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 담양에 눈이 엄청 왔네..메타쉐콰이어 숲길 사진 멋지게 찍어 갈께..' 라고
카페에 남긴 지인의 글귀를 보니 부러운 마음이 드네요.

눈..
왠지 이 단어만 들어도 설레이고 추억이 묻어 나는 듯 합니다.
부산에서는 눈을 본다는게 정말 어렵지요.
다른지역보다 따뜻한 곳이라 그럴 겁니다.

그래서 일까요..
조금만 눈발이 날리는 것만 봐도 창문을 열고 환호성을 지르지요.

" 와~! 이기 뭐꼬.. 눈이네..."

이렇게 눈이 조금이라도 날리는 날이면 전화기에는 불이 나지요.

" 자기야..지금 창밖에 봐봐..눈 온다.."

" 혜진아 뭐하노..밖에 눈오는거 아나?.."

" 언니야.. 밖에 눈온다.."

내 핸드폰에 있는 전화번호를 보고 무작위로 눌려 봅니다.
물론 내 흥분된 목소리만큼 눈온다는 멘트를 들으면 듣는 사람도..

" 진짜가..정말.. 맞네..와!!!!!!!"

저 만큼 환호성을 지르지요.
그 만큼 부산엔 눈을 보기 힘들답니다.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이해를 못하겠지만..ㅎ

오늘 텔레비젼과 인터넷을 보니 눈 이야기가 많이 나오니..
나도 모르게 첫눈이 내릴때의 아련한 추억으로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20년전의 추억회상...

지금으로부터 20년전..
첫사랑이라고는 좀 그렇고 풋사랑이라고 해야하나?!..(ㅎㅎ)

오~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엔 내가 첫사랑이라기보단 날 좋아하는
친구가 첫사랑이라고 해야 맞을지 모릅니다.
그당시 난 날 좋아하는 남학생보다는 내보다 나이가 3~4살 많은
오빠들에게 더 관심이 있었지요.

유독 내 눈에 들어 오는 사람이 있어서 좋아했던 기억이..
물론 내가 좋아했던 오빠는 여자친구가 있었구요.
같은 학원에서 자주 마주치면서 우연히 그 오빠랑 자판기커피를 마시다가
나도 모르게 필을 받았지요. ㅋ..
오빠가 여자친구가 있기때문에 난 그저 오빠를 바라보며 가슴 설레는
마음만 가질 뿐이었답니다. (짝사랑)

그런데 참 우스운건..
나와 동갑인 친구는 나와 반대로 나는 전혀 관심이 없는데
그 친구가 날 엄청 좋아했다는 사실..

학원에서 알게 되었지만 난 그저 같은 친구로만 생각했는데..
그 친구는 날 학원에서 보는 순간 첫눈에 반해 지독하게 따라 다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당시 내 성격은 밝은데다가 터프하기까지 했고..
그래서 일까..
박력있는 사람이 더 멋지고 좋아 보였고,
바람둥이처럼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오빠들이 더 좋아 보였던 때라..
그 친구를 보면 한마디로 여자 같아서 나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이는
행동을 하면 짜증이 날 정도였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성격 못됐지요..ㅎ
그렇게 서로 엇갈린 사랑을 가지면서 그 친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군대를 가게 되었습니다.

사실 군대 간 것도 한참 지나서 알았을 정도로 별 관심이 없었지요.
그리고 친구이상으론 생각을 하지 않았던 때라 군대를 가든,
대학엘 가든 그당시에는 관심 밖이었다고해야 옳을겁니다.

그러던 어느날..
집으로 전화가 한통 왔습니다.

" 내다.. 잘 지내나?.."

" 누구?.,.세요..."

목소리는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인데 싶어 잠시 생각하다..

아!!!!!!!!.....

" 야.. 오랜만이다..잘 지내나?..."

" 응.. 니는?.."

한동안 연락이 없더니 친구는 집안 사정으로 대학엘 가지 못하고 바로 군대를 갔더라구요.

" 야.. 안보여서 어디 멀리 이사갔나 했더니..군대갔더나..반갑다야.."

자주 학원에서 만날때는 그리도 꼴 보기 싫더만..
막상 눈에서 멀어지니 은근히 생각이 났었거든요..
참 여자 마음이란게 간사하더군요.
친구는 군대휴가 나왔다면서 얼굴 볼 수 있냐는 말을 했답니다.
난 흔쾌히 승낙하고 얼굴을 보러 나갔답니다.
그런데 얼굴을 보는 순간  정말 많이 변했더라구요.

" 야.. 니 인자 머슴아 다 됐네..까메가꼬.."

친구는 군대생활을 하며 햇빛을 많이 봤는지 예전에
뽀얀 피부는 볼 수 없고 새까만 모습이었습니다.

" 야..니 있잖아..이런말해도 될란가는 모르겠는데..ㅎ 니 인자 남자같다.."

