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시느라
일주일에 서너번은 술이 얼큰하게 취해 붉게 취기가 오른 얼굴을
집에 들어 온 아버지의 모습이 세월이 많이 흘렀음에도 아직도 생생하네요.
일찍 집에 오기라도 하시면 저녁식사를 마치고 피곤한 몸으로 일찍 잠자리에
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어린 마음에 어른이란 존재가 참 힘들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습니다.
사실 그런 생각도 아버지에게 조금씩 다가가면서 더 많이 느끼게 되었네요.
그렇게 나이가 한 두살 들어가면서 아버지에 대해 많이 이해하고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하려고 다가 갈려고 하니 아버진 어느새 많이 늙어
예전의 아버지의 모습은 접어야하는 마음에 가슴 시리도록 아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세월은 아버지와 대화할 시간을 너무도 짧게 남겨 둔 채 흘러가
버려 아버지에 대한 나만의 기억은 더 아쉽고 그리울따름입니다.

오늘 내가 왜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회상하며 서두를 길게 남기는지
의아해 할 것 같네요.
왜? 아버지에 대해 이렇게 서두가 길었을까!
그건 바로 얼마전 우리가게에 온 손님이 문득 생각나서 그렇습니다.

나이가 60은 넘어 보이는 남자분과 20대 중반쯤 보이는 청년..
조금은 나이차이가 많이 난다고 느껴졌지만 이 두 사람은 부자지간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정말 오랜만에 같이 마주 앉아 술을 마시는
자리를 나이 든 아버지가 마련하였지요.
나이 든 아버지는 오랜만에 아들과 술 한잔을 하게 되는 것이 엄청
기뻤는지 가게문을 들어서면서 부터 연신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그윽했습니다.
아들을 만나기로 했다면서 가게 현관문을 수시로 쳐다보며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오랜만에 도심의 삭막함에서 묻어나는 아버지의
모습이 아닌 푸근한 느낌의 정감을 느꼈답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키가 크고 훨칠한 청년이 가게안으로 들어 왔더군요.
자리에 앉아 있던 아버지는 아들을 보자마자 자리에 일어나 아들이
앉을 자리를 손수 마련해 주었습니다.


" 차 많이 막히제..."
" 아니예.. "
" 오늘 시간이 된다고 해서 얼마나 저녁시간까지 기다렸는지 아나...
아들아.."

아버지는 아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쳐다 보고는 좋아서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어색한 모습으로 아버지를 그냥 지켜 볼 뿐이었지요.
어릴적 저 역시 아버지와 단 둘이 앉아서 대화를 나누며 술 한잔을
나누는 것이 정말 어색했었던 것처럼..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 지도 몰랐고..
아버지와 단 둘이 앉은 그 시간은 제게 너무도 지루하게 느껴졌었답니다.
세월이 많이 바꼈다지만 가게안의 두 사람의 모습을 보니..
어릴적 제 모습을 그대로 보는 것 같았습니다.

" 육고기 많이 먹지 말고.. 회를 자주 먹어야 된다..몸에 좋은거 알제.."
" 네.."

아버지는 연신 회를 아들의 접시에 놓아 주면서 건강을 확인시켰습니다.
술이 한 두잔 건하게 취기가 오를때마다 아버지는 아들의 건강에
대해 걱정스런 말을 하곤 했지요..
제가 보기엔 나이 든 아버지의 건강에 더 신경 써야 함에도..
연신 아들의 건강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제 가슴이 뭉클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어색한 자리인지 아버지의 물음에 간단히 대답만
할 뿐 아무런 말도 먼저 묻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시간이 갈 수록 처음과 달리 취기때문인지
아들에게 당부의 말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 내가 어렵게 살아 왔어도 우리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 "
-
가족을 위해 늘 최선을 다 한다는 아버지의 모습이 역력..

" 나 한테는 잘 못해도 괜찮으니까 엄마한테 잘 해라..."
-
집에 아버지가 좀 소홀해도 아들이 아버지 대신 엄마한테 잘해라는
의미처럼 들림..

