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울컥했던 남편의 한마디



생선을 즐겨 먹는 우리부부..

오늘은 다른 날과 달리 온갖 모양을 낸 우럭찜을 했다.
갖가지 채소와 계란으로 곱게 고명으로 올려 
우럭찜을 만들어 놓으니 맛이 더 있어 보인다.




 젓가락을 들고 여느때처럼 자연스럽게 살이 많은 부분을 들어 오리는 나...

" 와...살이 연하니 억수로 맛있네.. "
" 마이 무라.. 조심해서.."
" 자기도..."


늘 생선가시를 조심해서 먹으라며 내게 생선살이 많은 부분을 먹으라는 남편..
하지만 며칠전 남편이 한 한마디가 아니었다면 오늘도 아무렇지 않게
생선살 부분만 쏙쏙 골라 먹었을 것이다.



남편의 한마디에 울컥하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그 말은 바로..

" 엄마들이 생선대가리가 맛있다고 자식 챙겨주는 것과 같다." 란 말...
남편은 생선가시 트라우마가 있는 아내를 위해 늘 생선살을 먼저 먹으라며 권했고
남편은 가시가 많은 살이 별로 없는 부분을 일일이 제거하며 먹었던 것이다.
그랬다. 남편도 마찬가지로 가시가 많은 부분보다 생선살을 더 좋아하는
나랑 마찬가지의 식성이었던 것이다.

그 일이 있은 후...
생선뿐만 아니라 고기나 해산물등을 먹을때 자연스럽게 난 이렇게 말한다.
" 항상 내 먹는거 같이 먹기다. 안그럼 진짜 안 좋아하는걸로 생각할꺼다. " 라고..



 

30년 전 대중목욕탕의 진풍경

김이 모락모락 나도록 욕실에 뜨거운 물을 데우고 샤워를 하니 몸이 눈 녹듯 사르르 녹는 기분이다.가끔 몸이 찌푸둥할때면 이렇게 뜨거울 정도의 물에 몸을 담그곤 한다. 낙엽이 짙어지는 가을이면 어김없이 찾아 오는 피부 트러블..거기다 찬 날씨로 인한 몸살기운은 지금의 내 나이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 뭐하노..응가히 씻고 나온나..피부도 안 좋으면서.."

남편의 걱정스런 말투이다.
환절기땐 더욱더 피부때문에 괴로워하는 날 잘 알기때문이다.
거기다 뜨거운 물에 오래 씻고 나오면 온 몸에 붉은 선들이 선명하게
나타나는 것에 안스러워 한다.
그런 피부이기에 우린 온천은 커녕 뜨거운 찜질방에 가질 않는다.
병원을 여러 군데 다녀도 예전보다 많이 나아지긴했지만 여전히
진행형인 알러지체질이다.

" 으이구.. 내 그럴 줄 알았다.. 이것 봐라.. 으...."

목욕을 마치고 나 온 내 모습을 보고는 여전히 잔소리를 하며
내 몸에 알러지로숀을 발라 주는 남편..
사실 내가 바를 수 있지만 제일 표시가 선명하게 나는 등은 혼자
로숀을 바를 수 없는지라 늘 잔소리를 듣지만 남편 손을 빌린다.
간혹 그럴때마다 남편이 없다면 어떡했을까하는 생각을 하곤한다.

" 휴..나도 옛날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우째 이런 체질로 변했는지.."
" 어릴때는 안 그랬나? "
" 그라믄.. 목욕탕에서 이태리타월로 박박 문질러도 하나도 이상없었다."

맞다..
난 어릴적엔 살이 벌겋게 될때까지 때를 밀고 로숀을 바르지 않아도 피부는 멀쩡했었다.
남편과 이야길 나누다 갑자기 어린시절 목욕탕 추억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30년 전 ..
그 시대엔 목욕탕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거기다 집에도 목욕시설이 그다지 좋게 설계되지 않았었다.
수도에 호수를 꼽아 둔 채 큰 타원형 빨간 대야에 물을 받아 바가지로
물을 퍼서 사용했었다.
물론 따뜻한 물은 연탄불 옆에 설치된 물통안의 물이 고작이었다.
한여름이면 찬물에 목욕도 가능했지만 날씨가 선선한 봄,가을..
그리고 추운 겨울엔 집에서 목욕하는건 쉽지 않아 집근처 대중목욕탕엘
일주일에 한번 목욕을 하러 갔었다.
사실 일주일에 한번 가는 것도 그 당시엔 정말 많이 가는 축에 속했다.

" 빨리 준비해라.."
" 이번주는 안가도 되는데.."
" 뭐라하노.. 빨리 챙겨라.."