난 그 말을 하고 한참을 웃었습니다.
물론 그 친구는 내가 웃는 것을 보고 따라서 미소를 지었지만..
친구는 내일 부대로 복귀한다는 말을 하고 편지 좀 하라고 주소를 적어 줬습니다.
우린 그날 간단히 저녁을 먹고 헤어졌지요.
그런데 참 우스운건..
그날 데이트(!)를 하고 나서부터는 친구가 남자로 보였다는 사실...ㅋㅋ
역시 남자는 군대를 가야한다는 말을 그때 비로소 느꼈답니다.

" 쨔식.. 군대 가더만 예전에 가시나처럼 말도 못하고 그러더니 좀 많이 바꼈네.."

집에 돌아와서 자꾸 새까만 얼굴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군대있는 동안 몇 통의 편지도 주고 받으며 친구로써 우정을 쌓아갔지요.
물론 전 친구로써..
그러나 친구는 절 친구이상으로 생각하고 있었지요.
그것 때문인지 우린 오래 사귀질 못했답니다.
부모님은 귀하게 키운 딸 좋은 곳에 시집 보내기위해 신경 쓰시는데..
그 친구는 그 당시 정말 가진게 아무것도 없는 아이였거든요.
그래서 친구랑 사귄다는건 꿈도 못 꿀 일이었지요.
만약 그 친구와 사귄다고 하면 안 될 제일 큰 이유가 부모님이 안계시다는 것..
우리 부모님은 그걸 제일 많이 따지셨거든요.( 옛날 분들 다 그렇잖아요..)
그것 때문이라도 그 친구와는 친구이상이 될 순 없었죠.
그리고 돈도 없었고..
친구랑 데이트를 하면 내가 거의 다 썼으니까..
사실 그것은 내가 부담 스러웠지요.
그래도 군대 있으면서 안 좋은 소릴하면 소심한 성격에 탈영이라도 할까 싶어
늘 조심스럽게 말했었는데..
친구는 그것이 자신을 너무 사랑하기때문에 말도 이쁘게 해주고 용기를
준다고 착각을 하였답니다.

그래서 서로 다른 생각때문에 휴가만 나오면 별것도 아닌데 의견충돌로
사이가 점점 멀어져 갔지요.

결국엔 내 스스로도 힘이 들어 친구에게 거짓말을 하고 헤어지기로 결심했답니다.
서로 생각이 틀리고 가치관이 틀린데 너무 길게 만난다는 것은 서로에게
피곤함을 줄 뿐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군대 마지막 휴가때 친구에게 그만 만나자는 말을 하기로 결심하였답니다.
물론 언니들의 조언을 얻어 아는 오빠를 데려가서 결혼할 사람이라고 말하고 헤어지기로..
지금 생각하면 참 잔인한 행동이었지요.
드디어 마지막 휴가 나오는날..
난 아는 오빠를 데리고 나갔습니다.
그쯤 되니 친구도 더이상 날 친구이상으로 생각하지 않겠다고 하더라구요.
아는 오빠가 담배를 사러간 사이..
나를 무지 좋아했던 그 친구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지요..

"  니 옆에 있는 사람,, 잘 해 줄 것 같네..돈도 있어 보이고.. 잘 살아라.."

그 말을 하고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그날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이 바람이 날리더니 이내 함박눈이 되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은 친구는 버스가 출발할때까지 나를 쳐다 보지 않았습니다.
버스가 출발하려는 순간..
친구는 얼굴을 내 쪽으로 돌려 보더군요.
서로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그 당시 버스가 출발하고 나서 그 자리에서 얼마나

소리없이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다 지나간 일이지만..
가끔은 그 친구 잘 살고 있을까?..
지금은 뭐할까?..하고 생각은 하지요.
특히 첫 눈이 온다거나, 몹시 추운 겨울이면 과거의 옛일이 어렴풋이 떠오르곤합니다.
날이 엄청 추워져서 눈이 소복히 쌓였다는
전라도 담양의 풍경을 생각하니..

갑자기 오래된 일기장을  펼쳐 보듯이
과거의 한켠이
아련히 떠 오르네요..
뭐..
추억은 추억일 뿐이지만 가끔 친구가 생각나기고 합니다.

누구나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 있듯이 말입니다.
ㅎㅎ....

 

얼마전에 곱창집에서 뒷고기를 먹고 나서 가끔 생각나 오늘 간만에 고기집을 찾았습니다.

아는 친구가 곱창이 정말 싸고 맛있다고 하길래 그 집을 찾아 오게되었습니다.