" 결혼할 여자가 생기면 학벌을 보지말고 인간성을 먼저 봐라.."
-
결혼해 봐야 알겠지만 결혼 상대자는 인간성이 제일 중요하더란
의미인 듯..

" 사회생활하면서 어려운 일 있으면 내가 도와 줄테니 힘내라.."
-
늘 아들의 버팀목이 되어 주겠다는 아버지의 든든한 말..

" 내가 보기에 우리 아들.. 정말 엘리트야..우리 아들은 못 느끼겠지만.."
-
늘 아들을 자랑스러워하고 믿는다는 의미..

아들과 함께 술을 한 두잔 할때마다 취기가 많이 올랐지만
아버지가 아들에 대한 격려과 사랑의 말은 끝이 없었습니다.
먹고 살기 바빠서 아들과 얼굴 보며 대화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말에
저도 모르게 어릴적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뭉클하기까지 하더군요..

사실 요즘도 옛날과 마찬가지로 각 가정에서는 아버지와 자식이
단 둘이 앉아 대화할 시간이 부족할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아들은 아들대로 바쁘니까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얼마전 가게에서 본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가 더 깊이 가슴에 와 닿고
정감을 느끼게 했는지도 모르겠네요.
가족간에 얼굴 보기가 힘들 정도라는 바쁜 현대인들..
그 속에서 간만에 소중한 가족간의 사랑을 보게 되어 저도 모르게
가슴 따뜻하고 훈훈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가족..
아버지..
아무리 들어도 가슴 뭉클하고 정감이 있는 단어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아버지와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누시나요?
오늘 한번 깊이 생각해 보시는 시간이 되었음합니다.


 

 
가족간의 대화가 늘었다고 해도 옛날과 마찬가지로
그런 가정이 많지 않은게 사실 현실입니다.
옛날엔 가부장적인 가정이 많다보니 아버지와의 대화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요즘엔 가족간에 대화를 하고 싶긴 하지만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공부하느라 바빠서..
부모님들은 천정부지로 오르는 물가와 아이들을 뒷바라지 하느라 바빠서
대화를 하고 싶어도 쉽지 않는 현실이 되었지요.

어제 늦은 시간..
남편과 잘 아는 분이 가게에 왔었습니다.

" 형님 ..요새 어떻게 지내십니까.. 바쁜가 봅니다."
" 바쁜건 아니고..몸이 좀 안 좋아서 병원에 있었지.."
" 병원요.. 어디가 안 좋아서요.. 연락을 하시죠...."
" 아이고..뭔 좋은 일이라고.."


오랜만에 만난 친한 지인이라 그런지..
남편은 온 김에 술 한잔하고 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몸이 안 좋아 술을 끊었다며 차만 한잔 달라고 하더군요.
그리곤 갑자기 걱정스런 얼굴을 하곤 이러는 것입니다.

" 우리 큰딸 이번에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 갔는데..근데 영 걱정이 돼서 .."
" 아이고.. 축하합니다..형님.. 근데 무슨 걱정요? 왜요..돈이 많이 들어가서요.."
" 아니 그게 아니고.. 서울에서 혼자 자취하거든.. 그래서 말이지.."

남편은 형님의 말에 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자세하게 물었습니다.
그렇게 아저씨는 딸에 대한 걱정을 남편에게 토로하더군요.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솔직히 이해가 많이 가는 부분이었습니다.

평소 부모님 말씀 잘 듣는 큰 딸..
늘 바쁜 부모님을 대신하여 동생들을 잘 돌보고 맡은 바 책임감있게
잘 행동하는 이쁜 딸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공부를 잘해 서울있는 유명한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좋아한 것도 잠시..
비싼 등록금보다 더
걱정된건 바로 딸을 혼자 서울에 보내야하는 것이었다고..
서울에 아는 친지들이 없다보니 어쩔 수 없이 학교 근처에 자취방(원룸)을
구해 줬는데 영
불안하다는 아저씨..
뭐..사실 아저씨뿐만 아니라 딸가진 부모라면 다 그런 마음이 들것입니다.
가면 갈수록 험악해지는 범죄가 많아지다 보니 혼자 서울에서 생활하는 딸이
걱정 될 수 있는 일이라고...