일요일 새벽 5시만 되면 엄마는 목욕탕에 가자며 딸들을 깨웠다.
한겨울에 새벽 5시면 완전 일어나기 괴로운 시간이다.
방바닥이 누렇게 될 만큼 뜨끈뜨끈해도 왜 그리 우풍이 심했던지..
무거운 솜이불을 눈만 내 놓고 잤었던 그때 그시절이었다.
그 추운 겨울 왜 그렇게 엄마는 새벽에 목욕탕에 가자고 깨웠을까..
그건 바로 사람들이 많지 않는 시간에 깨끗한 물로 목욕을 하고 싶어서이다.
사실 새벽에 가지 않으면 완전 더러운 물에 목욕을 하고 올때도 많았었다.
우리처럼 일주일에 한번 목욕을 하는게 대부분이라 일요일엔 조금 늦게라도 가면
앉을 자리도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빽빽했었다.
물론 새벽에 깨끗했던 타일은 하얗게 될 만큼 지저분해져 늦게라도 가면
앉을 자리를 비누로 깨끗이 씻어 앉을 정도였다.
거기다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사람들이 민 때로 인해 하수구구멍이
막히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었다.

" 아줌마.. 여기 막혔어요.."
" 아줌마.. 여기도.."

군데군데 목욕탕에서 들리는 소리..
완전 웃지 못할 일들이 목욕탕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저곳에서 아이를 다그치며 혼내는 모습도 진풍경이다.
" 빨리 안 오나? " - 씻자고 하면 도망가는 아이들..
" 이 봐라..지금까지 때 안밀고 뭐했노.." - 물론 엄마가 때를 밀 동안
나름대로 때를 밀고 있었지만 엄마 눈에는 때는 밀지 않고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물론 때가 많이 나오는 것에 재미를 붙인 것인지 계속 그자리를 집중적으로 밀면
아이는 아프다고 울고 엄마는 가만히 있으라고 때리고 완전 난리도 아니다.
사실 난 그나마 다른 아이들처럼 많이 혼나진 않았다.
식구가 많다보니 일일이 때를 다 밀어 주지 못했던 엄마는 스스로 알아서
목욕하라고 내 버려 둔 케이스였다.
여하튼 이곳저곳에서 아이들 우는 소리와 혼내는 소리에 목욕탕안은 아수라장이었다.
거기다 같은 반 남자아이와 목욕탕(여탕)에서 마주치는 일은 자연스런 모습들이었다.
그 당시엔 대부분 남자아이를 아버지가 아닌 엄마가 데리고 갔었다.
아무래도 가부장적인 시대라 그랬는지도 모른다.

요즘 아이들은 이런 목욕탕 모습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집집마다 목욕시설이 잘 완비되어 있는데다가 한겨울에도 따뜻한 물이
나오고 거기다 집안에 우풍까지 없어 30년 전 대중목욕탕보다 더 좋은
시설에서 목욕을 할 수 있기때문이다.
물론 대중목욕탕이나 찜질방에 가도 까칠한 타월로 때를 박박 미는 사람도 없다.
매일 샤워를 하다 보니 때가 거의 없어서 일것이다.
그러기에 목욕탕에 가도 샤워를 하고 오는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과는 달리 30년 전 대중목욕탕에서의 추억이 있는 분들은
목욕탕에 가면 자연스럽게 이태리타월로 때를 민다.
샤워를 매일 해도 왠지 목욕탕에 가면 때를 꼭 밀어야 한다는 생각때문일것이다.

30년 전 목욕탕의 진풍경이었던 모습들은 이제 볼 수 없지만..
그 추억들을 생각하며 이제는 웃을 수 있는 것에 삶의 한 페이지를 보는 것 같아 좋다.
시간은 점점 흘러 가지만 어릴적 추억은 시간이 가면 갈 수록 뇌리속에 짙게 새겨지는 것 같다. 아마도 되돌아 갈 수 없는 그 시절이 그리워서 더 그런 것 같다.

 

" 이사 준비는 잘되가나 언니야? "
" 응.. 거의 다 했다.. "
" 형부가 없어서 많이 힘들겠다.. 짐 정리하는 것도 그렇고.."
" 아니다.. 새로 이사하는 곳에 갈때 짐 거의 다 정리하고
 가는거라 가져 갈 것도 별로 없다."
" 그래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알게되어 친언니 못지 않게 마음을 터 놓고 지내는 언니가 있습니다.
얼마전 이사한다는 소식에 형부없이 혼자서 이사를 준비하는 언니가 못내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화를 했더니 생각외로 이사 준비를 잘하고 있었습니다.
형부없이 힘들것도 같은데 혼자서 이사를 준비하는 모습에 대단하다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그런데 늘 그렇듯이..
전 솔직히 언니보다는 조카나 다름없이 애들이 더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 놈의 돈이 뭐길래..
처,자식을 위해서 머나먼 타국에서 기러기아빠가 되다 보니..
정작 아빠의 정을 듬뿍 받고 자라야 할 나이에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에 늘 신경이 쓰였거든요.
그런데다가 아빠가 없는 상태에서 이사를 해야하니 더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 해정아..아빠 많이 보고 싶제? "
" 아니요..."
" 진짜?!.. "
" 네.. 처음에는 외국에 나갈때 많이 보고 싶었는데..
요즘엔 아무렇지도 않아요.
우릴 위해 돈 벌기 위해 나가셨는데요..뭘.."

