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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블로그를 통해 소소한 일상을 적어 내려 가면서 내 존재감을 세상에 알리게 된 것이 5년...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과의 소통을 만들고자 다음 속 또 다른 공간인 티스토리를 만들게 된것은 4년...지금 생각하면 참 오랫동안 블로그를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블로그를 통해 삶이 더 윤택해지고 밝아져서 그런지 5년이란 시간이 그리 길지만도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긴 시간을 짧게 만들어 준 건 아마도 내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역활도 컸다고 여겨집니다. 이젠 학창시절 친한 친구보다 더 절친이 되어 버린 온라인을 통해 만난 블로거들 덕분이지요.

사실 먹고 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내가 먼저 연락을 하며 안부를 전하는 일이 솔직히 쉽지 않은게 현실입니다. 이 놈의 경쟁사회에서 어떻게든 살아 남으려는 경쟁심에 먼저 여유롭게 연락을 하는건 왠만한 노력으론 하기 힘든 일이 되어 버린지 오래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빡빡한 삶 속에서 여유로운 마음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들이 내가 아는 블로거친구들입니다. 뭐...그렇다고 블친들이 하는 것이 없어 먼저 연락을 하고 소통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보다 훨씬 바쁜 생활을 하지만 그래도 아량 넓게 먼저 연락을 취해 옵니다. 

아참.. 온라인을 통해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물어 보며 지금껏 삶의 소통을 이어가는 제 블친님들을  먼저 소개할께요...닉네임만 들어도 '아하!' 하며 다 아실 분들입니다. 우리 블친님들 중에 제일 고참이자 연장자인 여행블로거로 활동중인 바람흔적님 그리고 시사에 능통한 세미예님, 사진기술이 뛰어 난 레몬박기자님,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뭘더님(예전 닉네임은 법률로그임) 이십니다. 그외 많은 분들이 함께 하지만 현재 꾸준히 모임에 참석하는 분들이 저의 절친이 된 블로거입니다.

얼마전에는 바람흔적님께서 먼저 카톡을 통해 연락을 취하셨습니다. 시간이 되면 점심이나 한끼 하자면서 말이죠. 카톡을 통해 요일, 시간 , 날짜를 일일이 조율해 우린 또 한번의 모임을 맞이했습니다. 조금 아쉽지만 이번 모임엔 뭘더님이 갑자기 일이 생겨 참석 못해 모두 아쉬워 했습니다.

 

우리가 모인 장소는 대신동의 뷔폐청... 이 뷔폐는 바람흔적님이 주선하셨답니다. 덕분에 우린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서로의 안부와 근황 그리고 미래에 대한 비젼등을 이야기하며 즐거운 점심시간을 보냈습니다. 식사를 하고 집에 돌아 오는 길에 참 많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온라인을 통해 만나 4년 넘게 소소한 모임을 시작으로 시작해 굵직한 모임을 이어오는 비결이 나름 있더라는거.......

 

4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지만 이 상태로 계속 유지하면서 더 길게 만남을 유지하는데는 나름 우리만의 비결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블로그를 통해 만나 서로의 이야깃거리가 통한다는 것...요즘 온라인 시장의 근황을 비롯해 사는 이야기등 쉽게 접할 수 있는 우리네 인생이야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몇년 동안의 만남 속에서 블친들의 가족과도 연계되어 서로 소통이 있었다는거... 때론 모밈을 블친들 집에서 한다든지.. 모임에 부부가 참석하면서 더 자유로운 블로킹 세계로 들어 설 수 있다는 점이지요. 저또한 우리 남편이 블로거들의 모임을 적극 참여해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고 밀어 주는 편입니다. 이번 모임에도 우리 남편도 같이 참석했다는.... 세째 서로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친구같은 존재가 되었다는겁니다. 마음 속에 있는 말도 서슴없이 할 정도로 친한 친구사이가 되었지요. 네째 블로그를 통해 만나서 그런지 글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눠 나름 유익한 자리가 된다는겁니다. 그냥 만나서 밥한끼하고 헤어지는 것이 아닌 늘 모임을 갔다오면 뭔가 하나 이상은 배우고 온다는 점이지요..