" 걱정되시겠네요..그래도 똑똑하니까 잘 생활할겁니다.
너무 걱정하지마세요.형님.."
" 그래.. 뭐..앉아서 걱정한다고 될 일은 아니지..
이렇게 멀리 딸을 보낼 줄 알았다면
평소 대화도 좀 많이하고 잘해 줄 걸.. "
" 형님도 참.. 그래도 형님만한 분 없어요.. 사실 예전에 딸래미 보니까
엄마보다 아빠를 더 잘 따르고 하더만..대화도 많이하는 것 같고.."
" 하긴 그렇긴하지.. 근데..얼마전에 울 큰딸이 집에 왔거든..
그때 갑자기 이러는거야.. 남자들이 대시를 많이 한다고..
한마디로 인기가 많다고 자랑삼아 말하는데..내가 듣기엔 걱정되더라고..
진심이 아니라 나쁜 맘으로 접근하는 사람도 있을텐데하는 노파심이랄까..
뭐 그런거.."

" 아이고..형님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
남편은 안심시키느라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솔직히 아저씨의 맘을 조금은 이해를 하겠더군요.
사실 아버지의 입장에선 걱정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할거라는걸..
그런데 아저씨는 왠지 너무 앞서가는 생각을 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얼마전에 딸에게 이런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만약 혼자서 생활하다 무슨 일이 생기면 꼭 아빠에게 연락하라고 말이죠.
그리고 절대 니 잘못이 아니니까 자책할 필요없다고 말이죠.
(성폭행에 관한 이야기)
사실 이런 이야기는 엄마가 딸에게 늘 조심하라고 당부하는 말인데 아빠가
그런말을 했다는것에 사
심없이 딸을 대하는 정말 친한 아빠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군요.

오랜만에 친한 동생가게에 찾아 온 지인..
한시간 동안 내내 딸래미에 대한 걱정된 이야기였습니다.
그만큼 딸에 대한 애정이 깊다는 것이겠죠.

아저씨가 돌아 간 뒤..
참 많은 생각이 뇌리를 스쳐지나갔습니다.
타지에서 혼자 생활하는 딸에 대한 걱정이 그대로 묻어 있는
아빠의 하소연같은 뭔가를 말입니다.

에공..
맞습니다.
세상이 참 많이 무서워진건 사실입니다.
맘 놓고 창문을 열어 놓고 잘 수 없는 세상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사실 울 집만 봐도 그래요.
가게랑 집하고 걸이가 걸어서 5분도 안되는 거리거든요.
그런데도 먼저 저보고 집에 들어가라고 할땐 울 남편 집까지 데려다 주고
다시 가게로 가지요.
금방 가는데 괜찮다고 해도 꼭 데려다 주는 남편인데..
멀리 타지에 혼자 생활하는 딸을 둔 아버지의 맘은 오죽할까요.

여하튼..
맘 놓고 밤길을 걸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음하는 생각이 드네요.
가면 갈 수록 왜 이렇게 세상이 되었는지..참...나...
 

청도에서 유명한 정터국밥집



어릴적에는 언니들과 함께 방학때마다 친할머니댁에서 한달을 보냈습니다.
식구가 많다보니 교대로 방학만 되면 시골에 보내는 부모님이 야속했지요.
막내로 자라다 보니 늘 애지중지 컸던 탓에 별로 친하지 않는 사람들과
말을 잘 걸지 못할 정도로 낯을 많이 가린 탓에 더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날아 다니는 파리도 무서워하는 정말 겁이 많은 아이였지요.
시골엔 사실 벌레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더 시골에 할머니댁에 가기 싫었답니다.

그런데 언니들은 저와 달리 방학만 기다리곤 했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가 제일 많이 놀고 자연을 만끽하며 지냈었는데..
그런 어릴적 추억이 뇌리 속에 잠재되어 있어서 일까요..
나이가 들어 가면서 점점 옛날의 정겨웠던 풍경들이 그립기도 해
가끔 시간이 날때마다 아버지고향으로
추억여행을 떠가기도 합니다.
솔직히 우리 남편은 저와는 조금 다른 생각으로 가지만 말입니다.
그건 바로.. 맛있는 먹거리를 즐기기위함이지요.
아버지의 고향은 경북 청도군 풍각입니다.
해마다 가지만 청도주변은 많이 변해 가는데 풍각은 아직도 옛스러움이
그대로 남아있답니다.