" 응..."

고등학교 1학년인 해정이는 나름대로 머리가 커서 그런지 아빠의 빈자리를
크게 생각하지 않은 듯 했습니다.
그래서 둘째인 정민이(초등학교6학년)에게 물어 봤지요.

" 정민아..아빠 많이 보고 싶제?"
" 아니요.. "
" 정말? "
" 네.."

너무 당당하게 말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왠지 마음이 더 짠했습니다.

" 언니야.. 애들이 아빠 별로 안 보고 싶은갑다.."
" 처음 외국 나간다고 했을때는 울고 난리더만..
몇 년 되다 보니 아빠의 존재성이 예전같지 않네..얼굴을 맨날 볼때는
'아빠,아빠' 하면서 그렇게 많이 따르더니.. 눈에서 멀어지니까 정도
줄어 들어는 것 같아 솔직히 걱정이다.."
" 형부는 아이들 많이 보고 싶어 하겠다 그자.."
" 늘 ..그렇지... "

자식들을 위해서 머나먼 타국에 가서 일을 한 지 몇 년..
그렇게 아빠와 떨어져 지내다 보니 어느샌가 아빠의 존재를 조금씩
잊고 지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러기아빠로 먼 타국에서 열심히 일하는 형부는 아이들의 이런
냉담한 모습을 봤다면 어떤 마음일까요..
그저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큰 사고 없이 아빠없는 가운데에서도 잘 지내고 있는
아이들이 대견스럽기도 하더군요.
하지만 홀로 이사를 준비하는 언니의 모습에 마음이 짠하기도 했습니다.

처, 자식과 더 나은 삶을 위해 외국에서 일하기를 자청한 형부..
언니집을 볼때마다 왠지 지금 우리시대 기러기아빠의 현실을 그대로
보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커 갈수록 아빠에 대한 생각이 돈을 버는 존재로만 생각되지
않아야 할텐데하는 마음이 많이 들면서 말이죠.

기러기 아빠와 엄마들은 자식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로 생이별을
감수하지만 정작 최고의 관심사는 자녀가 성공하기만을 바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각자 떨어져 지내는 기간이 길어지다 보면 아빠와 자식들간의 대화가
소홀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보니 아빠에 대한 정도 조금씩 사라지는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아이들을 보며 많이 느끼게 되네요.
그래도 학교 잘 다니고 언니 말 잘 듣고 착하게 잘 자라주는 아이들이
대견하기도 하네요.

 
 

오후에 사진을 정리하다 작년에 찍은 사진이 유난히 눈에 띄었습니다.
엄마의 49재를 절에서 지내면서 가끔 들렀던 범어사..
오늘따라 이 사진을 보니 엄마의 생각에 왠지 마음이 울적해집니다.
얼마전에 엄마 제사가 있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네요.

내 어릴적 기억엔 유독 사랑을 많이 받았었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지요.
그런 나 였기에 지금은 옆에 안계신 엄마의 흔적이 더욱 그리운지도...
그래서 간혹..
엄마 생각이 날때엔 범어사에 들립니다.
살아 생전에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 뵙지 못했던게
제일 죄스럽게
느껴져서 그런지 범어사에 가면 마음이 편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행복할때 행복을 잘 느끼지 못해
그 행복이 사라진 후에야 행복하다는 걸 느낀다던데..
지금 돌이켜 보면 제가 그랬답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전 너무 힘든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았답니다.
너무 잘 해드리지 못한게 한스러웠고..
내 자신이 너무 미웟지요..
그리고...
늘 사랑을 듬뿍 안겨 준 엄마를 이제는 볼 수 없다는 생각에 괴로워했지요.
그렇게 몇 달을 너무도 조용히 시간을 보냈습니다.
세월이 유수처럼 흘러 벌써 몇 년이란 시간이 흘렀네요..

사진을 보며 잠시나마 옛날 즐거웠던 추억들을 회상해 봤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사람들은 과거를 점점 잊어가고 산다는데..
생각해 보니 그 말도 맞는 것 같습니다.

엄마가 돌아 가신후 49재를 지내러 다닐때는 엄마의 빈자리를
그렇게 많이 느끼며 허전하게 살았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내 마음속에서 점차 희미해져가는 생각이 들어
정말 나 스스로만 생각하는 사람이구나! 하고 반성하게 됩니다.
그런데..
간혹 잊고 지내는 부분들을 사진으로 회상을 하게 되니 나름대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세월이 흐른 후 과거가 되어 버린 사진을 보면 과거가
되살아나서
추억으로 내 가슴속에 생생하게 남으니까요.



어릴적 아버지께서 찍어 주던 추억의 사진처럼..
이제는 저도 하루 하루를 사진으로 남기며 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진이라는 것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과거를 잊지 않게 해주니까요.
그래서 늘 전 카메라를 메고 거리를 나간답니다.
훗날 소중한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기기 위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