곱창집이야 다 그렇겠지만 낡은 간판에 어수선한 분위기 그리고 사람들이 담배를 많이

펴서 늘 안개 속 같은 분위기인데 오늘 온 가게는 들어가서 보니 다른 곱창집과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주위를 둘러 보니 나름 재미난 것들이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어릴적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에서 본 국어책에 적힌 내용이 벽에 그림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 동동~ 동대문을 열어라~.' 를 부르며 친구들과 놀았던 어린시절의 추억이 깃든

그림이 눈에 꼽혔습니다.

정말 오랫만에 보는 어린시절의 내용이었습니다.

곱창집이라 하면 보통이 서민들이 많이 찾는 술집이라 그런지, 분위기도 너무 꾸미지 않고

소박해 보였습니다.



빨간색 드럼통을 세워 식탁을 만들어서 사용하는 모습으로 보더라도

서민의 애환이 남아 있는 듯 새롭게 보였습니다.

분위기는 70년대의 시골의 한 술집같은 느낌..

그 분위기에 맞게 고기도 다양하게 팔고 있었습니다.

곱창, 막창, 삼겹살, 항정살, 뒷고기 등..

그리고 가격도 정말 저렴했습니다.

보통 2500원 ( 1인분 기준 ) ~ 5000원으로 부담없이 먹고 갈 수 있는 가게였습니다.

물론 고기도 생고기..

우린 뒷고기를 3인분 시켜서 먹었습니다.

양도 제법 나오고..가격도 저렴(7500원) 하구요.




 잠시 뒷고기의 유래에 대해서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간단히 설명해 드릴께요..^^

 첫번째로는 돼지를잡으면 쓸 부위는 다손질하고 마지막남은 즉 필요없는 고기들을 뒷고기라하였고

 두번째는 예전에 고기값이 비싸고 서민들은 잘 먹지 못했을때 도살장에서 일하시던 분들이 고기손질하고

 좋은부위들은 팔고 남은 짜투리를 주인몰래 뒤로 빼돌려서  먹던게 유래됐다고 합니다.

 지금은 현대인들 입에맞도록 요즘은 부위가 바꿔졌습니다

 뒷고기집마다 파는 부위가 다르지만 현재로는 젤 알아주는부위가( 혀바닥.돼지코좌우밑볼살.

 혀바닥아래쪽 목살)등을 요즘은최고로 알아주는 뒷고기입니다
 
생선이나 오징어도 진짜 미식가들은 내장만 먹는것 처럼...고등어 껍질에 맛들이면

 집날라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소의 곱창.막창등 예전에는 버리는 부분이였죠.  

 돼지의 갈매기살도 횡경막을 가로막는 부위로 질긴 힘줄이 있어 먹지 못하는 부분이였는데
 
힘줄을 제거하고 잘게 썰어서 먹게되고 돼지 껍데기도 역시 버리는 부분 으로 모두 뒷고기에 해당됩니다.

 부위는 육질이 쫀득하면서 연하며 맛이 기가찹니다 뒷고기의 맛을 알아야 정말 미식가라고 할 정도라네요..

 하하~.

 머리부분이 제일 맛있어요 특히 혓바닥이 제일맛있죠.

 보기에는 보통 고기랑 똑같은데 먹어보면 틀리죠.

 뒷고기 잘하는집에서 고기몇번 먹으면 삼겹살 생각이 안날 정도랍니다.



얼마전에 뒷고기 맛을 알고 부터는 생각이 나더라구요..

그래서 오늘 간만에 찾았는데..역시 굿~!.

뒷고기는 냉동이 아니라 생고기로 바로 장만해서 준답니다.( 손님이 주문하면..)




뒷고기는 가스불 보다 연탄불에 구워야 고유의 맛을 더 느낄 수 있지요..




반찬은 그리 많지 않지만 몇가지 안되더라도 정성이 깃들어 보이더라구요.

얼음이 동동.. 미역냉국




계란찜..

그리고 파절임, 고추, 나물, 김치 등..




정말 맛깔스럽게 보이죠..

고기 한 점에 소주 한잔~..캬~!..


고기를 다 먹고 나면 냄비우동도..

푸짐한 냄비우동이 2,000원..( 정말 저렴하죠~.)




맛은 기차역에서 파는 가락국수 맛이예요..

기가 막히게 맛있는 가락국수 맛 아시죠..

갑자기 가락국수 하니까 옛날 생각나네요.

할머니댁이 청도였거든요.

어린시절 청도에 갈려고 새벽기차를 타고 갈때 역전에서 가락국수

먹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기차 올 시간은 다 되었는데 허겁지겁 시간에 쫓겨 먹던 가락국수..ㅎ

그 맛을 오늘 느낄 수 있었습니다.




2000원 치고는 정말 푸짐한 냄비우동...




김치와 곁들이면 굿~!




곱창집의 내부 전경..

정말 70년대를 연상시키는 배경에 교과서에 나온 그림들이 벽 곳곳에 있어

고기를 먹는 내내 어린시절로 돌아간 느낌이 많이 들었답니다.