블로그를 처음 시작할때만 해도 사실 제가 이렇게 많은 글을 적으리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지금은 하루에 한번 글을 적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글에 대한 중독이 되었지만 솔직히 전 좋은 중독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을 적는 이 시간만큼은 내 삶의 한페이지를 장식한다는 사명감같은 느낌이 드니까요.. 마치 일기를 적듯이 말입니다.

누가 그러더라구요... 블로그는 미래에 큰 재산이 된다고... 제가 생각하기론 그 말이 맞는것 같습니다. 내 삶의 한페이지를 장식한 노트이고 내 과거를 들여다 볼 수 있고...내가 살아 온 흔적을 엿 볼 수 있으니 당연히 돈과 바꿀 수 없는 재산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블로그를 통해 많은걸 배우셨나요?  아마도 자신이 느끼지 못하는 뭔가를 하루에도 몇개식 배워 나갈겁니다. 자신을 한번 뒤 돌아 보면서 블로그를 통해 무슨 변화가 내게 일어 났는지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오늘 한번 해 보시길요......^^

 

 

30년 전 대중목욕탕의 진풍경

김이 모락모락 나도록 욕실에 뜨거운 물을 데우고 샤워를 하니 몸이 눈 녹듯 사르르 녹는 기분이다.가끔 몸이 찌푸둥할때면 이렇게 뜨거울 정도의 물에 몸을 담그곤 한다. 낙엽이 짙어지는 가을이면 어김없이 찾아 오는 피부 트러블..거기다 찬 날씨로 인한 몸살기운은 지금의 내 나이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 뭐하노..응가히 씻고 나온나..피부도 안 좋으면서.."

남편의 걱정스런 말투이다.
환절기땐 더욱더 피부때문에 괴로워하는 날 잘 알기때문이다.
거기다 뜨거운 물에 오래 씻고 나오면 온 몸에 붉은 선들이 선명하게
나타나는 것에 안스러워 한다.
그런 피부이기에 우린 온천은 커녕 뜨거운 찜질방에 가질 않는다.
병원을 여러 군데 다녀도 예전보다 많이 나아지긴했지만 여전히
진행형인 알러지체질이다.

" 으이구.. 내 그럴 줄 알았다.. 이것 봐라.. 으...."

목욕을 마치고 나 온 내 모습을 보고는 여전히 잔소리를 하며
내 몸에 알러지로숀을 발라 주는 남편..
사실 내가 바를 수 있지만 제일 표시가 선명하게 나는 등은 혼자
로숀을 바를 수 없는지라 늘 잔소리를 듣지만 남편 손을 빌린다.
간혹 그럴때마다 남편이 없다면 어떡했을까하는 생각을 하곤한다.

" 휴..나도 옛날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우째 이런 체질로 변했는지.."
" 어릴때는 안 그랬나? "
" 그라믄.. 목욕탕에서 이태리타월로 박박 문질러도 하나도 이상없었다."

맞다..
난 어릴적엔 살이 벌겋게 될때까지 때를 밀고 로숀을 바르지 않아도 피부는 멀쩡했었다.
남편과 이야길 나누다 갑자기 어린시절 목욕탕 추억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30년 전 ..
그 시대엔 목욕탕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거기다 집에도 목욕시설이 그다지 좋게 설계되지 않았었다.
수도에 호수를 꼽아 둔 채 큰 타원형 빨간 대야에 물을 받아 바가지로
물을 퍼서 사용했었다.
물론 따뜻한 물은 연탄불 옆에 설치된 물통안의 물이 고작이었다.
한여름이면 찬물에 목욕도 가능했지만 날씨가 선선한 봄,가을..
그리고 추운 겨울엔 집에서 목욕하는건 쉽지 않아 집근처 대중목욕탕엘
일주일에 한번 목욕을 하러 갔었다.
사실 일주일에 한번 가는 것도 그 당시엔 정말 많이 가는 축에 속했다.