그래서 갈때마다 정겨움이 더 느껴지는지 모릅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우리가 간 날이 풍각장날이더군요.(풍각장날은 1일,6일입니다.)
시골 장날이 되면 사실 볼거리가 많은데..
이곳 풍각장날은 먹거리가 유명하답니다.
바로.. 쇠머리국밥 일명 장터국밥이 오랜세월동안 옛 맛을 그대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미식가같은 까탈스런 입맛의 소유자 우리 남편도 한번 먹어 보고는
감탄을 해 풍각에 갈때마다 쇠머리국밥은 꼭 먹고 올 정도랍니다.



이것이 바로 쇠머리국밥입니다.
어때요.. 사진으로 보기만 해도 완죤 끝장나죠..ㅎ



전 남편과 달리 선지국을 좋아해 선지국밥을 먹었습니다.

쇠머리국밥과 마찬가지로 선지국밥도 완전 끝내주죠.
음...냐.. 사진으로 보니 또 생각나넹...^^;

 



반찬은 깍두기가 전부이지만..



반찬수가 적다고 아무도 한마다 할 사람은 없답니다.
이유는 바로 쇠머리국밥의 푸짐한 양때문이지요.
고기를 얼마나 많이 주는지 숟가락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인데다가
맛은 또 완죤 환상 그자체랍니다.
우리 남편 말로는 이 국밥을 한번 먹으면 중독이 될 정도로 자꾸
생각난다고 하더라구요.



그럼 선지국밥은 조금 양이 적을까요.
이것도 완죤..
쇠머리국밥 저리가라할 정도로 푸짐한 양에 맛도 일품이랍니다.
한그릇을 다 먹기도 전에 배가 부를 정도니까..
얼마나 양이 푸짐하게 주는지 아시겠죠..



한그릇을 다 먹으면 보신한 느낌이 들 정도라는...



울 남편 사진 찍든 말든 열심히 먹더라구요.ㅎ



풍각장날에는 장터에서 이렇게 국밥을 팔고 있구요.
평소엔 집에서 장사를 하시고 있습니다.
집은 장터와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답니다.
우리도 장날이 아닐때 오면 집으로 고고씽한다는..



장터에 오는 손님들에게 푸짐하게 대접하는 주인아줌마는 옛날에
어머니가 하시던
자리에서 간판도 없이 장사를 해 오셨다고 합니다.


정성스런 어머니의 손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장터국밥이라 우린 청도에
갈때마다
단골손님이 되었답니다.
아참.. 가격은 4,000원입니다.
맛집은 보통 도심에서나 있다고 생각하는데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진정한 맛집은 바로 시골에서 어머니의 손맛에서 비롯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쇠머리국밥집..054) 372 - 7714*


 
학창시절..
부모님께 한달에 한번 용돈을 받는데도 왜 그렇게 빨리 없어지던지..
그럴때마다 용돈을 더 달라고 직접적으로 말할려니 입이 안 떨어져
어쩔 수 없이 아버지 몰래 엄마에게 책을 산다던가 학원 수강을 해야 한다는 등..
거짓말을 한 적이 좀 많습니다.

" 엄마.. 나 오늘 참고서 사야되는데.."
" 회수권 다 떨어졌어.. 돈 줘.."
" 엄마..학원 수강 하나 더 해야할 것 같은데..다음달에 중요한 시험이라서.."

그럼 우리 엄마..

" 저녁에 아버지 오면 말해라.."
" 안된다.. 오늘까지 학원수강해야된다.."
" 니는 필요한게 있으면 저녁에 아버지 오면 이야기하지
아침에 갑자기 이야기하면
돈이 나오나..어.."
" ............ "

안되는 듯한 목소리로 타이르 듯이 제게 말하면 전 장화신은
고양이마냥
슬픈 눈으로 엄마를 쳐다 보지요.
그럴때마다 마음이 여린 울 엄만 공과금 갚으려고 갖고 있던
돈이라며
주시곤 했지요.
그런데 전 압니다.
자식 눈에 눈물 나는거 보면 뭐든 다 해주고 싶은게 부모 맘인것을..