멋 모르고 지냈던 어린시절이 그리울때가 많았는데..

오늘 이 가게에 오니 더 그런 생각이 많이 드네요..ㅎ




이 집에서 제일 재미났던 건 바로 급훈..

' 딱 한빙 더 까자! '

하하하~.

주인장의 아이디어가 넘치는 위트있는 인테리어네요.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가 20년이나 넘었네요..

지나간 과거는 때론 잊고 지내기도 하지만..

오늘처럼 우연히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분위기의 가게에서는

멋 모르던 어린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지네요..

술한잔하고 취기가 조금 올랐지만 다른날 보다 무척 기분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잠시나마 아름답고 소중한 과거의 추억속으로 여행을 다녀온 느낌이

들어 정말 좋았거든요..^^

역시 추억은 잠시 잊혀지다가도 어느 순간 계기가 되면 영화 필름처럼

뇌리 속에 생생하게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_Jukebox|ik120000000004.mp3|Kenny G - 10 The Way You Move (Ft. Earth Wind And Fire).mp3|autoplay=1 visible=1|_##]피오나의 다음 블로그 : 좋은시간 되세요아름다운 이야기모음
 

 시골할머니댁에 가면 마음이 정말 편해지는 뭔가를 늘 느낀다.

 도심에서 태어나서 줄 곧 살다보니 가끔은 시골에 가서 조용히 쉬고 싶을때가 많다.

 좋은 공기와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시골의 풍경은 어느 멋진  여행지보다 더 좋은 곳이다.

 지금은 시골에 가면 할머니댁이 예전의 허름한 모습은 아니지만 도시민들에게는

 나름 머물고 가기에 편하도록 잘 꾸며져 있어 쉬고 오기에는 딱이다.

 그래도 시골의 정취는 흙으로 된 마당에 낡은 지붕이 있고, 오래된 골동품같은 물건들이

 쌓였던 그런 시골이 더 좋은 것 같다.

 지금은 기계화로 다 변해서 깊은 산골이나 이런 기계를 사용할 지는 몰라도

 이제는 이 모습도 아련한 추억으로 기억되는 듯 조금은 아쉽다.

 하지만 농민들이 기계화로 조금은 편해 진 것에 대해 좋게 생각하고 싶다.

 다양한 농기구들이 재미나게도 생겼다.

 모양이 제각기 다 다른만큼 사용용도도 다 틀리겠지!..

 할머니댁에 있는 농기구를 봐도 사실 잘 모르지만 유용하게 울 농민들하고

 함께한 것이라 더 정감이간다.

 ㅎ..옛날에 신던 짚신..

 요즘 사람들한테 신으라도 주면 발바닥이 아파서 못 신을 것 같다.

 구멍이 송송~~.

  쇠여물통.

 구유또는 구영 이라 불렀던 것이다.

 소나무가 구하기는 쉽지만 박달낭그로 맹글때도 있었다.

 보통 열두자 구영이면 큰쇠 3마리 송아지 2마리는 먹을수 있는 그릇이다.


 가마

 안에 사람이 들어앉고, 밑에 붙은 가마채를 앞뒤에서 2사람 또는 4사람이 손으로 들거나

 멜빵에 걸어 메고 운반한다.

 교통 수단이 발달하지 못한 옛날에 많이 쓰였으며, 왕이 타던 연, 공주가 타던 덩, 벼슬아치가 타던 초헌,

 덮개가 없는 남여여, 신부를 태우던 사인교 등이 있었다.

 지금은 민속박물관이나 가면 볼 수 있는 물건이다.

 멍석.

 덕석·턱성·터서기라고도 한다. 짚으로 새끼 날을 짜서 장방형으로 두껍게 결었고 네 귀에

고리 모양의 손잡이를 달기도 한다.

 멍석은 주로 곡식을 널어 말리는 데에 쓰이나, 시골 잔치 집에서 마당에 깔고 손님을 모시기도 하는 자리이다.

 할머니댁에 오랜만에 가면 마당에 멍석을 깔고 놀던 기억이 난다.

 특히 명절이 되면 더 없이 유용하게 쓰이는 물건이기도 했지!

 식구들 모두 마당에 멍석을 깔고 윷놀이도 하고 , 밤 늦은 시간에는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별이 초롱 초롱한 하늘을

 보곤 했던 낭만적인 추억이 많이 내포된 물건이다.

 지금은 이 모든 물건들이 잘 사용하진 않지만 그래도 한때는 추억이 서려있는 것이라 더 정감이 있게 느껴진다.

 현대인들에게는 조금 생소한 물건들이 있겠지만 시골에 가면 어디서든 볼 수 있는 물건이기 때문에

 나름 친근감있고 정감있게 더 느낄 것이다.

Daum 블로거뉴스
블로거뉴스에서 이 포스트를 추천해주세요.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