" 빨리 준비해라.."
" 이번주는 안가도 되는데.."
" 뭐라하노.. 빨리 챙겨라.."

일요일 새벽 5시만 되면 엄마는 목욕탕에 가자며 딸들을 깨웠다.
한겨울에 새벽 5시면 완전 일어나기 괴로운 시간이다.
방바닥이 누렇게 될 만큼 뜨끈뜨끈해도 왜 그리 우풍이 심했던지..
무거운 솜이불을 눈만 내 놓고 잤었던 그때 그시절이었다.
그 추운 겨울 왜 그렇게 엄마는 새벽에 목욕탕에 가자고 깨웠을까..
그건 바로 사람들이 많지 않는 시간에 깨끗한 물로 목욕을 하고 싶어서이다.
사실 새벽에 가지 않으면 완전 더러운 물에 목욕을 하고 올때도 많았었다.
우리처럼 일주일에 한번 목욕을 하는게 대부분이라 일요일엔 조금 늦게라도 가면
앉을 자리도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빽빽했었다.
물론 새벽에 깨끗했던 타일은 하얗게 될 만큼 지저분해져 늦게라도 가면
앉을 자리를 비누로 깨끗이 씻어 앉을 정도였다.
거기다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사람들이 민 때로 인해 하수구구멍이
막히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었다.

" 아줌마.. 여기 막혔어요.."
" 아줌마.. 여기도.."

군데군데 목욕탕에서 들리는 소리..
완전 웃지 못할 일들이 목욕탕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저곳에서 아이를 다그치며 혼내는 모습도 진풍경이다.
" 빨리 안 오나? " - 씻자고 하면 도망가는 아이들..
" 이 봐라..지금까지 때 안밀고 뭐했노.." - 물론 엄마가 때를 밀 동안
나름대로 때를 밀고 있었지만 엄마 눈에는 때는 밀지 않고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물론 때가 많이 나오는 것에 재미를 붙인 것인지 계속 그자리를 집중적으로 밀면
아이는 아프다고 울고 엄마는 가만히 있으라고 때리고 완전 난리도 아니다.
사실 난 그나마 다른 아이들처럼 많이 혼나진 않았다.
식구가 많다보니 일일이 때를 다 밀어 주지 못했던 엄마는 스스로 알아서
목욕하라고 내 버려 둔 케이스였다.
여하튼 이곳저곳에서 아이들 우는 소리와 혼내는 소리에 목욕탕안은 아수라장이었다.
거기다 같은 반 남자아이와 목욕탕(여탕)에서 마주치는 일은 자연스런 모습들이었다.
그 당시엔 대부분 남자아이를 아버지가 아닌 엄마가 데리고 갔었다.
아무래도 가부장적인 시대라 그랬는지도 모른다.

요즘 아이들은 이런 목욕탕 모습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집집마다 목욕시설이 잘 완비되어 있는데다가 한겨울에도 따뜻한 물이
나오고 거기다 집안에 우풍까지 없어 30년 전 대중목욕탕보다 더 좋은
시설에서 목욕을 할 수 있기때문이다.
물론 대중목욕탕이나 찜질방에 가도 까칠한 타월로 때를 박박 미는 사람도 없다.
매일 샤워를 하다 보니 때가 거의 없어서 일것이다.
그러기에 목욕탕에 가도 샤워를 하고 오는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과는 달리 30년 전 대중목욕탕에서의 추억이 있는 분들은
목욕탕에 가면 자연스럽게 이태리타월로 때를 민다.
샤워를 매일 해도 왠지 목욕탕에 가면 때를 꼭 밀어야 한다는 생각때문일것이다.