" 자.. 여깄다.. 다음부터는 필요한 것이 있으면 아버지 있을때 말해라 알겠제.."

사실...
전 엄마에 대해 너무도 잘 압니다.
무슨 말이냐구요..
엄마는 막내인 제가 필요한 것을 뭐든 다 해준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딸이 거짓말을 해 용돈을 받아 가는 것도 눈 감아 주신 것이구요..
전 학창시절 제가 갖고자 한 것을 엄마덕분에 다 갖고 살았습니다.

근데요..
사실 제가 엄마에게 필요한 것이 있을때마다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엄마만의 비상금때문이었지요.
어떻게 엄마의 비상금이 있다는걸 알았냐구요..
그건 바로 아버지가 큰돈이 필요했던 시점에 엄마가 비상금을 건네는
모습을
우연찮게 본 것이었지요.

' 와...우리 엄마 대단하다.. '

그당시 이런 생각에 철이 든 딸이어야하는데..
철이 없게 전 그 모습을 본 후 필요한 것이 있으면 엄마에게 돈을 달라고 했답니다.



세월이 흘러...
제가 결혼하고 얼마 안됐을때 엄마가 이런 말을 했지요.

" 여자는 남편 몰래 돈이 좀 있어야 한다.." 고 말입니다.
전 엄마가 왜 그런 말씀을 하신 줄 잘 압니다.

다른 사람같으면 이런 생각도 할겁니다.
' 아무리 부부라도 사이가 안 좋으면 남이니까 비상금은 꼭 필요해..' 라고..
하지만 전 엄마가 비상금 이야기를 했을때 그 이유를 이미 알고 있었지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고 철이 들어서일까요..
저도 어느샌가 엄마 말처럼 남편 몰래 비상금을 축적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만의 비상금을 사용할 적절한 타이밍을 찾았던 것입니다.
일본지진때문에 생긴 방사능 루머로 인해 울 가게(횟집)가 지금 타격을
많이 받고 있거든요.


" 자기야.. 이거...얼마 안되는데..써라.."
" 뭔데? "
" 돈.."
" 응?!..무슨 돈이고..이거.. "
" 내가 지금껏 번 돈이지.."
" 뭐?.."
" 놀라기는 내가 모아둔 나만의 비상금이라고.. 여하튼 건전한 돈이다..
자기돈 삥땅한거 아니니까 놀라지말공.."
" 근데 ...이 돈을 왜 나한테 주는데? "
" 안다..요즘 힘든거.. "

남편은 제가 내민 통장을 보고 어이가 없다는 듯 한참을 쳐다 보았습니다.
그리곤 제가 한 생각과는 달리 통장을 제 손에 건네주더군요.
제 생각은 갑작스럽게 아내에게 비상금을 받아 좀 얼얼하겠지만..

'고맙다.. 돈 많이 벌면 볓배로 많은 돈 통장에 넣어주께..' 라고 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의외의 대답을 하더군요.

" 문디..가쓰나.. 니 사고 싶은거 사고.. 하고 싶은거 해라..
아무리 힘들어도 니 돈은 못 쓴다..그리고 이 돈 쓸만큼 힘들지 않거든..
니 필요한데 써라.. 말이라도 고맙다.."

평소 힘들면 힘들다고 말을 절대 하지 않는 울 남편이지만 역시나
끝까지 제게 태연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근데 참 희안하죠...
저 같으면 ..
" 오~~예.. 왠 돈이고.. 잘 쓰께.." 라며 좋아 했을텐데..
울 남편..
아내의 비상금통장을 보며 오히려 절 위로해주는 말을 하니 말입니다.

결혼 후..
남편에게 늘 받기만 해서 제가 건넨 비상금통장에 감동을 받았을텐데..
오히려
남편의 실패를 모르는 피 끓는 패기가 제 마음을 더 뭉클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 자기야.. 고맙다..늘 긍정적으로 살아줘서..그리고 사랑해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