30년 전 목욕탕의 진풍경이었던 모습들은 이제 볼 수 없지만..
그 추억들을 생각하며 이제는 웃을 수 있는 것에 삶의 한 페이지를 보는 것 같아 좋다.
시간은 점점 흘러 가지만 어릴적 추억은 시간이 가면 갈 수록 뇌리속에 짙게 새겨지는 것 같다. 아마도 되돌아 갈 수 없는 그 시절이 그리워서 더 그런 것 같다.

 

청소부아저씨의 일상

'가을이 왔구나!' 하고  낭만을 느끼려고 하는데..

어느새 겨울이란 문턱에 서 있는 느낌입니다.
새벽부터 거세게 부는 바람때문인지..
오늘은 완전 겨울인 줄 알았습니다.

씽씽 부는 찬바람이 정말 장난이 아니더군요.
체감 온도는 영하만 아니었지 완전 겨울 날씨를 연상케 할 정도였습니다.

" 자기야.. 일한다고 바빠서 단풍구경도 못하고 겨울이 됐네.."
" 겨울은 무슨.. 갑자기 추워서 그렇지 아직도 가을이다..
다음주 가게 쉬는 날 단풍구경 가던지.."
" ㅎ..말만 들어도 간 것 같다...."

남편과 출근을 하면서 단풍이 노랗게 물든 가로수를 보며
늦가을에 접어든 낭만적인 풍경에 잠시나마 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차 안에서 보는 풍경은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는데..

바람이 많이 불어 낙엽이 온 도시를 휘감는 모습을 보니
춥게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거기다..
가로수길에 어지럽게 나뒹구는 낙엽을 치우시는 청소부아저씨를
보니 더 춥고 을씨년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처럼..
도심에 나뒹구는 낙엽을 보며 낭만을 느낄때 낙엽때문에
힘들어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기도 했습니다



도심의 쓰레기를 청소하는 청소부아저씨들은 늦가을이
제일
힘든 계절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찻길 뿐만 아니라 가로수 ..
거기다 길거리 곳곳에 나뒹구는 낙엽을 청소하는 일은

바람이 부는 날 더 힘들 것 같더군요.
날도 엄청 추운데 말이죠





멀리서 보기에도 낙엽의 양이 정말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바람은 거세게 불고, 낙엽은 많고..
청소를 해도 끝이 없어 보이는 모습에 정말 힘들어 보이더군요.




쓰레기봉지가 금방 가득 찰 것 같은 낙엽들이 도심 곳곳에 나뒹굴고
있는 모습에 낭만을 이야기하기에 좀 부끄럽더군요.






저처럼 길거리에 나뒹구는 낙엽을 보며 낭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을때..
그 뒤에서 도심 곳곳의 낙엽을 처리해야 하는 길거리 청소부아저씨를
보니..
왠지 도심의 낙엽이 그리 낭만적이지만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부아저씨..수고 많으십니다. 늘 건강 조심하세요.


 

 

 


“ 어제 그 사람 누군데? 노숙자 아니가?! ”

“ 으응...어제 우리가게안에서 컵라면 먹던 그 남자..
노숙자인데도 나름대로 열심히 사는 사람이야..“

“ 응?!.. 내가 보기엔 완전 삶은 포기한 노숙자던데..”

작은 가게를 운영하다 보니 들을려고 하지 않아도
사람들의
대화가 다 들린답니다.
그런 환경에서 애써 듣지 않으려고 해도 그게 어디 쉽나요..

어제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두 남자의 대화를 듣고 노숙자들의
삶에 대해 조금은 엿 볼 수 있었습니다. 
도대체 대화 내용이 어떻길래 그러냐구요..
편의점에서 1년 넘게 아르바이트를 하는 한 대학생의 말에 의하면..

매일 밤 10시만 되면 편의점에 출근 하다시피하는
한 아저씨가 있다고 합니다.
편의점에 들어설때부터 술냄새가 몸전체에 진동을 하는 아저씨..
옷차림도 허름하고 더럽고, 머리도 며칠 동안 안 감은 듯한 초췌한
모습에
완전 삶을 포기한 노숙자같은 모습인 아저씨는 매일
편의점에 올때마다 컵라면을 하나 시켜 먹으며
의자에 기댄 채
웅크리고 잠을 잔다고 하더군요.
처음 아르바이트를 시작할때만 해도 술냄새가 진동하고 외모로 보면
완전
노숙자 분위기에 편의점에서 잠까지 청하는 통에 편의점을
찾는 사람들에게
안 좋은 이미지로 남아 아저씨를 깨워서 집에 가서
주무시라고까지 떠 밀다시피 했다는..
그런데 매일 술에 절여 사는 아저씨는 학생이 나가라고 할때마다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오히려 화를 내며 편의점을 나가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대학생은 편의점 주인에게 매일 밤 편의점에서 술을 마신
사람이 밤 늦게 들어와
나가지도 않고 있다는 이야길 했더니
다음부터 또 편의점에서 나가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를 하라고 했다더군요.
그렇게 주인의 말을 듣고 다음날 또 다시 편의점에 술에 취해 오는
아저씨에게
좋게 말을 하며 “ 여기서 주무시면 안됩니다.” 라고 했는데..
또 소리를 지르며 행패를 부렸다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편의점
주인의 말대로
파출소에 신고를 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경찰은 출동을 했고 노숙자처럼 보이는 아저씨는 경찰의
손에
이끌려 파출소로 갔다더군요.
그런데 그 다음날 또 노숙자처럼 보이는 아저씨는 편의점에 왔고..
가게 분위기상 어쩔 수 없이 파출소에 신고를 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저씨는 파출소로 연행되어 감에도 편의점에
밤 10시가 넘으면 어김없이 출근도장을 찍었다는 것..
그러던 어느날...
경찰이 편의점에 찾아 와 아르바이트하는 학생에게
이랬다는 것..

“ 우리도 여러 가지로 바쁜 사람입니다.
왠만하면 조용하게 가게에서 자면 그냥 재워 주세요..“ 라고..

그렇게 이야길 하면서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이랬다는..
공무원을 하다가 보증을 잘 못 써서 하루 아침에 전재산을
날리고 신불자(신용불량자)가 되어
이곳 저곳을 떠 도는
노숙자가 되었다고..
그리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려고 하는 것 같다고..
아저씨는 돈을 모아 가족들과 함께 살 날을 기약하며
매일 인력사무소에 가서 일자리를 알아 본다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밤 10시가 되면 편의점을 아저씨가 밤마다 찾는 이유는
인력사무소가 편의점 앞에 있어 다른 사람보다 일찍 인력사무소에
가기위해 편의점에서 새우잠을 청하며 밤을 지새운다는 사연이었습니다.


학생은 아저씨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를 경찰에게 듣고서는
왠지 아저씨를 볼때마다
마음이 짠했다고 했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나름대로 열심히 살려고 하는 모습이 느껴졌고.
가족이 그리워서 늘 소주로 밤을 달래는 모습과
편의점에서 라면으로 저녁을 대신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런 안타까운 아저씨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밤 10시가 넘어서
편의점에 오는
아저씨를 그냥 내버려 두었다고 합니다.

어쩔 수 없이 하루 아침에 노숙자로 전락하였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살려고 하는 모습이었다는 학생의 말..
빚더미에 앉은 상태이지만 열심히 살려고 하는 아저씨를 볼때마다
많은 것을 느낀다는 학생의 말에 저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요즘 역 앞이나 지하철 부근에 노숙을 하는 분들을 보면
삶을 완전
포기한 사람 같잖아요.
솔직히 보기에도 안 좋고 자신에게도 못할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
그런 분들도 이제는 생각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은 힘들지만 밝은 미래를 꿈꾸며
열심히 살아 보려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 봅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니까요..
안 그런가요?!..
 

 

안창마을

작은 한 동네에 들어서니 어릴적 시절 아이들과 뛰어놀고 재미나게 친구들과어울리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던 때가 눈에 선해진다. 내가 찾은 이곳은 부산의 중심지의 산중턱에 위치한 달동네로 오래된 안창마을이란 곳이다. 빌딩들이 도심 가득 들어서고 있지만 아직도 개발의 손길이 많이 닿지 않아서 그런지 동네에 들어서자마자 어릴적시절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이곳 안창마을은 행정구역상 동구와 진구의 문제때
문에 지금껏 발전이 없었다고한다.
하지만 이젠 서로의 관심으로 인해 이곳도 재개발이란 이름으로 새로운
안창마을을 
만들어 발전된 모습으로 우리곁에 한층 더 다가온다고 하니
정말 다행이란 생각을 해본다.

 


안창마을 사람들의 도심과 연결되는 교통수단은 마을버스이다.
높은 고지대라 보니 마을버스만이 이곳을 경유한다.



안창마을 예전에 한번 사진동호회와 함께 왔었던 곳인데 그때 기억으론
산 중턱에 이렇게 사람이 많이 사는가 할 정도로 집이 많았었다.
세월이 흘러 몇 년 후 다시 찾은 안창마을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터전으로 생각하고 사는 것 같았다.



내 어릴적 동네처럼 스레트집이 많은 걸 보니 왠지 세월의 흐름에
역행이라도 하 듯 옛날 모습 그대로의 동네를 유지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한가지 옛날과 다른 점은 삭막한 시멘트에 그려진 동네 곳곳의
벽화가 나름대로 동네분위기를 밝고 색다르게 만들어 주는 듯 했다.







각 동네의 벽화 중에 유독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안창마을에 유일하게 있는
정비소의 풍경이었다. 정비소 벽면에도 안창마을을 알리는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동네 곳곳마다 다양한 벽화는 처음 이 동네를 찾는 사람들에게 색다른 모습으로
다가 와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 곳곳에 그려진 다양한 벽화들은 다 의미가 부여 된 것 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다.
현대와 과거의 공존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뭔가를 말이다.
그리 눈에 띄게 아름다운 벽화는 아니었지만 안창마을의 벽화는 왠지 삭막한
현실 우리가 간혹 잊고 지내는 과거의 삶 속에서 느끼는 포근함과 휴식을
조금은 엿 볼 수 있었던 곳인 것 같았다.

 
얼마전에 한 달동네를 다녀 왔습니다.
옛날의 달동네라고 하면 왠지 침침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요즘 달동네의 풍경은 옛날과 많이 다른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추억이 그대로 느껴지면서 사람사는 냄새가 물씨나는 그런 곳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군요.








사실 도심 한 복판의 마천루로 들어선 빌딩숲과는 많이 다르더군요.
왠지 도심의 마천루는 좀 삭막해 보이는데 사실 달동네는
우리가 어린시절을 보낸 추억의 동네라 더 마음이 가는지도 모릅니다.
얼마전 다녀 온 달동네도 어릴적 추억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 좋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이들의 꿈이 느껴지기도 했지요.
달동네 아이들이 마음 속에 바라고 있는 미래의 꿈은 뭘까?!..
궁금하지 않으세요...
길가에 붙여진 풍선 속에는 아이들의 꿈이 가득했답니다.
그럼 달동네 아이들의 순진무구한 미래의 꿈 한번 보실까요..



축구선수, 미용사, 의사,건축사업가, 조종사 ...정말 다양한 꿈들이 가득하죠.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은 아이도 있고..



그 중에서 제일 눈에 띄는 아이의 꿈은 바로..

' 나는 커서 언제나 웃는 사람이 될꺼예요...' 라는 문구였습니다.

늘 행복하게 웃으며 살고 싶어하는 한 아이의 꿈..
그게 바로 달동네에 사는 모든 아이들의 꿈이고 바람일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바탕에서 아이들이 바라고자 하는 모든 꿈들이 이뤄졌음하는
간절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